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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요요현상>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이들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요요현상>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이들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08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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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는 것은 그 얼마나 역동적이고 수려한 대상인가!... 우리는 각자가 가진 길과 교차로와 길가의 벤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각자가 탐색자로서 잃어버린 평야와 초원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 가스통 바슐라르"

 

시간의 기록만큼 매혹적인 게 있을까? 한 사람의 실제 인생을 몇 년간 꾸준히 담아낸 작품은 인물이 겪은 사건 만큼이나 그의 신체에 새겨진 시간이라는 자연의 마법을 대면하게 한다. 하루하루는 잘 보여지 않던 시간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자체는 늘 어떤 감동을 동반한다. <요요현상>(고두현, 2020)은 청소년기 요요 챔피언 다섯 명이 결성한 요요 공연팀명이다. 청소년기 그들을 빛나게 해주고 존재감을 일깨운 요요는 이십대 들어서니 주변에서 다들 취미라고 말하며 먹고 살 직장을 잡으라고 한다. 종기, 동건, 동훈, 현웅, 대열은 대학 졸업 직전 자신들의 ‘취미’를 정리하는 마지막 공연으로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 참여한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거기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꿈을 쫓는 이야기에서 대게 엔딩으로 택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그로부터 8년간의 삶을 기록한다. 일명 취미를 재능이자 꿈으로 가진 이들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영화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렇다고 동화의 반대 결말을 치닫지 않는다. 인생은 계속되고 현실은 동화나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법이다.

 

일과 꿈

어릴 때부터 늘 듣는 질문이 있다. 커서 뭐하고 싶냐? 어떤 일은 답을 하자마자 취미라고 하고, 어떤 일은 노력해보라고 장려하는 직업으로 간주된다. 요요를 말하면 취미이고, 의사나 변호사를 말하면 직업이 된다. 꿈과 직업이 혼돈되고, 취미와 직업이 분리되어 있다. 요요를 사랑하는 다섯 청년들은 이런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대학원을 간 동건, 직장 생활을 시작한 동훈, 요요 판매 사업을 시작한 종기, 그리고 대열과 현웅은 요요 공연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여기에 한명을 더하면, 요요 만큼이나 취미로 간주되는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 자신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지만 또래인 감독이 향하는 시선에는 질문이 가득 담겨있다. 함께 길 위에 서서 길을 찾는 자의 호기심과 동료애가 친구들 인생 여정에서 답을 찾듯 묻고 듣고 지켜본다.

 

가지 않은 길들

사실 정해진 길이란 게 있을까. 각자의 선택이 있고, 각자 선택에 따른 길이 있는 게 아닐까.각기 가야할 집이 다른 것처럼, 나의 집에 가는 길이 너의 집에 가는 길과 같을 수 없고, 나의 집에 가는 길조차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 터라. 각자의 집과 그날 선택하는 길조차 여건 따라 다른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길을 갈 때마다 길을 묻는다. 다른 사람들의 길이 맞는 거 같아서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야만 할 것 같아서, 사실 인생은 도착이 목적이 아니라 길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는 다섯 명이 향하는 각자의 길을 시간을 두고 가만히 따라간다. 취미였다고 깔끔하게 정리한 동건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가지며 취미로 하겠다는 동훈이 있고, 꿈을 비즈니스로 풀어가는 종기, 그리고 꿈을 직업으로 삼는 대열과 현웅이 그들이다. 요요 이야기이지만 요요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요요 대신 수많은 꿈이 대입가능하다. 또한 청춘의 이야기이지만 청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느 인생 단계 모두 대입 가능하다. 동훈처럼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찾기도 하고, 대열처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길이 보여 나아가기도 하고, 동건처럼 무관한 길로 들어서 그 길에서 치열하게 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길이고 인생인 것을 살아가는 그 순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그 굴곡과 변곡점을 시간의 힘을 빌어 판단없이 잘 짚어낸다. 그리고 조용히 되묻는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두고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 혹은 지금 꾸고 있는 꿈을 두고 어떤 길을 갈 수 있을까? 영화는 그 물음을 나누면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투영해 나를 보게 한다. 그래서 계속 보고 싶게 한다. 앞으로 8년 뒤는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터뷰의 순간

영화는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인물들이 겪은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인터뷰에 초점을 맞춘다. 인터뷰에는 순간의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표정, 목소리 톤, 눈빛이나 제스츄어를 통해 말 이상이 읽혀지고 기록되어 진다. 이들을 모아낸 영화는 표면의 말이 아닌 이면의 마음이 읽혀지는 몇 번의 숨죽이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 취직한 동훈이 처음으로 대회에 가지 않은 날, 일과 요요를 두고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 그 중 한 순간이다. 그는 신입으로 인터뷰 중간 중간에 공간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핀다. 백마디 말보다는 그의 행동이 제시하는 바가 크다. 그는 비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대열이 떠나고 혼자 요요공연을 하는 현웅의 인터뷰이다. “공연하는 거 좋아?”라는 감독의 질문에 “너무 좋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음과 대답 사이에는 제법 긴 침묵이 있고, 그 침묵은 그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일러준다. 어떤 길로 완벽하지 않고 어떤 길도 단순하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시간이 흘러 동훈이 다시 요요 연습을 시작하고 선수로 대회를 나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사건 자체 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위치와 표정은 백마디 말을 대신하고 있다. 더 이상 요요를 하지 않을 거 같았던 동훈이 요요 선수로 무대에 올라 화려한 기술을 성공시키고, 현웅은 요요 대회 주최측 심사위원, 종기는 후원이자 사업 관계자, 대열은 관객으로 함께한다. 대열의 표정에서는 한때 빛나는 챔피언으로서 무대에 더 이상 서지 않는 이유를 말하던 순간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표정과 그들의 박수는 각자 ‘서있는 길’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여운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동훈의 길이 답은 아니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만 길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요요현상>은 꿈의 이야기이고, 진로의 이야기이고,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꿈이 있고 현실이 있고 긴 시간을 걸친 인생이 있는 그런 삶의 이야기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다큐멘터리 전문 매거진 Docking의 고정필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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