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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복수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위해-<왕서개 이야기>
[양근애의 문화톡톡] 복수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위해-<왕서개 이야기>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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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의 마지막 창작 초연작인 연극 <왕서개 이야기>의 포스터에는 어둡고 외롭고 신산한 한 남자의 얼굴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 얼굴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포스터는 연극에 관한 부가적인 정보를 담은 파라텍스트(paratext)지만 때로 텍스트를 넘어서는 강렬한 느낌을 자아낼 때가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그 느낌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공연과 함께 발간된 희곡 <왕서개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다. “왕겐조는 매고 있던 총을 하늘을 향해 겨눈다. 오래전의 왕서개가 이미 떠난 줄도 모르고.” <왕서개 이야기>는 왕서개였던 남자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일본으로 건너와 왕겐조로 살다가 가족을 죽인 자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극의 줄거리만 보면 핏빛 복수를 연상시키지만 정작 그런 방식의 복수는 시행되지도, 완수되지도 않는다. 어떤 진실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야 반문 되는 것처럼, <왕서개 이야기>는 두 번 읽어야 완성된다. 한 번은 전쟁 학살자를 찾아가는 미완의 복수 이야기로, 다른 한 번은 복수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유예시키는 삶에 관한 이야기로.

 

[왕서개 이야기] 포스터: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왕서개 이야기] 포스터: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무용한 복수와 고통의 상대화

먼저, 미완의 복수 이야기부터 해보자. 만주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았던 왕서개는 중일전쟁 때 아내와 딸을 잃었고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일하면서 왕겐조로 살았다. 만주에서 그가 잃은 것은 가족만이 아니었다. 매와 함께 사냥을 하며 살던 삶을 통째로 빼앗겼다. 무려 21년이 흘렀다. 일본군에 의해 ‘사냥’을 당해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왕서개는 자신이 겁쟁이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끝난 후 요코하마로 와서 장사치로 살던 왕겐조는 아홉 달 전에 만난 노부오가 궤짝에 관해 말을 던지는 순간, 왕서개로 돌아간다.

처음 노부오를 만났을 때 학살 당시 만주에서 보았던 일본군임을 바로 알아챘지만, 그는 노부오가 “그 궤짝, 오래 돼 보이는데.”라고 말할 때까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궤짝이 딸의 관으로 쓰기 위해 만든 상자였다는 말을 하기까지 21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그는 노부오를 위협하거나 해를 입히는 대신, 자백서를 써달라고 말한다. 노부오는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자백서를 써준다. 왕서개는 그 자백서를 들고 다른 학살자들을 찾아가 자신의 아내를 어디에 묻었는지 묻는다.

그가 ‘피의 복수’를 자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왕겐조라는 이름으로 ‘앞을 보고 사는 길’을 택했거나 그의 분노가 그만큼 깊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4년 전 요코하마로 왔을 때 천황의 생일잔치에서 빠찡코를 던져 수감된 적이 있었다. 총과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작전명 이치고’, ‘작전명 임팔’, ‘작전명 바로바로싸’, ‘작전명 릴리’와 같이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작전명을 활용한 장의 구성 방식은 왕서개의 방문이 곧 전쟁의 추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전쟁은 국가 간 영토 분쟁과 국제 사회의 패권주의 등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되지만, 실상은 회복 불가능한 상흔과 무고한 죽음 위에 세워진 역사적 비극에 다름 아니다. 전쟁을 교훈 삼아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정치를 이야기하는 역사책 속 전쟁 바깥에는 그러한 대문자 역사에 가려져 있던 전쟁의 그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겪은 이야기가 있다. <왕서개 이야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과 복수라는 서사적 얼개를 장르적으로 소화하고 있지 않지만,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단일하고 분명한 모양으로 나타날 수 없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학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생각하는 전쟁은 다 다르다. 전쟁을 이용한 자, 전쟁을 그리워하는 자, 전쟁을 잊은 자, 전쟁을 비웃는 자. 그들은 1953년이라는 극 중 현재 속에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의 두께와 결을 지님으로써 다른 시간을 산다.

 

[왕서개 이야기] 제공: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왕서개 이야기] 제공: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노부오가 궤짝에 관한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질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서개는 노부오가 궤짝에 대해 ‘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치 이 말을 기다린 것처럼 말을 쏟아낸다. 잊을 수 없는 학살의 기억과 그때 보았던 다섯 마리의 말과 딸아이의 관으로 만들었으나 그렇게 쓸 수 없었던 상자의 내력에 관해. 그러나 그 말끝에 나온 왕서개의 행동은 노부오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백서를 ‘부탁’하는 일이다. 첫 학살이 진행될 때 만주를 떠났어야 했다고, 자신이 겁쟁이라서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왕서개에게 복수는 목적한 대로 진행되는 일이 아니라 직접 그 사람을 만나고 말을 들어보아야 알게 되는 과정 중의 일이다.

완전한 대갚음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애초에 복수는 불가능하다. 전후 일본 사회의 흐름에 적응하여 교수가 된 노부오, 전쟁광이 된 다케다, 죽은 남편 나카다의 일기장을 숨기는 하나코, 훼손된 신체를 냉소적으로 드러내는 전쟁 낙오자 릴리를 만나는 과정에서 왕서개에게 복수는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더욱이 릴리에게 아내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사실을 들은 왕서개는 다섯 번째 학살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진실을 알아버렸고, “그래봤자! 우린... 하나도... 못 느껴.”라고 말하는 릴리의 무감각한 다리에 총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왕서개의 복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 시도하는, 무감각을 향해 쏘는 총.

