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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욕망의 구조를 바꾸는 노력
[이주라의 문화톡톡] 욕망의 구조를 바꾸는 노력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1.06.14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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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존 인간사회의 구조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기 때문에, 언제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사회에서는 그 발전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술의 전환이 촉발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19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방직기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기 시작했던 러다이트 운동은 고전적이며 대표적인 신기술 반대 운동이다. 러다이트 운동을 필두로 신기술 개발에 대한 반대와 우려 그리고 저항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담론으로 기능했다.

2020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도 기술 개발을 통해 창업을 하려는 인물들과 그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기는 기존 노동자와의 갈등이 아주 잠깐이나마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원인재(강한나 분)가 투자가들 앞에서 사업 설명회를 할 때, 기존 경비업체의 노조위원장 남성환(김원해 분)이 질문을 한다. 그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삶의 기반이 사라지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원인재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자동차의 개발로 택시가 도입되었을 때부터 인력거꾼의 저항은 존재했었다고, 그때 인력거꾼의 일자리만 중요하게 여겼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동에 제한을 겪는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덧붙여, 인간의 삶도 중요하지만, 더 나은 인간의 삶은 기술의 발전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보통 이렇게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이 이러한 논쟁의 마지막을 장식하곤 한다.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 기술지상주의 시대에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기술 개발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 논쟁을 남상환의 발언으로 마무리 짓는다. 노조위원장인 자신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기술의 발전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자는 것이라고, 인간이 기술의 발전 속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의 속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 사회 및 윤리적 관점의 전환 속도를 추월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특히 인간의 인간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는 문화의 영역에서는 인간을 제쳐 놓고 달리는 기술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염상섭의 「전화」와 같은 소설은 1920년대 단편이지만, 새롭게 도입된 소통 기술인 전화가 예전에 면대면으로 진행되던 인간관계를 얼마나 삭막하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를 비판한다.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30년대 영미권 SF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기술의 발전만을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불평등을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간의 고유한 사유의 세계를 파괴하여 인간을 원초적 쾌락에만 반응하는 존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사물인터넷이나 AI의 발달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벌써부터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 그래서 20년 뒤면 사라질 직업에 대한 짐작들이 나오고 있으며, 디지털로 업무 처리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문맹들이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 우려의 담론은 늘 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인간관계를 해체하는 것에 대한 불만 혹은 기술에 적응 못하는 인간의 도태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는 SF소설 작품들은 기술 발전의 속도나 인간의 부적응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조금 더 근본적인 지점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가 기술을 대하는 관점에 문제적인 지점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2.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고,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정세랑의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2016년에 문예지 『자음과 모음』 32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최근 2020년에 정세랑의 SF 단편소설을 묶어서 펴낸 단행본 『목소리를 드릴게요』에도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독일의 한 의학자가 뇌의 손상된 해마를 일시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하면서 시작한다. 이 약은 일시적으로 해마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쉽게 말하면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하늘색의 이 작은 알약은 “비아그라 이후 가장 놀라운 파란 알약”이 된다.

그런데 이 파란 알약이 비아그라를 능가하는 위대한 약이 되는 이유는, 비아그라처럼 예상치 못했던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알약은 약 3시간 정도 해마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약의 도움을 받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서 사랑을 나누기 전에 약을 먹었고, 영화광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보거나 듣기 전에 약을 먹었다. 예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가장 생생한 상태로 영화를 기억저장고에 보관할 수 있었다. 범인의 수사에도 이 알약은 유용했다. 목격자들이 알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우연히 범죄자를 목격했을 경우, 관련 기억들을 아주 상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지식 축적도 더욱 빨라졌다. 다른 도구에 의존할 필요 없이 한 사람이 인류 전 역사에 걸친 정보를 다 기억해서 저장할 수 있었고, 이 정보력이 바탕이 되었기에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도 새로운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효능을 가장 잘 활용한 집단은 역시 수험생들이었다.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 속에서 성공을 위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하는 수험생들은 이 알약을 먹고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 3시간 동안 공부한 모든 내용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기억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때때로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여배우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독재국가의 고문기술자들은 고문을 할 때 알약을 활용했다. 단 한 번의 고문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고문당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고문기술자들에게서 풀려나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에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하였다. 그들은 결국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약의 부작용은 자극의 강도였다. 이제 사람들은 이 약이 제공해주는 만큼의 강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한 기억을 하지 못하였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은 이 약이 해마를 활성화시키는 정도의 자극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강렬한 자극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만큼의 강렬한 자극이 있어야지만 해마를 활성화시켜서 새로운 경험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약이 없으면 어떤 기억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약의 중독성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약이 없이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은 선택적 기억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약을 먹고 기억을 하고, 그렇지 않은 순간은 약을 먹지 않고 기억을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인류 역사의 오류들은 쉽게 잊혀졌다. 예를 들어 전쟁의 역사. 아무도 전쟁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살해 현장에서는 바로 파티가 열렸고, 대학살은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독재자의 자녀들이 적법하게 정권을 계승받았다.” 이 알약 하나로 인간 사회는 완전히 망가졌다.

