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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로트 리부트 시대 <복면 달호>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로트 리부트 시대 <복면 달호>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0.10.1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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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 달호>(2007, 김상찬, 김현수) 포스터

알고 보니 트로트 천재였던 남자, 트로트로 인생 역전

‘큰소리 기획’의 장 사장(임채무)은 내일의 록 스타를 꿈꾸며 지방 나이트클럽에서 열심히 샤우팅을 내지르던 봉달호(차태현)의 목소리에서 신이 내린 천상의 뽕필(뽕짝의 feel)을 발견한다. 달호는 장 사장이 가수로 데뷔라는 말에 이성 상실, 앞뒤 안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린다. 그러나 자신을 록 스타로 키워 줄 것이라 굳게 믿었던 장 사장의 ‘큰소리 기획’은 트로트 전문 음반 기획사였다. 결국 달호는 법적 사슬에 묶여 ‘어쩔 수 없이’ 트로트 가수로 거듭나기 위한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물건 될 놈 찾으러 먼 길도 마다 않는 음반기획사 대표 장 사장
물건 될 놈 찾으러 다니는 음반 기획사 장 사장

‘봉필’(봉달호+뽕짝의 feel)이란 예명으로 앨범을 내게 된 달호는 첫 공중파 데뷔 무대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게 창피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달호가 의도하지 않은 어설픈 신비주의 콘셉트는 오히려 국민들의 뜨거운 애정을 받기에 이르고, “자고 나니 스타가 되었어요.”의 산증인이 되어 한순간에 ‘트로트의 황태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신이 내린 뽕필

장르를 뛰어넘는 좋은 노래

<복면 달호>는 트로트 열풍이 있기 전 젊은 사람들이 갖는 흔한 편견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한다. 영화는 젊은 세대가 가진 ‘록은 간지 나고 뽕짝은 촌스럽다.’는 인식에 기반 한다. 그러나 <복면 달호>는 록을 최고로 알던 젊은이가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날리는 이야기 속에 ‘좋은 노래란 장르에 상관없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진정한 음악은 장르에 상관없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끈적이면서도 터질 듯한 창법, 관절을 꺾는 듯한 꺽임, 내 심장을 파고드는구나.”

영화 속 달호가 록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얘기하듯 트로트 참 맛있는 음악이다. 음악에 장르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사람들이 듣고 박수치고 좋아하면 그게 바로 좋은 음악이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는 달호가 같은 기획사 소속 연습생인 서연(이소연)과의 로맨스와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과정이 다소 헐겁고 흔들릴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달호의 노래 <이차선 다리>가 나와 이야기를 메우며 잘 넘어간다. 역시 좋은 노래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영화도 살린다.

 

대한민국이 네 박자 뽕필로 깨어난다!

트로트가 이렇게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퓨전이 크게 한몫을 했다. <복면 달호>의 음악감독인 주영훈은 특유의 젊은 층에 어필하는 감각을 살려 ‘트로트’를 재구성한다. 심금을 울리는 음색을 한껏 살린 정통 트로트는 물론, 록과 댄스를 결합한 퓨전 트로트까지 10대에서부터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며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국민가요 트로트의 위상을 드높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콘서트 신은 록을 접목한 트로트로 한번 들으면 계속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기억에 남을만한 무대를 선보인다.

 

“왜 꺾는대요?” “자꾸 꺾다보면 알아.”

복면과 트로트 리부트 시대

TV를 켜면 온갖 채널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트로트가 나온다. 그야말로 트로트 홍수가 쏟아지고 있다. 많은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이런 현상을 트로트 리부트라고 부른다. '리부트'는 원래 컴퓨터 용어다. 꺼져 있는 컴퓨터 전원을 다시 켠다는 의미인데 이 말은 영화계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인기 있는 원작 영화를 재구성한 작품을 이야기할 때 리부트 했다는 설명을 붙이는데 리부트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로 끌어가는 특징이 있다.

 

요즘 트로트가 그렇다. 전통과 현대적 해석이 절묘하게 배합된 신인, 발라드와 트로트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신인 트로트 가수에게 요즘은 세대 불문 남녀 불문하고 열광한다. 2007년 개봉한 <복면 달호>가 만약 지금 만들어졌다면 달호는 과연 복면을 썼을까? ‘복면 가왕’의 출연자들은 복면을 쓰지만 <복면 달호>와는 분명 다르다. 달호는 트로트를 부르는 게 부끄러워 복면을 썼고, 요즘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복면을 쓴다.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덕에 복면은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그 무엇이 됐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모두가 우울하고 불안한 세상, 멜로디와 가사의 감성이 절절하고도 듣기 좋고, 완성도 또한 높고 퍼포먼스까지 가미된 트로트는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달호는 장 사장에게 트로트가 뭐냐고 묻고, 장 사장은 달호에게 록이 뭐냐고 묻는, 달호는 록이 ‘Heart’라고 답하고, 장 사장은 트로트가 ‘마음’이라고 응수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 됐건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음악이 절실한 시기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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