 

죽음을 유예시키는 삶

총과 칼을 들이미는 대신 자백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행동 외에 복수의 서사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또 있다. 왕서개는 학살자를 방문할 때 재스민 차를 선물로 가지고 간다. 그는 가해자를 방문해서 차를 건네주고 그들과 차를 마시면서 일종의 대화를 나눈다. 전쟁에 대한 각기 다른 모습만큼이나 차를 대하는 인물의 모습도 상이하다. 아홉 달간 차를 배달시켜 마신 노부오는 정작 차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노부오가 건넨 차의 끝맛이 쓰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왕서개다. 노부오의 자백서를 들고 다케다에게 갔을 때, 다케다는 찻잎을 술에 던져 넣는다. 전쟁광이 되어 훈장을 자랑하며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다케다는 노부오에게 술을 권하며, “마셔. 이거, 차야.”라고 말한다. 하나코는 보온병에 찻잎을 넣고 차가 식기를 기다린다. 그냥 놔두면 차가 식는다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말하는 하나코에게 왕서개는 “글쎄요... 영원히 식지 않는 것도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찻잎을 우리는 동안의 기다림은 마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한 유예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왕서개는 학살자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거의 제지하지 않고 듣는다. 대화의 주도권은 왕서개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가해자들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다케다의 격앙된 말을 들으며 그가 내민 칼을 쥐고도 끝장낼 수 있는 기회를 결코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아내가 어디 묻혔는지 알게 되면 진짜 복수가 시작될 수 있을까. 그러나 왕서개의 방문이 계속되는 동안 복수는 무의미해지고 아무리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도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만 선명해진다.

세 번째로 나카노를 찾아갔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죽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하나코였다. 말썽을 부리는 아들 때문에 고개를 조아리는 일이 많은 탓에 하나코는 왕서개가 방문하자마자 피해자로 오인한 사과를 했다. 그러나 왕서개가 전쟁 때 죽은 남편의 과오를 상기시키자 냉정해진다. 똑같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었지만 하나코는 왕서개의 아픔에 이입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달라는 왕서개의 부탁에도 ‘이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왕서개가 돌아간 후, 하나코는 그날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 남편의 편지를 찢어버린다. 하나코는 왕서개와 말을 나누는 동안 내내 걸레로 바닥을 닦고 또 닦아냈다.

왕서개가 알고 싶어 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네 번째로 방문한 가해자 릴리다. 왕서개는 반신불수가 된 릴리를 대신해 손수 차를 타준다. 릴리의 만류에도 “되는 게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안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감각 없는 다리를 주무르는 일을 멈추지 않던 왕서개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듣고 무너진다. 그리고 냉소로 가득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매와 함께 사냥하던 시절을 복수의 문제로 돌려놓은 릴리의 말들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극의 마지막 시공간이 만주인지 일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거대한 매의 그림자 안에 놓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왕서개 이야기] 제공: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왕서개 이야기] 제공: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매의 시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왕서개 이야기>의 영어 제목은 ‘A Hawk’이다. 남산예술센터의 ‘초고를 부탁해’와 ‘서치라이트’ 낭독 공연을 거치며 초연을 올리기까지 대본이 바뀌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화자가 왕서개의 아내로 바뀐 적은 있지만 매의 그림자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프로그램북에 적힌 김도영 작가의 말을 참고해보면 <왕서개 이야기>는 ‘왕서개의 공포심’과 ‘매의 시선’으로 복수의 (불)가능성에 관해 말하는 연극으로 읽힌다. 릴리로부터 진실을 들은 후에도 학살자들에게 복수는커녕, 더 괴롭고 외로워진 채로, 만주의 시공간 속에 홀로 남겨진 왕서개의 모습이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2인극의 중첩으로 진행되던 연극의 시야가 확장된다. 다섯 번째 학살자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왕서개가 알고 싶었던 진실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얻을 수 있었던 답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과하며 각기 다른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전범들을 통해 왕서개는 깨닫게 된다. 매는 머리 위를 맴돌고 있지만 다시는 팔에 앉지 않는다. 매와 함께 사냥을 하던 시절의 왕서개는 이미 죽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살던 마을도 없어졌다. 그러나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왕겐조로 살 수도 없다. 고통의 전시도 복수를 향한 분노도 없이, 연극은 삶의 끝에 오는 죽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박탈당한 자, 죽음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공포스럽고 외로된 얼굴을 선명히 그려 넣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 글을 쓰는 내내 왕서개라고 쓸 수밖에 없었지만, 희곡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왕서개의 이름을 왕겐조라고 쓰고 있다. <왕서개 이야기>는 전쟁으로 인해 아내와 딸을 잃고 그 못다한 삶과 함께 죽은 왕서개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왕겐조의 이야기이다. 매사냥을 삶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살았던 왕서개는, 그것을 전쟁의 논리로 치환하는 릴리의 궤변에 속수무책인 왕겐조가 되었다. 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왕서개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근대 이후, 전근대적 삶의 ‘자연’스러움을 파괴시킨 전쟁의 논리가 낳은 폐허의 자리가 아직 어둡다. 매의 그림자 속에서 매의 시선을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은 아주 작고 약할 뿐이다.

 

 

글·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기억과 역사의 길항 및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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