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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코로나 시대, 일상으로 들어온 온라인 공연
[김희경의 문화톡톡]코로나 시대, 일상으로 들어온 온라인 공연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2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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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이 지난 4월 서울에서 한창 열리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작을 해외 무대와 동일하게 그대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공연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명작이다 보니 티켓 구하기가 어려워 포기하거나, 전 세계에 급속히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대한 불안으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오페라의 유령’을 본 관객들이 있었다. 이 작품의 제작자이자 작곡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을 통해 공연 실황을 무료로 48시간 동안 공개한 덕분이다. 그가 선보인 영상은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이었다. 영상이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튜브 구독은 1000만 건을 넘어섰다. 국내 네티즌들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스마트폰, 스마트TV 등으로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을 인증해서 올렸다. 사람들은 평소 보고 싶었던 명작을 본 것에 대한 벅찬 감동을 표현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 /출처:유튜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 /출처:유튜브

공연은 집을 포함해 일상의 공간에서 즐기는 콘텐츠는 아니었다. 흔히 집에선 방송, 영화,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본다. 공연을 찍은 주문형 비디오(VOD)를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공연은 응당 공연장에 가서 보는 것이라 여긴다. 그렇다고 공연장에 자주 가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은 티켓 가격이 비싼 편이라 선뜻 보지 못한다.

그런데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이 오랜 사고방식과 행위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일상의 공간에 공연이 들어왔다.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공연을 본다. 온라인으로 공연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네이버TV 등을 통해 쇼케이스, 공연 전막이 일부 중계되긴 했다. 하지만 공연 애호가들 이외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영화처럼 VOD 제작이 활성화되지 않아 공연을 영상으로 즐긴다는 생각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오페라의 유령’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이 온라인 공연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 유령이 오페라 극장 5번 박스 석에 고정적으로 앉아 자신의 뮤즈 크리스틴을 바라보던 것처럼, 나만의 방구석 1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을 즐긴다. 국내 공연계도 이 가능성을 엿보고 빠르게 영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오프라인 공연과 온라인 공연은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갑작스러운 공연계 뉴노멀(New Normal) 앞에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 새로운 일상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공연장에서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없는 공연은 완성됐다고 할 수 있을까. 또 공연이 대중의 일상에 가깝게 파고드는 방법이 생겼다곤 하지만, 예술인의 일상에서 공연이 사라지고 있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팬데믹과 공연예술의 한계

전염병은 공연예술의 특성과 한계를 드러내어 왔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번 그랬다. 예술가와 관객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야 하는 공연은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전염병 앞에서 존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를 학계에선 공연의 ‘현장성’이라 일컫는다. 하나의 공연장이 있고, 그 무대에 예술가가 오른다. 그러면 관객은 객석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이 같은 ‘현장성’은 공연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아우라의 근원이다. 공연을 유독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이 현장성에 빠진 경우가 많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장성은 공연의 태생적 한계로도 작용한다. 관객이 반드시 공연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연이 예측 불가능한 재난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풍만 불어도 집객 자체가 어렵다. 전염병 창궐은 이를 뛰어넘는 악재다. 그래서 재난이 닥치면 일반 상품 시장보다 더 심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 상품은 굳이 오프라인으로 사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되지만, 공연은 공연장에 직접 가야만 한다.

공연뿐만 아니라 전시, 영화도 현장성을 갖고 있다. 전시도 전시장에서, 영화도 극장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관객과 만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영화 같은 경우엔 2차 시장인 VOD 시장이 형성돼 있어 작은 수익이라도 올릴 방법이 존재하다. 그렇지 않은 공연은 전염병에 더 타격이 크다. 또 전시에 비해서도 장벽이 높은 편이다. 전시는 주로 작품과 관객이 만나지만, 공연은 반드시 창작자와 관객이란 두 주체가 만나기 때문에 전염병 창궐에 더 취약할 것이란 인식이 존재한다.

