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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노매드랜드>의 명암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노매드랜드>의 명암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10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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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브루더가 지은 『노마드랜드』라는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들뢰즈가 말한 ‘노마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기존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꾸면서 살아가는 인간’에 관한 책인가 싶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클로이 자오가 연출한 2020년 영화 <노매드랜드>(지난해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여우주연(프란시스 맥도먼드)상을 받았다)를 보았을 때,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영화는 “2011년 1월 31일, 석고 보드의 수요 감소로 인해 미국 집섬이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공장을 폐쇄해 이 도시의 우편번호 사용이 중지되었다(즉, 도시가 몰락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다음 장면에서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밴을 타고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펀은 밴이나 RV, 픽업트럭, 레저용 차량 등, ‘바퀴 달린 부동산’에 기거하면서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노매드’가 된 것이다. 펀은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린다 메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노매드 커뮤니티 RTR(러버 트램프 랑데뷰)’을 알게 된다. 펀은 RTR의 회합에 합류해 ‘노매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간다.

영화는 펀을 통해 다양한 노매드들을 소개한다. 남편을 암으로 잃고 삶의 터전마저 잃은 펀처럼, 그들 각자는 저마다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노매드로 살아가면서 극복해 나가고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스웽키 할머니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지만 병원 대신 알래스카로 떠나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예전의 좋은 추억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RTR을 만든 밥 웰스는 아들이 자살하자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되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또 일종의 ‘로드무비’로서, 펀을 따라 미국을 가로지르며 광활한 자연풍경을 보여준다. 펀이 노매드로서 일자리를 찾아 그곳을 지나가거나 도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잠깐 잊는다면, 사시사철의 날씨와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풍광이 펼쳐지는 나라에 산다는 게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펀은 일이 없을 때면 자연 속에서 상실을 아픔을 치유해간다. 펀의 밴을 따라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피아노의 사운드트랙은 삭막한 영화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디제틱 사운드로 들어간 노래는 ‘서부영화’의 정취를 불러온다.

펀은 자신을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라고 지칭한다. 이 영화는 펀을 통해 노매드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에서 벗어 난 존재로 연출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없어진 것, 가령 집세, 전기⸱ 가스⸱수도요금 따위를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RTR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격려하고 아플 때 돌봐주기도 한다. 그들은 옛날 옛적 서부의 개척자들처럼 벌판에서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영화는 극적인 대목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는 가운데, 군데군데 감동을 선사하면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왜 ‘노매드’가 되었고, ‘노매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원작의 서문에 따르면, “떠돌이, 뜨내기, 부랑자, 정착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밀레니엄에 들어선 지금, 새로운 유랑 부족이 떠오르고 있다. 결코 노마드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여행길에 나서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중산층이었지만, 2007년부터 2009년에 걸친 세계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나이가 많아 재취업도 어려운 상태에서 주택을 잃고 길 위로 나서게 되었다. 평생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거처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저임금 노동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중심인물인 린다 메이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들려주는데, 노매드가 된 많은 사례 중의 하나처럼 치부된다.

 

펀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곳마다 같은 처지의 노인 노동자들이 가득한데, 미국 관객은 그 이유를 알기 때문인지 영화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아마존 같은 기업에서 젊은이에게 더 적합해 보이는 육체적인 노동에 나이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고용한 대가로 연방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중산층이었던 노매드들은 성실하게 일해온 습성이 몸에 배어있기에 착취하기 좋은 노동력이다. 영화에서는 경제 위기 속에서 국가는 파산에 몰린 개인을 어떻게 방치했는지, 기업은 나락으로 떨어진 개인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또 그들이 그나마 ‘백인 중산층’이었기에 그 ‘아비투스’를 바탕으로 의식주의 해결에 머물지 않고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는 ‘노매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점도 부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매드의 삶을 위태롭고 비참하게 연출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길에서 만나요”라는 노매드의 인사말이 다만 위로와 희망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국가 경제정책의 문제가 수많은 개인의 삶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렸다는 점을 환기할 수 있었다면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제공: (주)올댓시네마

글: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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