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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반도는 불씨 하나에도 몽땅 타버리는 겨울 숲이다 : 분단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한반도는 불씨 하나에도 몽땅 타버리는 겨울 숲이다 : 분단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28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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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중립국 감독 위원회 보타 장군에 따르면, “한반도는 불씨 하나에도 몽땅 타버리는 겨울 숲”이다. 그는 냉소적인 어조로 “한반도는 긴장과 화해가 수시로 교차 중이다. 북경과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리는 한편, 국지적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남한 병사 이수혁과 남성식은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 병사 오경필과 정우진을 만난다. 네 명의 남북한 병사들은 비밀리에 우정을 쌓아가지만, 다른 한편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장면은 계속 반복된다. 아울러 화면구도 또한 남북의 분단을 상징하듯 자주 반으로 분할된다. 따라서 병사들의 우정은 판타지 같고, 남북의 적대를 재현하는 장면은 현실처럼 보인다.

 

이수혁이 장난처럼 총을 겨눌 때, 오경필은 정색을 한다.

심지어 남북한 병사들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이수혁이 “총을 빨리 뽑는다”고 자랑하면서 총구를 정우진에게 겨눌 때, 다음 수순은 발포가 될 것처럼 모두 순간적으로 얼어붙는다. 그들 사이의 우정이 의식적인 것이라면, 한국전쟁과 분단을 통해 깊이 각인된 그들 사이의 적대감과 공포(남한 관객의 레드 콤플렉스)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총을 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로서 총을 겨눌 때, 거기에는 그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적을 향한 살기가 서려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무의식에서 그들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무시무시한 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격하고 제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갑자기 북한군 상위 최만수가 초소에 나타나는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들 사이의 우정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우정을 나누던 남북한 병사들은 분단의 현실 앞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실전 경험과 연륜이 있는 오경필이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들의 무의식에 자리하던 적대와 공포가 분출하기 시작하자 속수무책일 뿐이다. 이수혁과 남성식이 우정을 나누었던 오경필을 믿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남성식은 이수혁에게 “다 짜고 하는 거 아닐까?”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이수혁은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리는 적이야”라고 답한다. 다음 수순은 제스처가 아니라 진짜 상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것이다. 보타 장군의 단언이 작은 규모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를 돌아볼 때, 남북한 병사들의 비극뿐만 아니라 이수혁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수혁은 비극의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중립국 감독 위원회 소피 장 소령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우진이 이수혁의 총에 사살되었다는 진실을 밝혀내자 자살을 선택한다. 소피 장이 진실을 묻어두겠다고 했음에도 이수혁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속죄하듯 무릎을 꿇고 자신을 향해 총을 쏜다(영화 초반부에는 남성식이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 박찬욱의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이 구상한 이 영화의 결말은 비극이 아니었다. 그는 ‘이수혁이 죽지 않고 나중에 오경필과 제3국에서 만나는 결말을 준비’했지만, 제작진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이수혁을 죽음으로 이끈 결말에는 한편으로 남한 관객의 레드 콤플렉스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남한 병사 이수혁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한 병사와 어울린, 금기를 위반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또한 남한 사람은 북한 사람과 결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제3국에서라도 다시 만나는 설정은 불가능하다(홍상수의 <밤과 낮>(2008)에서, 파리에 머물던 화가 김성남은 한국인 모임에 참석한 윤경수가 북한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시비를 걸다 바로 자리를 뜬다).

 

총격전을 벌인 이수혁과 오경필은 적으로서 마주하게 된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대대적인 흥행 성공과 함께 지난 20년 동안 꽤 여러 편의 분단/간첩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상대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우정을 나누는 설정보다 더 파격적인 설정은 주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사람은 끝내 함께 할 수 없는 ‘타자’로 설정한 한계를 계속 답습해왔다. 미남 스타(정우성, 현빈, 공유 등)가 북한사람 역할을 맡고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에도 그 인물이 남한에 정착해 남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을 떠나거나(<의형제> <용의자> <공조>), 사라지거나 죽는다(<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강철비>). 북한사람은 같은 말을 쓴다는 점에서 외국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지만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같은 민족이라기보다 ‘타자’로 자리매김하려는 레드 콤플렉스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한참인데도 여전히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P.S.: 미국 대통령은 얼간이 같고 북한 위원장은 애송이 같은(남한 대통령은 영어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양우석의 <강철비2: 정상회담>(2020)에서, 북한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는 역사적인 장면은 영화가 다 끝난 다음, 관객이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엔딩 크레디트에 들어있다. 이 장면이 본편에 들어가지 않은/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장면을 관객이 보기를 원한 것일까? 아니면 뭔가 그럴듯한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시도했으니 만족한 것일까?

이 장면에서 남한 대통령은 바로 옆에 북한 위원장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 관객을 향해 “국민 여러분, 통일 하실 겁니까?”라고 묻는다(그는 왜 “통일을 원하십니까?”라고 묻지 않았을까?). 이 장면은 남한 대통령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로 끝나는데, 그럼으로써 북한 위원장의 모습은 화면에서 끝까지 배제된다.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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