온라인 공연은 작품이 현장성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물론 온라인에선 예술가와 관객이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보답이자 위로가 되어준다. 일부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대를 단 하루도 올리지 못한 국공립 공연장이나 예술단체의 작품 일부는 녹화 또는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소개됐다. 몇 달에 걸친 연습 기간, 그 기간 흘렸을 땀, 관객들을 만날 개막일만을 애타게 기다렸을 마음. 이 모든 것이 온라인 공연조차 없었다면 전달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온라인 공연은 장르별로 존재하는 심리적 장벽을 해소하고 경험을 확장해 주는 기능도 한다. ‘2019 공연예술실태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공연 시장의 전체 규모는 2018년 8232억 원이다. 이중 뮤지컬 시장이 50%에 이른다. 하지만 클래식, 오페라, 발레, 국악 등의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 장르의 공연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고급 예술’이라 분류되는 해당 장르들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급 예술 공연의 유료 티켓 비중은 높지 않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자주 경험하고 그 가치를 더디더라도 찬찬히 알아가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연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봐야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한 번 공연을 볼 때 쉽고 익숙한 작품을 주로 선택한다. 반면 지금까지 진행된 온라인 공연은 무료이거나 가격이 저렴하고, 접속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런 부담이 적다. 이같이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으며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발견한 공연예술의 새로운 보완재인 셈이다.

 

2차 수익원으로의 발전 가능성

하지만 온라인 공연이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보완재로서의 역할과 대체재로서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공연은 앞서 언급했듯 현장성의 제약을 갖고 있다. 온라인으로 이를 선보이는 것은 이 제약을 해소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함축된 돌파구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오프라인 공연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현장의 공기와 무대의 아우라는 결코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애호가들의 목마름은 온라인 공연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예술가들 또한 관객의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무대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오프라인 공연 중심의 공연예술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엄에도 온라인 공연을 함께 발전시켜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산업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공연계에선 이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오프라인 공연에 못지않은 2차 수익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해외에선 유료 온라인 공연이 앞서 이뤄졌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요나스 카우프만, 르네 플레밍 등 세계적인 성악가 16명과 유료 공연을 7~12월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국내에서도 유료화 움직임이 일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뮤지컬 ‘모차르트!’, 9월 뮤지컬 ‘신과 함께 저승편’,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오페라 ‘마농’ 등이 유료로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뮤지컬 '모차르트!'/*출처: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모차르트!'/*출처:EMK뮤지컬컴퍼니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사업화 단계로 보긴 힘들다. 완전한 유료화를 진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국내에선 온라인 공연의 유료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유료화가 이뤄지고 있는 K팝 유료 온라인 공연과 비교했을 때도, 팬덤이 약해 많은 수익을 남기기 어렵다. 오프라인 공연과 달리 수요 예측을 하는 것도 어렵다. 해외 라이선스 공연 같은 경우 저작권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공연계는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본격적인 유료화를 추진해 나갈 전망이다.

무너진 예술가의 일상과 온라인 공연의 역할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공연계 변화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순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가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일상과 공연이 더욱 가까워지고, 이로 인해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으려면 ‘예술가’라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로 예술가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1~6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예술 분야는 823억 원의 매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공연예술 분야에서 고용 피해(인건비 감소)는 305억 원 규모로 발생했다. 당장 예정됐던 오프라인 공연은 코로나19로 줄지어 취소됐다. 무료지만 온라인 공연이라도 올릴 수 있는 예술가도 극히 한정됐다. 카메라와 촬영 기술, 송출 기술 등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만 온라인 공연을 할 수 있다. 소극장이나 작은 단체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정부, 국공립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이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지만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예술가의 양극화 현상은 곧 다양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생계를 위협받고 무대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면, 공연계는 특정 예술가들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된다.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종국엔 획일화된 무대만을 보게 될 수 있다. 그러면 대중은 일상 안으로 어렵게 들어온 공연을 밀어내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신진 예술가, 프리랜서 예술가들의 무대를 지켜줄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야만 한다. 특히 앞으로 급속히 발전할 온라인 공연 시장에서 이들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더 쇼 머스트 고 온! (The Show Must Go On!)’. 웨버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자 퀸의 노래 제목인 이 말은 이제 코로나 시대에 공연의 사명감을 함축한 말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사명감에 그쳐선 안 된다. 진정으로 대중과 예술가의 일상에서 공연은 존재하고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 위기에서 발견한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은 그 제약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극복할 때 비로소 극대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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