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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의 밥 딜런과 비틀즈: 포크 뮤지션 사이토 데쓰오(斎藤哲夫)
[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의 밥 딜런과 비틀즈: 포크 뮤지션 사이토 데쓰오(斎藤哲夫)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6.07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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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데뷔 시기의 사이토 데쓰오(출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QQaOeFOwb-w)
1970년 데뷔 시기의 사이토 데쓰오(출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QQaOeFOwb-w)

 

1960-70년대에 걸쳐 형성된 일본 모던 포크의 초창기 뮤지션들은 대부분이 밥 딜런과 비틀즈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초기 일본의 포크음악은 사회 부조리를 겨냥하고 있었던 밥 딜런의 저항적 메시지와 감미롭고 매혹적인 비틀즈의 로큰롤 멜로디를 채용하면서 고도경제성장기의 일본 대중 속에 쉽게 침투해갔다. 또한 당시 일본이 직면하고 있었던 사회 현실에 밀착된 가사와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 공간에서 통기타 하나만 갖고도 공연할 수 있었던 탓에 가수와 팬들의 정서적 거리도 매우 가까웠다. 더욱이 일본 포크가수들의 든든한 메니지먼트 역할을 자임했던 레코드 기획사의 상업주의 전략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전폭적인 지원은 당시 일본 포크계가 대중의 문화적 정서를 장악해가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1968년 교토 지역에서의 재일조선인 고등학생들과 일본인 고등학생들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박치기>(2004)에서 라디오 방송국 피디가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포쿨의 곡 <임진강>을 과감하게 송출해버린 장면은 이 시기 일본 포크음악의 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즉 당시 일본 포크음악의 정치적 성격은 젊은이들이 정부의 규제와 사회 부조리를 조롱하면서 억압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주체적 위상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간사이(關西) 포크와 히로시마 포크는 물론, 당시 비틀즈의 고향에 빗대어 ‘일본의 리버플’로 불렸던 후쿠오카에서도 ‘RPB 마이니치방송’의 피디인 노미야마 미노루(野見山實)가 라이브 하우스 ‘조화(照和)’와 제휴하여 후쿠오카 출신의 포크 뮤지션들을 물심양면 지원해주었던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 포크음악이 대중 속에 쉽게 침투해갈 수 있었던 것은 기획사의 체계적인 음반배급 시스템과 라디오 방송의 상업적 영향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로 1970년대에 데뷔한 사이타마 현(埼玉県) 고노스(鴻巣) 출신의 사이토 데쓰오(斎藤哲夫: 1950-현재)의 포크음악은 밥 딜런과 비틀즈의 음악적 영향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데, 비교적 모던포크의 원숙기에 활동했던 그의 음악은 초기 일본 포크 스타일로 회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메이지학원대학 1학년 시절 URC 레코드에서 발매한 싱글 데뷔 앨범 <고민이 많은 자여(悩み多き者よ)>(1970)는 매우 익숙한 밥 딜런의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으며 또 URC 시대 사이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러나 나의 인생(されど私の人生)>(1972)과 <굿 타임 뮤직(グッドタイムミュージック)>(1974)은 마치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특히 영미권의 팝 감각이 농후한 사이토 데쓰오의 하이톤 목소리는 특별히 밥 딜런과 비틀즈의 음악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기치조지(吉祥寺)>와 같은 컨트리풍의 곡을 소화하는 데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실제로 1970년 데뷔곡인 <고민이 많은 자여>가 발표되었을 때 세간으로부터 “밥 딜런의 재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가사가 전달해주는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평론계에서는 그를 ‘젊은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력을 갖춘 다른 포크가수들과 달리 사이토 데쓰오는 그때까지 청중을 앞에 둔 무대에 오른 경험이 겨우 세 번에 분과했을 정도로 미숙한 가수에 속했는데, 포크가수를 자처했음에도 정작 무대에 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을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그의 성격도 그를 ‘노래하는 철학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이토가 처음으로 많은 청중들을 상대로 노래를 불렀던 것은 1970년 1월 아카사카(赤坂)의 ‘도시센터홀’에서 개최된 ‘IFC 전야제’에서였다. ‘IFC’란 ‘International Folk Caravan’의 약자인데, IFC의 본래 계획은 미국 포크음악의 선구자 피트 시거(Pete Seeger)와 렌 첸들러(Len Chandler)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포크 뮤지션 16명을 초청하여, 홋카이도에서부터 오키나와까지 이르는 65개 도시의 일본 포크 뮤지션들을 합세시킨 뒤 1970년 4월부터 일본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트 시거의 불참으로 인해 이 거대한 이벤트가 불발에 그치게 되자, 그저 ‘IFC 전야제’의 포크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사이토 데쓰오가 전국적인 포크 스타로 부상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970년 8월에 개최된 ‘나카쓰가와(中津川) 포크 잼포리’에서였다. 당시 메이지학원대학 재학생이었던 19세의 나이로 URC에서 발표한 데뷔 싱글 <고민이 많은 자여>는 완전히 밥 딜런과 존 레논을 종합해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 곡으로 유명하다.

