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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 포크계의 전위: ‘다섯 개의 빨간 풍선’과 가가와 료
[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 포크계의 전위: ‘다섯 개의 빨간 풍선’과 가가와 료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05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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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빨간 풍선 앨범: 출처 아마존재팬]
['다섯 개의 빨간 풍선' 1집 앨범 자켓: 출처 아마존재팬]

일본 포크계의 아방가르드, 니시오카 다카시

1960-70년대 일본 포크를 대표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악성을 지향했던 밴드를 꼽는다면 아마도 ‘다섯 개의 빨간 풍선(五の赤い風船)’이 단연 선두를 차지할 것이다. 일본 포크의 여명기에 등장하여 약 3년간의 짧은 활동 기간 안에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했다는 사실 외에도 외부 뮤지션을 영입하여 앨범을 녹음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약 23분 길이의 실험적이고도 자유로운 음악을 대담하게 전개해갔던 그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967년 리더인 니시오카 타카시(西岡たかし)를 중심으로 하여 오사카에서 결성된 포크그룹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은 1969년 2월 URC에서 발간한 『다카다 와타루/다섯 개의 빨간 풍선』으로 데뷔했다. 당시 초대 멤버는 니시오카 타카시를 비롯하여 후지와라 히데코(藤原秀子), 나카가와 이사토(中川イサト), 나가노 다카시(長野隆) 등 총 4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먼 세계로(遠い世界に)>(1968.5)라는 곡으로 데뷔하자마자 일약 인기 포크 스타 그룹으로 등극했다. 그 후 나카가와 이사토가 탈퇴하고 그 자리를 아즈마 요시타카(東祥高)가 대체하면서 밝고 온화한 대중적인 노래뿐 아니라 절묘한 코러스 기법을 활용하여 환각적인 아방가르드를 표방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동시대 일본 포크와의 차별화를 지향해갔지만 1972년 8월 갑작스럽게 해체를 선언했다.

이들의 음악은 포크 장르에서는 다소 낯설어 보이는 글라켄슈필, 챔발로, 비브라폰, 오토 하프 등을 도입하여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하면서 몽상적인 코러스 워크의 조화를 탁월한 솜씨로 발전시켰는데, 가사의 내용은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 듯 반전가요나 사회 부조리를 표방한 곡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 곡들은 지금 들어보아도 서정성이 극대화된 박진감이 넘치면서도 세련된 연주 기법에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다섯 새의 빨간 풍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곡이자 일본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먼 세계로>는 작사 작곡을 담당한 니시오카 다카시의 탁월하고도 심오한 음악적 재능이 잘 발휘된 명곡으로 꼽힌다. 그만큼 그룹 ‘다섯 새의 빨간 풍선’은 니시오카 다카시의 원맨밴드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리더의 역할이 독보적이었다. 즉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이 일본 포크계의 전성기에 활동했음에도 독보적인 전위적 사운드를 표방해가면서 당시의 포크 씬과 일정한 선을 그었던 것은 순전히 니시오카의 독자적인 음악세계가 개입해 있었던 탓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포크음악에서는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3분짜리의 대곡 <이따금 그것은(時々それは)>과 같이 물소리와 빗소리 같은 사운드 이펙트를 절묘하게 활용한 곡뿐만 아니라, 노래 제목도 <#·い ×○△××>, <#·ろ ×○△××>와 같이 기호의 나열로 표기해 두는 등 이들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의 범주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험성이 강한 곡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2014년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의 데뷔 4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URC 창고에 잠들어 있던 앨범들과 라이브 앨범을 합하여 한정판 앨범을 재발매한 바 있다.

전성기에 발매되었던 앨범으로는 옛날이야기(あとぎばなし), 巫OLK脫出計劃, 다섯 개의 빨간 풍선 인콘서트(五つの赤い風船 インコンサート), 게임은 끝났다(ゲームは終わり)가 있는데, 각 앨범마다 대중적으로 히트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은 1972년 해체한 이후 1979년 두 번의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했고, 결국 지난 2000년에 재결성하여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을 상징하는 곡이자 이 그룹의 압도적인 대표곡으로 꼽히는 명곡 <먼 세계로(遠い世界に)>(제1집,1969.2)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반전가요 <환상의 날개와 함께(まぼろしの翼とともに)>(제2집,1969.8)를 함께 소개한다.

 

[다섯 깨의 빨간 풍선 앨범: 출처- ]
[다섯 개의 빨간 풍선 앨범 자켓(1979): 출처-日本告本屋]
 

먼 세계로

 

먼 세계로 여행을 떠날까 / 아니면 빨간 풍선을 타고 / 구름 위를 걸어나 볼까 / 햇빛으로 무지개를 만든 / 하늘의 바람을 가지고 돌아가서 / 어두운 안개를 날려버리고 싶어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도 / 밝은 태양이 얼굴을 보여주어도 / 마음은 항상 슬프네 / 모두가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일조차 / 지금은 모두 잊혀버렸네 / 하지만 우리에게는 젊은이들이 있지

구름 속에 숨어있는 작은 별들은 / 이것이 일본이다 내 나라다 / 젊은이들의 힘을 몸으로 느끼고 / 모두가 걸어가야만 하는 기나 긴 길이지만 / 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 내일의 세계를 찾으러 가자

