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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감독이 그리는 미래 세계와 <옥자>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감독이 그리는 미래 세계와 <옥자>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0.10.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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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는 괴물영화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옥자 캐릭터가 새롭다. 옥자는 ‘괴이한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괴물이다. 유전자 변형 실험에 의해 탄생했으며, 하마와 돼지의 얼굴이 합성된 상상 동물이다. 하지만 옥자는 ‘착한’ 괴물이며, 인간에게 고통을 당하는 ‘약한’ 존재다. <옥자>에서 옥자는 희생양 혹은 피해자로 묘사된다. 반대로 타락한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괴물로 등장한다. <옥자>의 서사는 ‘착한’ 괴물이 ‘인간 괴물’들과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10대 소녀 미자가 모험의 주체라는 점도 독특하다. <옥자>는 미자와 옥자의 행적을 통해 감독이 지향하는 미래상을 제시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옥자는 미국 다국적 화학‧식품회사 미란도 그룹의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다. 미란도 그룹의 최고 경영자 루시가 기획한 유전자 변형 실험의 결과물이다. 루시는 지구촌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슈퍼돼지를 활용한 신제품을 개발과 수익 창출이다. 루시는 마케팅 차원에서 아기 슈퍼돼지들을 26개 나라에 보낸다. 옥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와 함께 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옥자의 평화로운 산골 생활은 한시적이다. 루시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뉴욕으로 강제 이송된다. 그러자 미자가 옥자 구출 작전에 나선다. 혈혈단신 서울과 모험으로 모험을 떠난다. 옥자와 미자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을 강제로 떠나고, 낯선 공간에서 온갖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과업을 달성한 후 산골마을의 일상세계로 돌아온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분석가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정리한 ‘영웅의 여행(hero’s journey)’ 모형과 일치한다. ‘영웅의 여행’은 ‘일상세계-모험-일상세계’의 순환 구조로 정리되는데, 이는 미자와 옥자의 실제 행적(강원도 산골-서울과 뉴욕-강원도 산골)과 일치한다.

 

옥자와 미자는 ‘영웅의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옥자가 강제로 짝짓기를 당하는 미란도 그룹의 지하 실험실과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도축장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강제 짝짓기와 도축장의 설계자는 루시다. 그래서 ‘선한 인간(영웅) 대 나쁜 괴물’이라는, 괴물영화의 전형적인 대립 구도에 변화가 발생한다. <옥자>에서는 루시가 타락한 욕망,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상징하는 ‘인간 괴물’이다. 루시에게 옥자를 포함한 슈퍼돼지들은 상품일 뿐이다. 동생에게 쫓겨났다가 최고 경영자로 복귀한 낸시의 가치관도 루시와 다르지 않다. <옥자>가 루시/낸시를 쌍둥이로 설정하고, 같은 배우(틸다 스윈튼)가 일인이역을 하는 배경이다. 낸시에서 루시로, 루시에서 낸시로 최고경영자가 바뀌어도 미란도 그룹의 경영 철학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들에게 슈퍼돼지들이 희생되는 도축장은 “생산 라인”일 따름이다.

<옥자>의 “생산 라인”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의 생산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포드 생산 시스템은 상품 제조 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생산 체계다. 기계화된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해 전체 작업 조직을 합리화하여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대량 생산 시스템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됐다(박노진, 「제조업의 진정한 혁명, 포드생산시스템」, 『노동과경영』 16회). <옥자>의 도축장은 포드 시스템 그대로다. 슈퍼 돼지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고, 부위 별로 해체되고, 슈퍼 돼지는 상품으로 대량 생산된다. 포드 생산 시스템의 ‘조립’이 ‘해체’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러한 포드 생산 시스템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관점은 도입부에서 드러난다. <옥자>는 초반에 미란도 그룹의 건물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뉴욕 시내를 조감도처럼 비춰준다. 뉴욕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도시이고, 미란도 그룹은 그곳에 터를 잡은 거대 규모의 글로벌 기업이다. 따라서 조감도와 도축장 미장센은 “미국은 포드의 생산방식에 의해 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켰고 이를 통해 20세기에 이르러 최강국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박노진, 앞의 글)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이로 인해 ‘착한’ 괴물과 ‘인간 괴물’의 대립, 루시/낸시의 왜곡된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고발은 <옥자>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된다.

