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호 구매하기
[김시아의 문화톡톡] 『에밀리와 괴물이빨』 : 에밀리처럼 ‘괴물이빨’이 필요한 때
[김시아의 문화톡톡] 『에밀리와 괴물이빨』 : 에밀리처럼 ‘괴물이빨’이 필요한 때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6.07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스위스 그림책 작가 엠마뉴엘 우다가 그린 『에밀리와 괴물이빨』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을 검색해보면 4-5세를 대상으로 유아 신간 코너에 소개되어 있다. 그림책은 유아가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에 의해 대부분의 그림책은 어린이 코너에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림책 장르가 발전되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읽는 그림책’, ‘0세부터 100세까지, ’‘인생그림책’이라는 컬렉션 이름표를 달고 출간되어도 그림책은 여전히 어린이 코너에 정리되고 글에 갇힌 어른들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에밀리와 괴물이빨』은 어린이보다 청소년과 어른에게 권하는 그림책이다. 마음 속에 화, 분노, 불안과 걱정이라는 ‘괴물’ 하나씩을 안고 사는 어른들과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며 괴물같은 언어와 행동으로 부모를 괴물처럼 화나게 만드는 청소년 말이다. 그림이 강렬해서 어린 아이에게 보여준다면 부모가 꼭 안아주고 다정하게 읽어주면 된다. 사실 아이들은 괴물을 좋아하기에 걱정하지 않지만 두려움이 많은 아이도 있으니 세심한 배려와 주의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림책 속에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에밀리는 뭐든지 모으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에밀리의 방은 놀이의 공간이자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가는 공간이 된다. 방 안에서만 노는 아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자리를 마련해줄 때까지 부모가 섣불리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를 존중해주며 기다려주는 모습이 보기 좋은 그림책이다.

 

엠마뉴엘 우다 그림, 루도빅 플라망 글, 『에밀리와 괴물이빨』, 김시아 옮김, 바람의 아이들, 2021
엠마뉴엘 우다 그림, 루도빅 플라망 글, 『에밀리와 괴물이빨』, 김시아 옮김, 바람의 아이들, 2021

 

에밀리는 강하고 새로운 아이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면의 ‘괴물’과 당당히 싸우는 여자 아이다. 이런 아이를 부모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남성의 담론 속에 길들여진 교육을 받은 엄마와 할머니가 과거의 문화와 정서를 주입 시킨다면 위험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엘렌 식수는 이렇게 말했다. (『메두사의 웃음/출구』, 2004: 15)

“지금은 옛 여자에게서 새로운 여자를 해방시킬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자를 잘 알아야 한다.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 또한 지금은 그녀 자신 이상이 되기 위해, 옛 여자를 초월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적으로 파동들을 집합시키며 동시에 분리시키는, 단 한 줄기 선으로 화살이 현을 떠나듯이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여자를 마중하러 앞장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시집살이 당한 시어머니가 새로운 며느리를 더욱 괴롭힌다는 말이 있듯 ‘새로운 여자’를 환대하는 경우가 드물다. 『에밀리와 괴물이빨』을 살펴보면, 식수의 말에 동의하듯 엄마도 할머니도 에밀리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으며 에밀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방문 밖에서 에밀리를 기다려준다.

엘렌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에게 덫 씌워진 프레임을 깬다면, 『에밀리와 괴물이빨』의 그림작가 엠마뉴엘 우다는 ‘여성적 그리기’를 통해 남성의 담론 ‘속’에서 굳어진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그래픽 예술가다. 『아픈 괴물』(2004)이나 『화』(2008)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그는 ‘괴물’을 시각화 하며, 인간의 감정 중에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화’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한다.

우다는 삶의 모순을 그래픽적으로 보여준다. 이율배반적이며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의 그림은 처음엔 낯설다. 그러나 구석구석 작은 디테일을 살펴 볼 때 사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발견한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어린이를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고 많은 그림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어린이들이 ‘표준’의 노예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 하였다.

우리 사회에도 에밀리처럼 씩씩하고 강한 여성이 있다. 2020년 n번방 사건에 대한 폭로와 고발로 용기있는 활약을 했던 ‘불꽃추적단’ 대학생 두 명이다. 그들은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하고 폭로하며 여성 피해자들을 구한다.

프랑스어로 괴물 (monstre)이란 단어는 라틴어 ‘monstrare’에서 온 말인데 ‘보다 (montrer)’라는 뜻과 ‘표시하다 (indiquer)’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보는 행위는 한편으로 괴물스런 행동이 되기도 한다. ‘n번방 사건’의 경우 관음증이라는 집착에서 ‘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괴물’스런 행동인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다.

에밀리가 내적 괴물과 싸운다면 불꽃 추척단은 외부적 괴물과 싸웠다. 괴물로 변해버린 사람들이 잡혔는데 뉴스에 공개된 주범들의 얼굴이 너무나 평범했고 어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2010)에서 보면 ‘밀양 성폭행 사건’(2004)을 모티브로 영화의 중심 사건이 되며 등장인물인 여중생 희진의 시체가 강물에 유유히 떠내려오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가해자들의 부모들과 학교 교장은 사건을 잠재우기 위해 합의금을 마련하고 가해자 중의 한 명인 종욱도 죄책감이 없다. 하지만 종욱의 할머니 양미자는 이런 모든 사실 앞에서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결국 사랑하는 손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희진을 위한 애도의 시 ‘아녜스의 노래’를 쓴다. 영화에서 사건을 마주하는 여성과 남성의 태도는 다르다. 영화나 뉴스로 이러한 사건들이 공론화 되어도 여전히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 여성이 자살하는 사례를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를 통해서 듣는다. 무엇이 수많은 남성들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일상 속에 있는 남녀차별과 전 근대적인 노예교육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미셀 푸코에 의하면 “19세기에 기숙학교와 병영은 아이를 어른으로, 촌뜨기를 도시인으로, 순진한 사람을 영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헤테로토피아』, 2014:22) 21세기 조차도 남북의 대결 구도 상황아래 대한민국의 청년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간다. 순진한 학생과 청년이 군대에 가서 영악해지고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쉽다. 불의를 보고도 상관의 눈치를 봐야하고 묵인하기 쉬운 처지다. 자유는 묵살되고 모든 것이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위계질서와 폐쇄된 군대 문화.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각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집단 문화일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보호되지 않고 여전히 피해를 당하는 사회. 안전불감증 속에서 매일 죽어가는 노동자들. 비인간적인 사건과 사고가 계속되는데도 달라지지 않는 우리 사회를 보며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분노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나는 괴물의 몸 속에서 싸우는 에밀리 같다. 비극을 전하는 뉴스로 인해 화와 분노감이 거의 매일 찾아온다. 책을 정리하는 평화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겠다.

 

 

글 · 김시아

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의 이해’를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등을 번역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