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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69세>―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세상에 대한 비판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69세>―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세상에 대한 비판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10.05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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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2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

임선애 감독의 <69세>(An Old Lady, 2019)는 2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오십견을 앓고 있는 69세 효정(예수정)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29세 남자 간호조무사 중호(김준경)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효정은 동거남인 동인(기주봉)에게 알리고 경찰에 성폭행 사건을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은 효정을 치매 환자로 매도하고, 법원은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한다.

이 작품은 효정의 시점으로 남성의 육체적 폭력과 공권력의 정신적 폭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NN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0년 8월 20일 개봉하여 3일 동안 4,074명 관람하였지만 6,289명 평점을 받았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보여주며, 평점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조롱과 피해자 고통의 상징화

<69세>의 전반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에 대한 공권력의 조롱을 보여준다. 가해자와 형사 모두 오십견 때문에 수영을 하는 효정에게 “몸매 관리를 해서 처녀 같다”는 찬사를 보낸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찬사는 가해자의 성폭행과 공권력의 조롱 등 남성의 폭력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효정이 성폭행 사건을 신고하는 진술 과정은 가해자에 의한 성폭행과 공권력의 모욕이 합쳐지면서 피해자를 육체적, 정신적 폭력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29살 남성이 69살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을 “친절이 과했네”라며 조롱하는 형사의 말은 젊은 남성의 성폭행마저도 나이든 여성에게는 쾌락일 것이라는 남성 위주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69세>의 전반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을 교차편집, 이미지의 반복, 사운드의 연상작용으로 표현한다. 암전에서 소리만이 들리는 첫 장면은 어두운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범죄의 그림자와 함께 피해자의 절망적 상황을 동시에 그려낸다. 수영하는 모습, 붉은 빛, 피멍이 든 손목의 교차편집은 이미지의 연결로 성폭행의 기억을 반복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영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이미지 연결은 예쁜 다리와 처녀 같은 몸매가 칭찬이 아니라 성폭행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남성 시선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전자렌지의 삐삐 소리와 물리치료음 소리를 연결시키는 사운드의 연상작용은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자의 충격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누명 씌우기와 엇갈림을 보여주는 상징

<69세>의 중반부는 피해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과정과 피해자의 정신적 혼란을 보여준다. 경찰은 피해자의 주장에 대한 불신으로 치매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69세 여성이 치매 때문에 29세 남성을 성폭행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누명을 씌운다. 법원은 2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이 개연성이 없다는 점에서 기각한다. 개연성은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질’이다. 이러한 성폭행은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사건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개연성을 벗어나는 성폭행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도 힘든 상황을 보여준다.

<69세>의 중반부는 상징과 편집을 통해 가해자/피해자, 사실/증거의 엇갈림을 보여준다.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은 성폭행이라는 피해자의 진술과 합의된 성관계라는 가해자의 진술 사이의 엇갈림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실제 사건의 진실과 진술/증거로 밝혀지는 수사의 진실 사이의 엇갈림을 암시한다. 수영하는 모습, 붉은 불빛, 꽉 잡은 손목의 교차편집과 반복은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을 반복해서 되새기면서, 남성의 폭력적 시선과 성폭행 기억의 고통을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성폭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와 이미지의 중의성

<69세>의 후반부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사회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효정이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하자, 중호는 임산부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위협당할 것을 염려하여 효정을 협박한다. 가해자가 자신이 당하는 피해를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역설을 보여준다. 시집 『봄볕』을 통해 보여주는 효정과 동인의 사랑은 효정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동인과 중호의 대비를 통해 정신적 교감이 있는 사랑과 강압적인 폭력에 의한 강간을 대비시킨다. 마지막에 효정이 “갚을 거 다 갚고 그래도 안 끝나는 게 인생”이라며 “한 걸음 햇볕 속으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영화가 끝이 난다.

<69세>의 후반부는 이미지를 통해 중의적 의미를 표현한다. 햇살을 손으로 가리는 장면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나타낸다. 손-햇살 장면은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자료 혹은 CCTV가 있어도 성폭행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서, 손으로 햇살을 가리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즉, 개연성이 없는 성범죄를 당한 경우 피해자는 증명할 수도 없고 공권력을 설득할 수도 없는 상황을 나타낸다. 반면에, 손-햇살 장면은 여태까지 자신의 손으로 햇살을 가렸다는 여주인공의 자각을 보여준다. 즉, 손으로 햇살을 가려도 손가락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는 점에서 장애물이 있어도 이해받지 못해도 햇빛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여주인공의 의지를 표현한다.

 

가해자의 피해자 코스프레: 사회적 상식과 개연성의 폭력성

<69세>는 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세상을 통해 사회적 상식과 개연성의 폭력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 영화는 임선애 감독이 2013년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다룬 칼럼을 읽고 사건 자료와 논문을 조사해서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이 영화는 여성 성폭행 사건에서 일어나는 남성의 육체적 폭력과 공권력의 정신적 폭력을 통해서 피해자인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가해자의 죄에 대해 정당하게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드는 세상을 보여주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행위의 역겨움을 드러낸다.

<69세>에서 오랜 시간 스크립터와 스토리보드로 영화 스탭 경력을 쌓은 임선애 감독은 직접적인 구호의 외침보다는 간접적인 울림의 여운을 통해서 섬세한 연출 스타일을 보여준다. <69세>는 피해자를 조롱하기(전반부), 피해자에게 누명 씌우기(중반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후반부)의 변화를 통해서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의 육체적 폭력과 공권력의 정신적 폭력을 비판한다. 이 영화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보여주는 가해자와 개연성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동인의 흔들림 없는 사랑과 효정의 자각과 실천으로 마무리하면서 낙관적 전망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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