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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누군가의 꿈을 존중하는 자세에 대해: 드라마 <나빌레라>(tvN)
[문선영의 문화톡톡] 누군가의 꿈을 존중하는 자세에 대해: 드라마 <나빌레라>(tvN)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1.05.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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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운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발레에 대한 상식에 기대고, 나이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맞춰서 꽉 막힌 시선 아니면, 조금은 세련된 방식으로 70세의 선택을 바라보지 않을까? tvN 드라마 <나빌레라>는 70세에 발레를 시작한 심덕출(박인환)과 그의 23세 발레 선생 이채록(송강)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동명의 원작 웹툰 <나빌레라>(스토리 HUN, 작화 지민)를 12회 미니시리즈로 각색하였다. 웹툰 <나빌레라>는 드라마로 각색되기 전, 2019년 서울예술단에 의해 뮤지컬로 무대화된 적이 있을 정도로, 원작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높은 작품이다. 이러한 웹툰을 원작으로 할 경우, 캐릭터의 싱크로율, 영상화 재현의 기대 등 다양한 논의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드라마 <나빌레라>의 경우 발레리노, 70세 할아버지의 발레 등 영상 재현에 대한 기대나 염려가 높을 수밖에 없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TV 드라마가 점점 증가하는 경향 속에서 원작과 각색 드라마를 비교하는 일은 좀 더 꼼꼼한 작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원작이 주는 무게감을 잠시 내려두고, 드라마 <나빌레라>가 남긴 몇 가지 의미들을 발견해보려 한다.

 

누구에게나 꿈은 소중하다

 

드라마 <나빌레라>는 친구의 장례식장에 찾아간 주인공 심덕출이 70세가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덕출의 일상은 요양원에 있는 친구 방문, 칠순 가족 모임 등으로 이어진다. 덕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덕출의 소원을 묻는 물음에 부인 해남(나문희)은 덕출의 대답을 가로채서 말한다. “자식 잘되는 것, 우리 나이에 소원은 그것밖에 없지 뭐.” 별다른 의도 없는 해남의 말은 70세에 부여된 사회적 이미지를 제시한다. 70세는 내가 아닌 자식, 가족을 위한 삶이 전부인 것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는 안되는 것인가? 드라마 <나빌레라>는 덕출의 꿈을 향한 도전을 통해 이 질문을 풀어간다. 이는 단지 70세 덕출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물음일 수 있다.

덕출은 우연히 들린 상가 건물의 개인 발레 연습실에서 이채록의 발레하는 모습을 본 후,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순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의 꿈이었고,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꿈에 대한 기억이다. 채록의 발레는 우연히 극장 문틈으로 발레리노의 백조의 호수 발레 연습을 훔쳐보며 백조처럼 춤을 추고 싶었던 9살 덕출로, 발레 공연을 보며 발레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며 관객석에 앉아있던 덕출로, 기억을 이동시킨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70세의 덕출이 발레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있는 시작을 하게 된 이유는 막연하지만은 않다. 요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친구 교섭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을 담은 마지막 편지,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알츠하이머라는 병, 이 두 가지 사실은 오랫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삶의 상황 속에서 포기해야 해야 했던 선택들에 대한 후회, 아쉬움의 감정을 간절함으로 전환시킨 이유가 된다.

