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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를 보며 여자를 생각하다 III <빅 아이즈>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를 보며 여자를 생각하다 III <빅 아이즈>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0.12.28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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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성의 이름을 함부로 지우는가

당신이 아는 여성 화가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몇 명이나 떠올릴 수 있을까. 많지 않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전체 미술사에서 여성 작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 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남성 화가들에 비해 여성 화가들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이 궁금증을 해소할만한 여러 이유 중 하나를 영화 <빅 아이즈>는 말하고 있다. 

 

<빅 아이즈>는 팀 버튼이 감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영화팬들이 설레며 기다렸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이 이전에 보여줬던 스타일의 독창성이나 시각적 상상력보다는 실화가 바탕이 된 스토리가 더 극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다. 영화는 ‘빅 아이즈’ 연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림(프린트)을 판 화가가 실제로 알려진 월터 킨(Walter Keane)이 아니라 아내였던 마거릿 킨(Margaret Keane)이었다는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마거릿(에이미 아담스)이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딸 제인과 집을 나오면서 시작된다. 1950년대는 여성이 집 밖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흔치 않은 시대였고 일을 하더라도 월급을 적게 받고 일해야 했다. 그녀도 간신히 가구 공장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일자리를 구하고, 주말엔 거리에서 초상화를 헐값에 그려주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거릿은 프랑스에서 그림 유학을 다녀왔다는 월터 킨(크리스토퍼 왈츠)이라는 화가를 만난다.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마거릿은 자칭 화가이자 생계를 위해 부동산업을 하는 월터와 재혼한다.

 

“남편분도 동의하셨나요?”
- 구직 회사 면접관의 질문 

여자가 그린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
- 남편 월터 킨

 

마거릿은 여자 혼자 사는 게 녹녹치 않은 시대였고, 딸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에서 좋은 남자와 재혼하는 게 아이에게도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는 남자의 말에 모든 걸 맡겨버린다.

월터는 전시회를 기획했고, 처음에는 화장실 복도에 전시되는 등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업 수완이 좋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클럽 헝그리 사건'으로 그림을 완판 시킨다. 이때 화가가 누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월터는 자신이라고 거짓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빅 아이즈는 월터의 그림으로 알려지게 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림에서 여성 마거릿 킨의 이름은 지워지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습에 따라  보다 쉽게 남성 월터 킨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한번 시작한 거짓말은 멈출 수 없었고, 그림을 팔기 위해 거짓말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안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성 화가의 입지는 무척이나 좁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월터는 돈과 명예를 자기 것으로 차지하기 위해 마거릿에게 더 큰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남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
- 마거릿의 고해성사에 신부의 대답

 

마거릿은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바로 잡지 못한다. 또다시 결혼을 깨는 것, 또다시 이혼한 여자가 되어 혼자가 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흘러가는 대로 끌려 다녔다. 여기에 월터는 마거릿에게 지금까지 그림을 산 사람들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그림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것은 마거릿에게 큰 족쇄가 되어버렸다.

 

여자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화실에는 오직 월터만 들어올 수 있었다

소극적 동조자가 된 마거릿은 딸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못 한 채 '월터의 유령작가'가 되어 하루 16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지만, 월터는 유명 인사와 친분을 맺으며 승승장구한다. 실제 그림을 그려야 했던 마거릿은 월터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방 안에서 그림만 그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월터는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라며 그녀에게 희생을 요구했고, 마거릿도 다시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그의 요구에 응한다.

그녀의 소극적인 태도와 주체적이지 못한 삶의 태도는 지금의 잣대로는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당시는 남편 보호 아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집을 나와 여자 혼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의 폭이 생긴다. 

 

“눈은 영혼의 창이잖아요.”

