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랜짓>,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랜짓>,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11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랜짓>은 크리스티안 페졸트가 2018년에 연출한 독일 영화이다(한국에는 2020년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페졸트의 2020년 영화 <운디네>도 개봉을 했다). 이 영화의 원작인 아나 제거스의 소설 『수용소』(1944)는 나치가 점령한 독일에서 프랑스로 피신한 망명자들이 유럽을 떠나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트랜짓>의 주인공 게오르그(프란츠 로고프스키)는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친구로부터 바이델이라는 유명 작가에게 편지 두 통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바이델은 묵고 있던 호텔에서 자살을 했고, 게오르그는 바이델이 남긴 원고와 편지를 갖게 된다. 파리가 봉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게오르그는 중상을 입은 친구 하인츠와 함께 화물열차에 숨어 마르세유로 향한다.

 

영화는 원작에 따라 1940년대처럼 상황설정을 하고 있으나, 화면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그 시대의 재현과는 관계없이 촬영 당시의 모습이다. 따라서 모든 외국인은 등록증과 체류허가증 또는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비자와 승선표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불심검문을 통해 체포되는 설정이나, 경기장에 수용소를 설치해 외국인에 대한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는 설정 등은 나치 시대를 빗대어 유럽에서 현재진행 중인 난민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물열차를 타고 가던 게오르그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바이델이 남긴 원고를 읽기 시작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남자 음성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때문에 게오르그는 내레이션(나중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게오르그가 마르세유에서 자주 가던 몽벵뚜 식당의 주인으로 밝혀진다)에서 서술하는 주인공이 되므로, 관객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그를 지켜보게 된다. 게오르그는 바이델이 갖고 있던 편지 두 통과 그에게 전달되어야 했던 편지 두 통을 읽는다. 전자의 두 통은 나쁜 소식으로, “작가의 글을 출판할 수 없다”는 내용의 출판사에서 보낸 편지와 “결혼은 끝났다”고 하는 내용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보낸 편지이다. 후자의 두 통은 좋은 소식으로 “멕시코로 와도 좋으며, 비자와 여행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마르세유의 멕시코 영사가 보낸 편지와 “기다릴 테니 즉시 마르세유로 오라”면서 “멕시코에서 같이 새 삶을 시작하자”는 아내 마리(파울라 베어)의 편지이다. 그러므로 후자의 편지가 전달되었다면, 아마도 바이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게오르그와 마리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마리는 남편과의 재회를 포기하지 않는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유품을 멕시코 영사관에 전달하러 갔다가 바이델로 오인받게 된다. 그는 바이델에게 지급될 비자 등을 받고 멕시코로 떠나기로 한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찾아 헤매는 마리(그녀는 여러 번 게오르그의 뒷모습을 보고 남편이라고 착각한다)와 그녀의 연인 리처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마리를 사랑하게 된다. 게오르그가 마리와 멕시코로 떠나려고 애쓰는 사이, 그가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다. 불법체류자였던 멜리사와 드리스는 떠나고, 아마도 비자를 받지 못한 건축가는 자살한다. 그리고 마리와 리차드도 멕시코행 배가 기뢰에 맞는 바람에 죽는다. 그들이 차례로 사라질 때, 결국 게오르그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나치의 손에 제거된 유태인들과 함께 현재의 난민들이 떠오르게 된다.

 

몽벵뚜 식당에 나타난 마리는 게오르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기한 질문이 남겨진다.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마리는 ‘떠난 사람’이지만 남편을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맨다. 그녀는 “남겨진 사람이 상대를 잊지 못한다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게오르그는 마리가 남편을 만나겠다는 바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겨진 사람’ 쪽을 택한다. 그런데 마리는 죽은 다음에도 남편을 찾아 마르세유를 헤매는 건지 몽벵뚜 식당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녀는 게오르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식당을 나가버린다. 마리를 잊지 못하는 게오르그는 몽벵뚜 식당에서 죽은 그녀를 무작정 기다린다. 그가 몽벵뚜 식당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희미한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시간의 회로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다시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반복될 것만 같다. 역사에서 벌어진 일(비극)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될 수밖에 없거나 그렇게 계속 반복된다면, 바이델의 원고에 있었던 구절대로 여기/게오르그가 있는 바로 그곳이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