 

<옥자>가 자본주의 시스템 혹은 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자는 낸시에게 황금 돼지를 주고 옥자를 구해내는데, 이 행위는 정당한 거래로 처리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미자가 구매한 것은 상품으로서의 슈퍼돼지가 아니라 ‘옥자’라는 소중한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낸시는 상품을 팔았지만, 옥자는 가족을 구한 것이다. <옥자>에서 쌍둥이 자매인 루시/낸시는 번갈아가며 미란도 그룹의 사업을 이어간다.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옥자>에 나타난 이러한 관점은 <기생충>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기생충>은 IT기업 오너인 박 사장을 무조건 악한 인물로 설정하지 않으며, 박 사장이 떠난 집으로 또 다른 상류층이 이사하는 설정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옥자>가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미자는 강원도의 너와집에 사는 산골 소녀다. 루시/낸시가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반면 미자는 생명과 자연, 가족을 중시한다. 미자와 옥자가 숲속에서 친자매(오누이)처럼 노는 장면들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는 원시신화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미자와 옥자가 산골 마을로 돌아오고, 순진무구한 삶을 이어가는 결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설국열차>에서 열차가 파괴된 뒤 카메라가 요나와 티미, 북극곰을 한 프레임 안에 담은 것과 유사하다. 미자와 요나/티미, 옥자와 북극곰을 동일한 캐릭터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꿈꾸는 미래 세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근대화, 산업화,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설국열차>의 열차는 <옥자>의 포드 시스템에 의한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와 연결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미자와 옥자는 친자매(오누이)처럼 지낸다. 그들은 늘 함께 먹고, 자고, 놀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옥자라는 이름은 미자가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는 가치관의 표시이다. 프로이트는 “한 사람의 이름은 그가 지닌 인격의 중요한 구성 요소, 혹은 그가 지닌 혼의 덩어리의 일부”인데, “동물과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미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인격과 그 동물 사이에 신비스럽고도 의미심장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음에 분명하다. 그 관계가 혈연관계가 아니고 무슨 관계일 수 있겠는가?”(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림원, 2012, 176쪽)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자와 옥자는 미개인과 동물이 맺고 있었던 ‘신비스럽고도 의미심장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미자와 옥자의 일상세계는 자연친화적이다. 그들은 숲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낸다. 미자와 옥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1)옥자가 절벽에서 소(沼)에 뛰어들어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 끓여먹기, 2)미자가 감을 던지면 옥자가 넙죽넙죽 받아먹기, 3)미자가 옥자의 배 위에 누워 낮잠 자기 등이다. 이러한 행위가 펼쳐지는 곳은 강원도 산골인데, 영화에서 그곳의 정확한 지명이나 지리적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옥자>의 산골 집은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미자와 옥자의 집안 생활도 이와 유사하다. 옥자는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미자는 한밤중에 베개를 들고 나와 옥자의 품에 안겨 잠을 잔다. 그러자 옥자는 엄마가 아기를 품는 자세로 미자를 안아준다. 미자가 옥자의 입안으로 들어가 양치질을 해주는 것도 둘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미자와 옥자는 이심전심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챈다. 미자가 옥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고 엉덩이를 쓰다듬어 줌으로써 옥자의 배변을 도와주는 식이다. 할아버지가 무심결에 “우리 두 식구…”라고 말하자 미자가 즉각 “아니지. 세 식구지.”라고 수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옥자>의 이러한 특징은 인물의 나이를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서사가 전개되는 시점은 2017년이며, 미자의 나이는 열네 살이다. 옥자가 미자의 집으로 온 것은 2007년이다. 미자는 네 살 때부터 10년 동안 옥자와 함께 성장한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린아이와 동물의 관계는 미개인과 동물의 관계와 유사하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본성을 동물적인 것과 확연히 구분하는 장성한 문명인과 달리 자기와 동물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성인보다 동물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프로이트, 위의 책). 미자는 옥자와 함께 성장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는 원시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자와 옥자의 관계 및 에피소드는 <옥자>의 자연친화적인 가치관, 나아가 원시신화적인 세계관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셈이다.

 

<옥자>는 자연과 문명 세계의 대립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자와 옥자의 삶의 터전인 산골은 순수 자연의 세계이다. 반면 서울과 뉴욕은 첨단 문명 세계이다. 이 대도시들은 초고층 빌딩과 질주하는 자동차, 지하상가, 군중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강원도 산골→서울→뉴욕으로 이어진 미자와 옥자의 이동 경로는 원시신화의 세계에서 현대 문명 세계로 이행한 인류 역사의 변화 양상을 압축한 것이 된다. 물론 뉴욕→강원도 산골의 이동 경로는 그 반대 흐름을 드러낸다.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낸 문명의 패러다임과 가치관을 비판한다. 옥자가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은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낸다.

미자와 옥자는 원시신화적인 공간에서 문명사회로 모험을 떠났다가 다시 원시신화적인 공간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대구를 이루면서 <옥자>가 지향하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아기 슈퍼돼지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자와 옥자가 뉴욕 인근의 도축장에서 데려온 아기 슈퍼돼지는 미자 집의 안방에 들어와서 재롱을 부리고, 미자와 할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산골 집은 인간과 동물이 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자연친화적이고 원시신화적인 세계는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혹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드러내는 설정이다. 이처럼 <옥자>는 자연친화적이고 원시신화적인 세계를 현대 문명사회의 대안 공간으로 제시한다. 권선징악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 문명의 시원인 원시신화의 세계로 회귀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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