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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무기들』 서평
『개념무기들』 서평
  • 손보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07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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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질서의 발명이 필요하다>

『개념무기들』은 긴급한 시대진단과 함께 시작된다.

저자는 오늘날을 “신자유주의적 제국이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세기(31)”라고 말한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적 제국’은 자본주의의 최신 버전을 일컫는 말이다. 탄생 이래 이미 여러 차례 위기를 겪어온 자본주의는 그때마다 겉모습을 바꾸며 위기를 모면해 왔는데 ‘신자유주의적 제국’은 바로 그 최신판의 이름이다. 따라서 저자의 말은 자본주의의 최신판인 이 신자유주의적 제국도 이미 그 유효기간을 다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이제 다시 한번 대대적인 탈바꿈을 준비해야 할 텐데 이를 위해 동원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전쟁이다. 저자는 “위기 속에서 비전을 잃은 주권권력이 (...)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전쟁으로 자신을 구해 보려는 위험천만한 기회를 엿보고(31)”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탈바꿈을 위해 동원되는 전쟁. 이 전쟁은 자본주의적 정치체제인 주권국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획기적인 위기 타개책다. 우리는 이 위기 타개책이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직접 겪었던 살아있는 기억이 하나, 둘 개체적 수명을 다해가면서 우리 공동체에 자리하고 있던 경계심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는 듯하다. 점차 둔화해 가고 있는 경제성장 그래프와 함께 사람들의 꿈속에 다시 전쟁이라는 어둡고 끈적한 그림자가 스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떡상을 외치며 부릅뜬 눈들에서 어느새 위험천만한 기회를 노리는 음험한 꿈이 함께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은 긴급한 시대진단과 함께 분명한 시대적 과제도 제시한다.

“(...) 주도력을 잃고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낡은 제국질서에 맞서 특이한 차이들의 생산적 역량을 불러내면서도, 그것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로 빠져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질서를 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32)” 

이 과제를 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낡은 질서에 맞설 힘을 불러내기. 둘째, 대안 질서 발명하기. 그런데 무엇보다 이 두 과제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가 흥미롭다. 첫 번째 과제는 동시에 두 번째 과제의 필요를 제기하는데, 그 이유는 첫 번째 과제에서 요청된 힘, 즉 ‘특이한 차이들의 생산적 역량’이 대안 질서의 발명 없이는 모두 블랙홀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검은 구멍 (블랙홀) 속 풍경이 또 다른 살육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끔찍하다는 데에 있다. 블랙홀 속에 빠져 파괴와 해체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게 된 무자비한 힘들은 또한 너무도 쉽게 기존의 낡은 질서에 편입돼 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바로 이전작품인 『증언혐오』와 『까판의 문법』에서 상세히 묘사했다. 권력에 맞서고 중심을 해체하는 역량이 새로운 질서의 발명 없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질 때, 되려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증언자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모습을 두권의 책을 통해 상세히 분석했다. 그리고 오늘날 소위 사회의 엘리트층이라 불리는 기자,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이 그러한 파괴적 힘에 동조하면서 그것을 되레 범죄적 권력집단을 수호하는 쪽으로 견인하고 있음을 고발했다.

문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 『까판의 문법』에서 등장한 표현에 따르면 아래로부터의 자기조직화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철학자 질 들뢰즈의 개념들을 개념무기들로 읽기를 요청한다. 그런데 왜 하필 들뢰즈일까? 

 

<들뢰즈? 들뢰즈!>

들뢰즈?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이 시급한 상황에서 들뢰즈라니? 들뢰즈는 탈영토, 탈코드, 탈주의 철학자가 아니었던가?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들뢰즈 철학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그것이 놓인 여러 지형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이 책, 『개념무기들』의 서론에도 이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들이 등장한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질 들뢰즈는 68혁명을 살았던 철학자다. 들뢰즈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혁명의 힘이 곳곳에서 솟아나던 시기에 자신의 형이상학적 바탕을 이루는 작품인 ‘차이와 반복’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반자본주의 활동가였던 과타리를 만나 그와 함께 맑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수행하는 책 ‘안티 오이디푸스’를 집필했다. 이처럼 들뢰즈의 철학과 개념들은 혁명의 흐름 속에서 탄생해 이후로도 그것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펼쳐졌다. 

상상력에 권력을! 이라고 외쳤던 68혁명은 그야말로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새로운 관계들을 발명하며 몇 겹의 울타리를 넘어 전 지구로 뻗어나갔던 반자본주의 운동이다. 하지만 10년이상 지속된 이 투쟁도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에 대한 대탄압을 계기로 종결되고 이후 “(...) 강제노동에 대한 거부로 대표되는 68혁명의 내적 요구는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위로부터의 반혁명의 동력으로 전용되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실업 등 노동으로부터의 배제라를 방식으로 거꾸로 실현(28,9)”되었고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라는 68의 혁명적 구호도 “우리는 모두 기업가다!”라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호로 왜곡되었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저자의 2015년 작품 『예술인간의 탄생(2015)』에 잘 나와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종결되고, 운동의 구호들이 되레 자본주의에 전용되던 그 시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조류도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68혁명의 철학자인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이기도 할까? 이 질문에 딱히 정해진 답은 없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철학적 개념들을 해석하는 관점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서론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들뢰즈 수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부분을 지적한다.

들뢰즈를 수용하는 두 가지 관점이 있었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그 원천을 탐구하는 맥락으로 들뢰즈를 수용하는 것. 둘째,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거리를 두면서 들뢰즈를 혁명의 철학으로 재독해하는 맥락으로 들뢰즈를 수용하는 것. 저자는 후자의 관점에 서 있다. 저자는 들뢰즈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구별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신자유주의의 탄생에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68혁명을 실패한 혁명 혹은 비혁명으로 치부하려는 것에 맞서 그 혁명적 힘을 긍정하고 되살리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탈영토, 탈코드, 탈주. 이러한 개념들은 얼핏 보면 해체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논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유목주의로 대표되는 들뢰즈풍의 이야기 또한 좋든 싫든 신자유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사는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혁명적 구축의 힘이 제거된 이 반쪽짜리 이야기들은 달지만 금세 물리는 카라멜 팝콘처럼 어느세 들뢰즈의 철학을 싫증 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들뢰즈를 혁명의 철학자로 바라볼 때, 즉 그의 개념들을 개념무기들로 읽어낼 때 코를 자극하고 뇌를 마비시키던 단내가 가시고 비로소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들뢰즈를 탈주체의 철학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바라본 반쪽짜리 들뢰즈다. 주체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의 철학 공장에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 즉 혁명과 투쟁의 과정에 유용한 무기들이 가득하다. 들뢰즈의 철학은 팝콘 냄새로 가득한 극장이 아니다. 대안 질서를 발명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지금 들뢰즈의 철학 공장을 재가동해야 한다. 

『개념무기들』은 이 공장의 스위치를 누르고 각 설비(기계론, 시간론, 정동론, 주체론, 정치론, 속도론)를 세밀히 검토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개념무기들을 면밀히 검사하고 시험한다. 그것들이 고정된 주체를 해체함과 동시에 오늘날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도울 다중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글·손보미(문화평론가)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겸 <탈진실 시대의 진실연대자들> 회원. 탈진실시대에 새로운 진실 주체를 구성하기 위한 문화예술운동 '복면증언'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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