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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만적 행태를 경고하는 영화적 방법 : 영화 <콜>(2020)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만적 행태를 경고하는 영화적 방법 : 영화 <콜>(2020)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0.12.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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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겉보기에 영화<콜>은 '윤리'와 '본능' 간의 대립을 말할 때 ‘윤리’의 편에 섰던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큰 틀에서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 가를 따질 때조차 ‘인과성’,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사용하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서사적 구조가 보다 세밀하고 명료해질 수 있는 이 전략은 매우 유용한 방법이긴 하다.

 

인과성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우선 영화는 어떤 ‘평형상태’를 전제해 놓는다. (포스터의 대칭 구도도 이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연(박신혜)과 영숙(전종서)이 시간의 양 끝에 놓여 있으면서도 같은 집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져 있지 않은 두 인물 사이의 이 ‘평형상태’를 전제하고자 함 때문이다. 영숙과 서연의 관계가 세대의 엇갈림(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라기보다 ‘같은 집’에 있음을 가장 먼저 강조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 같은 사실들은 서연과 영숙이 같은 나이 대라는 공통점과 엄마를 증오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숙의 대사, “너랑 나랑은 닮았어.”라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서연이 발견한 지하 통로에서 불과 연기를 목격한 이후 둘이 나누기 시작하는 통화 내용은 모두 이러한 ‘평형상태’임을 강조하는데 집중된다. 그러나 이 상태는 곧 붕괴된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극단적으로 무너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곧 인과성으로 모두 연결된다. 원인이 발생하면 반드시 어떤 결과를 산출해야만 하는 이 방식을 통하여 영화의 모든 간극은 그렇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인과성은 과거의 영숙과 현재의 서연을 연결하고 서연과 아빠, 서연과 엄마를 연결하며 과거의 영숙과 현재의 영숙을 연결하기도 한다. 또한 인과성은 ‘아빠의 환생’을 ‘가족을 지켜야하는 의지’로 뒤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환생’을 ‘자유를 유지하려는 생존본능’으로 뒤바꾸는 과정 속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서연의 의지가 서연의 엄마에게 옮겨가고 영숙의 생존본능이 또 다른 자신에게 이입되는데 까지 깊이 관여한다. 그렇게 서연의 의지와 영숙의 생존본능은 정교한 인과적 연결을 통해 성장한다.

 

서연의 윤리적 의지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만나고 현재로부터 과거를 느끼면서 더 성장한다. 영숙의 생존본능 역시 과거로부터 현재가 살아나고 현재가 과거에게 명령하면서 더 강화된다. 잔인한 결과지만 그 속에서 서연의 의지는 실패하고 영숙의 본능은 성공한다. 서연의 의지는 가족을 향한 도덕적 윤리적인 성장을 가져다주었지만 영숙의 본능을 이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 서연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은 생존본능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영숙이 비로소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너무 명료한 이 엔딩은 한 가지 의구심을 남긴다. 어떻게 시간은 엇갈려 있는데 원인과 결과, 즉 인과성은 정교해 질 수 있는가. 이것은 둘 (시간과 인과성)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은 진리이니 용의자는 ‘인과성’이다. 그래. 영화<콜>은 인과성이 ‘시간’이라는 절대 진리를 위장(僞裝)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기만적인 행태에 다름아니다. 시간인척하는 인과성.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 영숙의 성공에 대한 의구심 하나가 자연스레 해소된다. 가능하지 않은 일이 가능한 일처럼 보인 것뿐이라고 의심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영숙의 성공은 성공처럼 보인 것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영화 <콜>이 주는 메시지라면 나는 열렬히 환영하고 싶다. 바꿔 말하면 서연의 윤리적 의지의 실패는 처참한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한 성공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이 진실인 척 위장하는 기만적 행태를 간접적으로나마 폭로하고 있는 셈이니까.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영화 <콜>을 통해 이런 사회적 행태를 경고하는 한 단면을 이렇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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