1970년 데뷔앨범 '고민이 많은 자여' (출처:  https://www.discogs.com)
1970년 데뷔앨범 '고민이 많은 자여' (출처: https://www.discogs.com)

 

고민이 많은 자여

고민이 많은 자여, 시대가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모든 것이

슬픈 아침에 고통의 밤에

끊임없이 시대를 둘러싸고 반복되고 있다

아, 인생이란 한 개의 나뭇잎처럼

아,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거겠지

흘러가는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된다

변해가는 사회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고민이 많은 자여, 시대가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모든 것이

삭막한 나날들이 일그러진 나날들이

휴일이 없는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아, 인생은 휘몰아치는 황야처럼

아, 살아가는 길을 누가 잊을소냐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가식의 세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허무를 솔직하게 표현한 노랫말, 그리고 편안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양립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 곡은 밥 딜런의 영향력이 강력히 자리잡고 있었던 19세에 작사·작곡되었다. 일본 포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카바야시 노부야스(岡林信康)의 뒤를 이을만한 새로운 스타가 절실히 필요했던 URC 레코드에게 이러한 사이토 데쓰오의 프로테스트 포크 스타일은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당시 전공투 세력의 격렬한 폭력투쟁에 직면한 인간적 공허가 사람들을 점차 내성적·개인적 영역으로 파고들게 하는 징후가 팽배해 있었던 이때의 사이토의 곡들은 시대정신이나 사회 혁명을 좇기보다 고동경제성장기 가져다준 자본주의의 파행과 급격한 인간 삶의 변화를 겨냥하면서 일상을 그저 안일하게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저 소시민 특유의 패배감이 감돈다. 가령 <너는 영웅 따위가 아니야(君は英雄なんかじゃない)>(1972)와 같은 곡은 세계혁명을 부르짖었던 전공투 세대의 굳은 의지를 한갓 애송이들의 헛된 꿈으로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이토 데쓰오 2015년 라이브 공연 포스터(출처: http://mapafter5.blog.fc2.com/blog-entry-3753.html?sp)
사이토 데쓰오 2015년 라이브 공연 포스터(출처: http://mapafter5.blog.fc2.com/blog-entry-3753.html?sp)

 

너는 영웅 따위가 아니야

차례차례 밀려오는 큰 파도를

너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쓸데없이 허세를 떨다가 세상 풍파에 이용당하면서

너는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것인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너는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쓸데없는 트집은 그만 두고

자, 흐름을 놓치면 끝장이야

마음을 굳게 먹고 한눈팔지 말라고

말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해

“당신을 사랑해”와 같은 쓸데없는 말에 놀아나지 말고

너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아직도 만만하게 믿고 싶은 마음이겠지

위아래 사방이 모두 변하고 있어

손을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그런데도 너는 고루하게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자, 흐름을 놓치면 끝장이야

마음을 굳게 먹고 한눈팔지 말라고

아, 너는 결코 이 세상의 영웅이 아니야

걸핏하면 무릎을 꿇고 그저 나약하게 살아나갈 뿐이라고

그러니 입 다물고 마음의 창을 닫고

누군가 다가오면 뭐라도 나타난 얼굴로

계속 걸어가기만 하라고

어떻게 되든 앞으로는 고민할 필요도 없어

그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자, 흐름을 놓치면 끝장이야

마음을 굳게 멀고 한눈팔지 말라고

그래, 너의 뒤에서 웃고 있는 수많은 망자(亡者)들을 알고 있는가

너에게도 언젠가는 망자가 될 날이 점차 다가오겠지

사랑이니 평화니 매일 입에 올리고 사는 너는

뒤에서 갑자기 다리를 채이고

머리를 헛되이 놀리게 되면 갈 길이 멀어만 질거야

넘어지고 구르고 무너지는 것

그것은 모두 너의 생각 하나에 달려있겠지만

자, 흐름을 놓치면 끝장이야

마음을 굳게 먹고 한눈팔지 말라고

1972년 사이토 데쓰오는 URC에서 SONY로 이적한 이후 줄곧 팝 노선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79년 포니 캐니온(ponycanyon)으로 이적할 때까지 듣기 편한 팝 음악활동을 꾸준히 지속해가면서 1980년 CM송 <지금 너는 반짝반짝 빛나고(いまのキミはピカピカに光って)>로 반짝 히트를 기록했으나, 이후 일시적인 은퇴시기를 거친 후 1988년부터 음반 제작 세션으로 참가하면서 새롭게 음악활동을 재기했다. 그러던 중 2011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요양을 거쳐 회복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소극적인 음악활동을 지속해가고 있다.

 

 

글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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