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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샤이닝>과 <인터스텔라> 속 '아폴로 11호'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샤이닝>과 <인터스텔라> 속 '아폴로 11호'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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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과 7.21

공식적으로 기록된 ‘아폴로 11호’의 착륙 날짜는 1969년 7월20일이고 시간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8시 17분이었다. 그런데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내디딘 건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지 6시간 39분 후였으니 날짜로는 하루가 지난 7월 21일 새벽 2시 56분이었다.

여기에서 7월 20일과 7월 21일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이 날짜의 차이로써 우리는 아폴로 11호의 착륙과 닐 암스트롱의 도착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차이를 이를테면 7월20일은 이른바 과학기술의 성공(아폴로 11호)으로 보고, 7월 21일(닐 암스트롱)은 인류의 결단적 승리라고 보면 심각한 비약일까? 어쨌든 아폴로 11호의 성과는 본격적인 과학기술의 시대를 열게 된 20세기 인류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두 날짜의 그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오히려 절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균형관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그 맥락의 차이가 좀 더 강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7월 20일의 아폴로 11호를 ‘왜곡’한 이야기로 보고 7월 21일의 인류의 결단적 승리를 ‘과장’한 이야기로 이해한 후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는 더욱 또렷해 질 수 있다. 특히 영화에서면 더욱 더.

 

사진출처: cnimeblend

아폴로 11호의 착륙 날짜

이쯤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떠올리는 것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특히 영화 <샤이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이미지의 도상학적 분석은 아폴로 11호와 관련 있는 음모론을 더욱 그럴싸한 것으로 만든다. 음모론 자들이 보기에, 영화 <샤이닝> 속 이미지들은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암시해 놓은 것들이었다. 때마침 논리적 설명까지 딱딱 맞아 들어가니 더할 나위 없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바로 그 이미지들의 의미는 아폴로 11호 달착륙 성공 날짜가 ‘영화적 시간’으로 뒤바뀌게 되면서 함께 모습을 바꾼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그의 강박에 가까운 정교한 연출력이 한몫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 날짜가 영화적 시간으로 바뀐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로 바뀌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 날짜는 어쩌면 너무 빨라진 기술진보의 속도를 경고하는 신호로 바뀔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큐브릭이 <샤이닝>을 통해 바꾼 아폴로 11호 착륙 날짜는 상징적으로 도로표지판 중에서도 제한속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될 수도 있다.

 

닐 암스트롱의 도착 날짜

닐 암스트롱의 도착날짜를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폴로 11호의 의미는 무엇인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를 잘 살펴보면, 기본적인 세계관 한 가운데에 ‘아폴로 11호’가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인터스텔라>의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폴로 11호’가 조작극이었다는 풍문을 기정사실화 해버린 사회를 배경으로 삼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설명하자면, 달이라는 다른 행성에 관심을 두는 모험은 체제 경쟁에 따른 무리수였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 오히려 ‘지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 식량문제는 그에 따른 부작용일 뿐이었다. 이런 전개 탓에 다른 행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의 쿠퍼(매튜 메커너히)가 주장하는 ‘개척정신’은 과장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 영화에서 ‘아폴로 11호’는 어떤 깨우침의 신호가 된다. 실제로 영화 후반 즈음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는 ‘아폴로 11호’ 모형이 깨지는 그 순간, 어릴 때 부터 보아왔던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원인이 바로 아버지 쿠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장면은 ‘아폴로 11호’가 소위 무지한 나를 일깨우는 경고신호로 작용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터스텔라>를 통해 바꾼 닐 암스트롱의 도착 날짜는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사실 그 순간, 그러니까 쿠퍼의 딸 머피가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게 된 순간에 쿠퍼는 우주복을 착용한 채 책장 뒤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상황은 ‘아폴로 11호’에서 나와 우주에 나와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출처: film school rejects

그렇게 보면 사실 ‘아폴로 11호’는 아버지 쿠퍼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 있었던 아빠를 모르고 있었던 '그 순간에서 깨어나' 비로소 그를 알아채게 만들어준 일종의 알람(alarm)의 은유. 그러면 이를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아폴로 11호에서 나와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도착 날짜는, 이 영화에서 만큼은, 일종의 알람으로서 영화적 시간으로 보면 머피가 깨어나야 할 시간을 표시해 주었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아폴로 11호 다시 보기

이렇게 보는 것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고 공감해준다면, 아폴로 11호의 착륙 날짜인 7월 20일은 영화 <샤이닝>을 만나면서 기술진보의 속도를 경고하는 ‘최고속도제한표지’가 되었고, 닐 암스트롱이 도착한 날짜인 7월 21일은 영화<인터스텔라>를 만나면서 잠든 나를 깨우는 ‘알람시간’이 된 것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 유형은 다르지만, 두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폴로 11호’는 영화를 거치면서 다른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신호’로 모두 기능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실제로 <샤이닝>은 에피소드 별 제목으로 요일 등을 말하고 있고 <인터스텔라> 역시 상대성이론의 시간들을 말하고 있으니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 맺을 수도 있겠다.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폴로 11호’의 이미지는 사실 ‘기대의 20세기’가 끝나면 맞이하게 될 ‘불확실한 21세기’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였는데, 마침 두 개의 시간으로 나뉘게 된 그 날짜들은 그 화살표 아래에 각각 ‘제한속도’(<샤이닝>)와 ‘알람시간’(<인터스텔라>)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자주 그 화살표, 그 신호 앞에서 사고를 내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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