그렇게 덕출은 70세의 발레를 시작한다. 드라마는 70세의 할아버지가 발레를 시작한다고 할 때, 나올 수 있는 주변의 반응과 시선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70세에 시작하는 발레를 별다른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발레를 하고 싶다고 찾아온 덕출에게 기승주(김태훈)는 발레학원에 등록할 것을 권한다. “취미나 운동이 아니라, 온전히 발레를 하고 싶어요. 저도 잘 알아요. 늙고 힘없는 노인이라는 걸, 져도 좋으니까 시작이라고 해보고 싶어요.” 승주의 권유에 대한 덕출의 대답은 나이 들어서 색다른 취미 하나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발레를 시작한 것이 아님을, 늦었지만 발레에 대한 덕출의 진심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라는 현실과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서 포기해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가장의 역할에 충실 하느라 자신의 꿈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70세가 되어 시작했지만 덕출의 발레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다. 누군가의 꿈에 대해 진심을 묻는 것은 현실적 상황이나 조건, 보이는 결과가 기준이 될 경우가 많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70세에 발레를 시작하겠다고 나선 덕출에 대한 진심이 신체적 나이에 부딪히며 의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드라마 <나빌레라>는 70세 알츠하이머 환자 덕출이 발레라는 꿈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70세의 덕출뿐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과 절망을 오고 가는 23세 청년 채록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있다. 발레 천재 채록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고교 시절 축구에 재능이 없는 사실을 알고 그만두었다. 그는 아버지가 학생 폭행 사건으로 구속되고 축구팀이 해체된 후 발레를 시작하였다. 채록은 늦게 시작한 발레지만 뛰어난 감각, 무용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등 천재 발레리노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이다. 하지만 채록은 아버지 폭행 사건 이후, 어머니의 죽음, 축구팀 해체로 축구선수의 꿈이 좌절된 친구 호범에 대한 부채감 등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23세 무용과 휴학생이다. 그는 오랜 시간 풀지 못한 아버지와의 관계, 호범의 괴로힘 등으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과거 기억으로 흔들리는 불안정한 채록에게 스승 기승주는 덕출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긴다. 채록은 제자로, 매니저로 자신의 삶에 끼어든 덕출이 성가시고 불편하지만, 조금씩 덕출의 발레에 대한 진심을 알아가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무모하게만 보였던 70세 덕출의 발레에 대한 열정은 채록에게 자신의 꿈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알츠하이머 환자로 얼마 남지 않는 시간 안에서 온 힘을 다해 발레를 하는 덕출의 모습을 통해 채록은 과거의 상처를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절망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용기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드라마 <나빌레라>는 덕출과 채록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꿈과 관련된 단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정적인 회사에 정직원을 목표로 삼고, 모든 것을 견뎠던 23세 은호(홍은희),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방황하는 30대 성관(조복래), 현실에 안주에서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40대 성산(정해균), 임신과 출산으로 경단녀가 되었다가 다시 취업에 성공한 애란(신은정), 매번 낙선하면서도 선거 출마를 포기하지 않는 영일(정희태) 등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꿈처럼 여겨지도 하고 때론 속물처럼 보일지라도, 함부로 폄하되거나 쉽게 평가받아서는 안 될 그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각각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한 열망 자체는 모두 소중하다. 드라마 <나빌레라>는 누군가의 꿈에 대해 이해와 존중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70세의 발레를 시작하여 무대에서 날아오르고 싶은 덕출의 꿈도,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23세 채록의 꿈도, 현실적 생활에 묻혀, 자신이 원하는 것도 잊은 지 오래된 누군가의 꿈 모두를 말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속도를 찾아서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덕출 가족에게 복잡한 문제이다. 덕출이 시작한 발레는 여러 가지 사회적 편견과 맞물려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막내 성관, 며느리 애란을 제외하고 덕출의 가족은 덕출이 발레를 배우는 것을 반대한다. 반대의 이유는 간단하다. 70세의 노인과 발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민망한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건강 운운하며 당장 덕출이 다칠 것처럼 걱정하지만, 반대의 이유에는 타인의 시선이 있다. 남들 하는 것처럼 튀지 않고 아버지가 남은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자식들의 바람에는 덕출의 꿈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70세의 나이에 적당한 취미는 등산이나 바둑이라고 정해진 규칙이나 되듯 말하는 딸 성숙(김수진)은 아버지의 발레에 대한 마음을 단념시키기 위해 등산복을 선물하고, 큰아들 성산은 헬스클럽 회원권을 선물한다. 남편을 이해하는 아내 해남마저 처음부터 덕출의 꿈을 응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살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의 알츠하이머 증상을 가족들이 알기 전까지 덕출의 발레는 가족 모두의 응원을 받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70세의 발레를 시작한다는 것은 신체적 한계보다 사회적 기준으로 고정된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함에서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9살 때는 아버지 반대로, 70세에는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덕출, 무려 60여 년이 지나도 사회는개인의 특정한 삶의 방식은 존중하지 않는다.