좁은 작업실에 숨어 딸에게조차 비밀을 유지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던 마거릿은 점점 딜레마에 빠진다. 슬프게 그림을 그리던 마거릿은 순간 자신의 눈이 그림처럼 커지고, 슈퍼마켓의 모든 사람들이 큰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환상을 겪는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지쳐가던 마거릿은 월터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사실 월터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지 않았고, 그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기꾼이었다. 월터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그림이라고 소개한, '킨'으로 서명된 그림은 사실 본인의 작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그림 위에다 서명만 새로 한 것. 즉, 이번 마거릿에게 한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훌륭함이 틀림없다” - 앤디 워홀

수완가였던 월터는 유명인을 활용한 광고와 비싼 그림을 사지 못하는 대중의 심리를 간파한 아트 포스트 복사품을 팔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심지어 마트에서도 빅아이의 복제품을 판매해 미국 대중미술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돈을 위해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던 월터는 평론가 존 카나데이에게 혹평을 받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월터는 파티장에서 만취 상태로 그를 만나 포크를 들고 위협하고, 이로 인해 월터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월터의 폭력성은 점점 위험해졌고, 결국 마거릿은 집을 떠나게 된다.  

 

'증거물 #224('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인 Margaret Dorris Howkins의 약자를 추가해 ‘MDK Keane’으로 서명하기 시작한다
'증거물 #224'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인 Margaret Dorris Howkins의 약자를 추가해 ‘MDH Keane’으로 서명하기 시작한다

1970년 10월, 마거릿은 라디오 토크 쇼에 출연해 빅 아이즈가 본인의 작품임을 밝히게 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미국에서 여권신장과 페미니즘이 성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6년, 마침내 마거릿과 월터의 저작권 재판이 열리게 되고, 판사는 진실을 가리기 위해 기발한 제안을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두 사람이 동시에 빅 아이즈를 그려보라.”

마거릿은 53분 만에 그림을 완성했고, 월터는 어깨 통증의 이유를 대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이날 마거릿은 법정에서 묵묵히 그렸던 ‘증거물 #224’로 승소하게 된다. “그녀가 원했던 건 그림과 딸, 두 가지뿐이었고 마침내 둘 다 가지게 되었다.” 빅 아이즈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여권신장 그리고 대중적인 키치(1) 문화의 확산, 대작과 저작권법 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아를 숨기고 사는 슬픔, 그로 인해 분열되는 자아, 당당해지고 싶은 자아 본능 등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는 마거릿이 행복하지 못한 자신의 심정을 슬픈 눈을 가진 빅 아이즈 연작으로 표현하고,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리기도 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던 바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이 걸릴 순 있겠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고, 오랜 시간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1) 빅 아이즈와 '키치' :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과정으로 경제의 중심축이 움직이고, 대중문화가 확산되었다. 이때 특정 계층만 누리고 있던 고급 예술을 벗어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구입할 수 있는 ‘키치’ 예술이 등장하게 된다. 비평가들은 킨의 그림을 키치의 일종으로 “지나치게 감성적”, “싸구려”, “천박하다” 등으로 평가했지만, 대중들의 문화적 욕망과 남편 월터의 미술품 판매 수완 덕분에 킨의 그림은 널리 알려졌다. 킨은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작품을 포스터나 엽서의 형태로 저렴한 값에 팔아 대중미술의 상업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월터는 당시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여성 작가를 드러내는 것이 작품 판매에 불리할 것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작가로 소개했다. 마거릿이 ‘빅 아이즈’로 표현한 감정과 느낌이 너무나 개인적이고 암묵적이어서, 월터는 그림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각종 티비쇼 등에 출연해 “빅 아이즈는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 절망에 빠진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렸다”는 거짓 내러티브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몇 년이 지나서, 마거릿은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인터뷰에서 “이처럼 슬픈 눈을 그렸던 것은, 내가 그림 속 아이들처럼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마거릿이 자신의 예술을 대변하기를 포기했고 월터가 대신 자신의 생각으로 작품을 설명했기 때문에 표현과 예술 사이에 단절이 생겼으며, 이 단절이 킨의 작품이 ‘키치’라고 불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출처 : 2020.5.13.-.9.27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 'BIG EYES : Margaret Keane Retrospective' 전시회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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