“하지만 그전에는 이러지 않았나요? 그 조그만 알약 전에는요? 끔찍한 일들이 없었다고 말해봐요. 그때도 사람들은 이 모든 참혹을 다 잊지 않았나요?”

정세랑은 작은 알약 하나가 바꿔 놓은 세상을 나열한다. 정세랑은 그 특유의 나열법을 통해 하나의 기술이 인간 사회의 세세한 부분까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하나하나 보여준다. 기억을 생생하게 만드는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 대해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해 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을 잘하게 된다면 가질 수 있는 유익한 지점과 예상 외로 생겨나는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접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담론 구조는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기억을 활성화시키는 기술의 장점과 단점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세랑의 소설은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에서 넘어서는 지점을 만들어 낸다. 이 알약으로 인한 폐단이 인간 사회를 근본적으로 망쳐놓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렇지 않았나요?

즉, 어떤 기술이든지 그 기술은 항상 기술 그 자체가 발명되었을 때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을 초래했다. 그리고 인간들은 새로운 기술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서 매뉴얼대로만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지점에 그 기술들을 적용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은 심장약 비아그라의 다른 새로운 기능을 발견해낸 것이다. 어떤 기술이든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한다. 그러니 기술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문제라는 것이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치매약으로 개발된 작은 알약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 같으나, 사실 그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그 알약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었다. 알약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3. 욕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정세랑의 작품을 비롯하여 최근 한국의 SF소설들은 기술 자체에 대한 우려나 공포를 표현하기보다는, 기술을 다루는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 한,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사회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김보영의 「빨간 두건 아가씨」에서는, 인간이 사이버보디를 통해 성(性)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현재의 사회 구조 속에서 그 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보여주었다.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 구조가 지속된다면, 여성들은 취업과 생존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모두 남성으로 바꿀 것이고, 그렇다면 이 사회에 여성의 존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이버보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우리는 이를 쉽게 잊는다. 현재에 일어나는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 등등을 해결하는 방향을 논의할 때, 너무나 쉽게, 특정 기술만 개발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새로운 기술이 초래할 결과는 항상 경제적 관점에서만 논의된다.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감소 등과 같은 논쟁으로만 다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필요한 논의이기는 하다. 이 논쟁의 장도 당연히 확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술 자체의 개발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필요하다. 기술의 개발은 언제나 인간이 욕망하는 방향을 따라 진전되어 나간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성형의 기술을 발전시켰고, 건강과 장수에 대한 욕망은 의학을 발전시켰다. 편리함에 대한 욕망이 온갖 통신, 이동 장비를 발전시켰으며, 또한 일회용 포장 용기의 보편화까지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인간이 육체적, 물리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려고 하는 욕망의 구조가 항상 정당한 것일까. 인간은 항상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초월하여 더 나은 능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불완전성과 필멸이라는 삶의 조건을 부정하고 뛰어넘으려 기술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보영은 「우수한 유전자」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우수한 인종들만 모여 있는 문명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시한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깨끗하고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문명 세계인 스카이돔 사람들은 “육체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으므로 매일 엄청난 분량의 식사를 섭취해야 합니다. 더위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므로 늘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건물이 필요하고, 질병에 취약하므로 모든 종류의 예방접종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를 거부하려고 하면, 우리는 결국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재 욕망하는 무병장수의 욕망,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그리고 편리함에 대한 욕망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그 욕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기술의 발전이 모든 인간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글 · 이주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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