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하지만 드라마 <나빌레라>는 9살에는 포기했지만 70세에는 포기하지 않은 덕출의 도전을 그린다. 70세 덕출이 취미가 아닌 정식으로 발레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막막한 것은 아니다. 물론 굳어진 육체와 체력적 한계로 발레의 고난도 동작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문 발레리노와 동일한 발레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작한 속도에 맞춰 발레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발레의 본질에 접근하는데 있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발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나 기준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내려놓은 순간 가능해질 수 있다. 드라마 <나빌레라>는 욕심내지 않고 덕출의 속도에 맞추는 채록의 성장 과정도 담고 있다. 채록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덕출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무대에 오르고 싶어했던 덕출의 꿈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조급해한다. 하지만 채록은 자신의 조급함만으로 덕출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점차 알아간다. 덕출의 속도에 맞춰, 현실적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채록은 누군가의 삶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삶도 지킬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진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는 이제 늦게 시작했다는 이유로 조급해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따른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스스로의 속도를 가지게 된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70세 덕출의 발레에 대한 도전, 간절한 꿈에 대한 진심이 드러나는 행동은 채록뿐 아니라 20대 청년에게 진정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덕출은 꿈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채록의 가치를 말해주고, 빛나는 모습이 수많은 아픔 속에서 견뎌온 채록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준다. 호범과 다툼이 난 현장에서, 덕출은 채록을 대변한다. “채록인 그런 아이가 아니야. 돈 준다고 당구대에서 춤춘다고 그런 애가 아니야. 채록인 크게 날아오를 사람이야.” 과거에 묶여 스스로 낮게 평가했던 채록은 덕출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은 사회적 편견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 있는 어른인 동시에 사회적 평가와 기준 속에서 불안해하는 20대를 향한 진심 어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성숙한 어른으로 그려진다. 덕출은 정직원이 되기 위해 직장 상사의 무리한 부탁을 다 들어주면서도 참고 견뎠지만 결국 이용만 당한, 손녀 은호의 전 직장 상사를 향해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마요. 나 어른 아니야. 그깟 나이가 뭐 대수라고. 전요. 요즘 애들한테 해줄 말이 없어요. 미안해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는데, 잘 안되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자리 꽤 차고 있으니까. 응원을 못해 줄 망정, 밟지나 말아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요.” 갑질하는 은호 상사에 대한 꾸짖음은 자기반성을 담고 있기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드라마 <나빌레라>의 또 다른 매력은 70세의 알츠하이머 환자의 꿈을 향한 도전, 23세 스승과 70세 제자의 발레를 통한 세대 간의 소통 등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성공 기준이나 삶의 조건을 규정하며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을 평가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은 대사는 마음을 울릴 만하다. “내 잘못 아니야. 알지?”

우린 모두 날아오르고 싶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날아오르고 싶어요.” 덕출은 기억을 잃어버릴 자신의 삶 앞에서 시작한 발레에 대한 진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늘 다른 무엇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며 살았던 덕출의 마지막 소망이 담긴 이 말은 간절한 그의 심정을 담고 있다. 덕출의 간절함은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가슴을 울린다. 우리 모두 어떠한 편견이나 제한 없이 자유롭게 나의 꿈을 펼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사회적 현실이나 잣대로 포기하거나 접어둔 무언가를 향한 열망, 반복되는 일상으로 잊고 있던 꿈을 향한 진심들을 어딘가에 꽁꽁 숨겨 둔 누군가를 향해, 드라마 <나빌레라>는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그러니까 끝까지는 가지마.”라고 말한다. 그것은 드라마가 주는 달콤한 위안일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행복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70세 덕출은 우리에게 삶을 돌아볼 시간을 준다.

 

 

글 · 문선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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