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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는 돌아온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Caesar Must Die>(2012)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는 돌아온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Caesar Must Die>(2012)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15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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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만든 타비아니 형제는 형 파올로 타비아니(Paolo Taviani, 1929- )와 동생 빗토리오 타비아니(Vittorio Taviani, 1931- )입니다. 타비아니 형제는 1960년대 이태리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감독들로서 그들의 대표작 <파드레 파드로네>(1977)는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들이 다시 옛날의 명성을 찿으려는 노력으로 기억되며, 형식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비아니 형제 작품의 주제는 파시즘의 권력에 억압된 이태리 서민들의 저항과 생존을 그린 것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면에서 보면 시저가 독재자라는 성향 때문에 암살되었던 고대 이야기를 통해 파시즘의 주제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타비아니 형제는 로마의 레비비아 수용소에서 파비오 라는 연출가가 전문 극단을 데리고 매번 행하는 연극공연에서 착안하였습니다. 그 수용소는 마약딜러, 살인범 등 마피아와 관련된 온갖 흉악범들을 수용한 감옥으로 유명합니다. 중범죄자를 수용한 감옥의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하는 내용의 영화를 구상하면 어떨까? 착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타비아니 형제는 세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갖고 파비오와 같이 각본작업을 했습니다. 영화의 캐스팅은 실제 죄수들로 구성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 죄수가 연기를 연습하는 장면을 모아놓은 다큐멘타리이기도 하므로, 한편의 다큐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시저의 죽음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부르투스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시종에게 족음을 부탁합니다. 시종은 그를 칼로 찌르면서 오열합니다. 부르투스의 시체. 주위로 모든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객석에서 환호를 지릅니다. 한명씩 자신의 독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죄수들인 것입니다.

죄수들은 오디션을 봅니다. 그들은 셰익스피어 원작 [줄리어스 시저]를 공연하기 위한 역할을 맡습니다. 먼저 루시우스와 부르투스의 장면. 음모. 부르투스는 시저를 죽여야함을 역설합니다. 이어 음모에 가담하는 3월의 요정 집단의 장면. 부르투스의 전갈을 갖고, 누가 시저를 죽일 건가를 논의합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살인을 정당화시킵니다. 부루투스의 장면. 그는 자신의 과거 시절을 회상합니다. 자신을 배신했던 동료의 일을 생각하다, 너무 감정에 겨워 연습이 중단됩니다.

 

시저의 장면. 시저는 데시우스를 통해 원로원 등원을 권유받지만, 아내의 불길한 꿈 얘기를 들어 거부합니다. 하지만 데시우스는 집요하게 시저를 설득합니다. 원로원이 시저를 포상하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거부하면 앞으로 원로원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거라는 것. 이 둘의 장면은 평소 시저역을 했던 지아니가 상대 배우 후안을 공격함으로써 중단됩니다. 실제의 감정이 연습 도중 폭발합니다. 둘은 싸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다른 동료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연출가 파비오도 고민에 빠집니다.

시저가 원로원으로 들어가는 장면. 모의자들은 배신할 준비를 합니다. 그들은 시저를 둘러싸고 칼로 찌릅니다. 마침내 부루투스 조차도 시저를 찌릅니다. 그들은 자유를 외칩니다. 배우들은 극에서 빠져나와, 시저 연극의 불멸성을 이야기합니다. 안토니가 옵니다. 그들은 안토니를 회유하고 추대하고자 합니다. 안토니는 시저 시체에 용서를 구합니다. 부루투스 역시 시저 시체앞에서 자신이 시저를 죽인 것은 로마를 위한 것이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군중들은 그를 지지합니다.

시저의 양자 옥타비우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시저의 죽음에 복수하고자 안토니의 편이 됩니다. 부루투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악몽을 꿉니다. 그들간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옥타비우스는 전투에 승리하고, 부르투스는 패전한 후 자살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에 그는 시종 스트라토에게 부탁하여 죽습니다. 혁명은 실패한 것입니다. 부르투스의 시체앞에 모든 배우들이 늘어서고 막이 내립니다. 한명씩 원래 있던 감방으로 수감됩니다. 한 죄수가 혼자 읊조립니다. 연극을 한 이후 모든 것이 변했읍니다. 실제 배우가 된 죄수도 있고, 책을 내기도 했읍니다.

 

역사는 지금 내게 살아있습니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공연하는 실제의 인물과 그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격자구조의 드라마입니다. 격자구조란 극안에 또 다른 극이 있는 구조입니다. [햄맅]안에는 햄맅이 벌이는 또 다른 연극이 들어있지요. 그런 식의 구조를 말합니다. 이 영화의 구조는 죄수들이 희곡을 연기하고, 실제의 생활과 혼동되게 진행합니다. 관객들은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우들이 연극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 한번을 제외하고는 무대나 의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연기는 그것이 연습인지, 아니면 실제인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타비아니의 연출 포인트입니다. 타비아니는 일부러 실제와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와 허구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어서입니다. 따라서 주제는 실제와 허구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줄리어스 시저 시대의 고대 로마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죄수들은 현재 이태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공감대를 갖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타비아니는 이 영화를 통해 죄수들이 과거를 현재의 삶처럼 연기하면서, 과거가 현재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진리를 체득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개념이 병존합니다. 감옥과 연극, 현실과 허구, 현재와 역사 등입니다. 영화는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혼동스럽게 혹은 서로 교차하도록 하거나, 분리함으로서 비교합니다. 나중엔 주제인 인생의 의미로 승화시킵니다. 죄수들이 오디션할 때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칼라와 흑백이 교차하는 것은 그러한 상반된 의미를 비교합니다.

마지막에 연극이 끝난 후, 캐시우스 역을 했던 배우는 감방으로 들어가 수감됩니다. 이 부분은 칼라로 처리되어 있읍니다. 그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망설입니다. 이어 카메라를 보면서 정면에 대고 말합니다. “예술을 안 이후, 이 방은 감옥으로 변했습니다.” 연극을 하고나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았다는 말입니다. 되돌아보니 이제 자신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겠지요. 자신이 편하게 느꼈던 방이 갑자기 갇힌 방처럼 느꼈다는 사실은 그가 자유가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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