 

환상의 날개와 함께

 

지금도 나는 생각이 난다 / 그때의 그 일 그 날의 사람들 / 나와 똑같은 학생이었지 / 나라를 위해 죽어갔다네 / 너는 젊고 씩씩했지 / 짧은 목숨이었지만 / 환상의 날개와 함께 / 불길 속으로 사라져버렸네 / 너는 젊고 늠름했지 / 짧은 목숨이었지만 / 환상의 날개와 함께 / 불길 속으로 사라져버렸네 / 너는 그날 밤 네게 말했지 / 연인과 이별하고 왔다고 /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그때 너의 그 눈빛을 / 네가 죽은 다음 날 밤 / 슬픈 눈물을 흘리며 그 여자가 죽었다 / 이제 싫다 이런 세계는 / 다시 보기 싫다 / 네가 죽은 다음 날 밤 / 슬픈 눈물을 흘리며 그 여자가 죽었다 / 이제 싫다 이런 세계는 / 다시 보기 싫다

 

가가와 료 1집 앨범 자켓-출처: httpsthemmagazine.neteditors_voice20171917
가가와 료 1집 앨범 자켓-출처: httpsthemmagazine.neteditors_voice20171917

죽고 나서 신으로 불리기보다는 살아서 바보로 불립시다: 가가와 료(加川良)

 

여기 또 한 명의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일본 간사이 포크를 대표하는 가수가 있다. 1947년 시가현(滋賀県) 히코네시(彦根市)에서 태어나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 포크음악의 열기에 휩쓸리면서 포크 가수가 된 가가와 료(1947-2017, 본명: 고세이 요시히로(小斉喜弘)가 바로 그다. 가가와 료가 시선을 깔고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쩐지 햇살이 늘어지는 늦은 오후에 인정 많은 이웃 아저씨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한때의 정경처럼 온화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강인한 구릿빛 피부에 명민해 보이는 눈동자,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짙은 콧수염에서 풍기는 강렬한 인상 탓이 크겠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기타 선율에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몸짓은 그의 노래가 갖는 특유의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1970년 데뷔한 이래 2017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왕성한 포크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가가와 료가 처음 포크음악에 입문한 장면은 지금까지 다루어온 뮤지션들의 경로와 전혀 달랐다.

1969년 대학 졸업한 직후 1970년 URC의 판권관리회사인 ‘아트음악출판사’의 사원으로 취직한 가가와 료는 그 회사의 기관지 포크 리포트지를 편집·판매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960년대 일본 반체제 포크의 최대 성과로 불리는 다카다 와타루(高田渡)와의 교류가 이어졌다. 그저 평사원에 불과했던 가가와 료가 갖고 있는 음악적 안목을 눈여겨보았던 다카다 와타루는 그에게 작사 작곡을 제안하는 동시에 포크가수로서의 활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밀어주었는데, 이 사소하고도 우연한 사건은 훗날 장수 포크가수로서의 삶을 이어갈 가가와 료의 음악 인생을 결정지어주었다. 즉 가가와 료는 간사이 포크나 히로시마 포크와 같이 일본 포크 씬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것도 아니었고, 또 일찍이 포크의 세계관에 매료되어 빼어난 솜씨를 뽐내며 대중적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가 되어간 수많은 포크 뮤지션들의 입문 사례와 전혀 다른 루트로 포크계에 입문해버렸던 것이다.

1970년 8월 ‘제2회 나카쓰카와(中津川) 포크 잼보리’에 다카다 와타루, 이와이 히로시(岩井宏)의 추천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고, 거기서 자신의 자작곡 <교훈 1(敎訓1)>을 불러 의외의 실력을 뽐냈는데, 이것이 가가와 료의 데뷔 무대가 되었다. 사실 가가와는 대학 시절 당시 일본 대중음악계의 유행을 선도했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애니멀즈와 같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서양 밴드를 모방한 음악활동을 취미삼아 잠시 거쳤을 뿐 포크음악 따위에는 흥미도 없었고 또 포크를 부른 경험조차 없었다. 그랬던 그가 70세가 넘은 현재 일본 포크계를 대표하는 가수로 꼽히고 있는 것은 팬들의 두터운 신뢰를 가져올 만큼의 탁월한 실력을 보유해갔으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현재까지 가가와 료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으로 꼽히는 <교훈 1>은 일본의 아동문학가 우에노 료(上野瞭,1928-2002)의 작품 <전쟁에 대하여(戦争について)>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이 곡의 가사 중 “너무 무서우면 뒤꽁무니를 빼세요. 도망가세요, 숨으세요”라는 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당시 최고조에 달해 있던 반전가요의 유행 효과를 노린 동시에 정치적 문제에 대해 과도하게 혹은 어설프게 개입하고 싶지 않은 심정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건조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가가와의 정신적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971년 이 곡이 수록된 그의 첫 앨범 <교훈(敎訓)>이 발매되고, 이어서 1972년 URC 레코드에서 두 번째 앨범 <친애하는 Q에게 바친다(親愛なるQに捧ぐ)>가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그 무렵 교토(京都)로 이주한 다카다 와타루의 집을 방문했던 당시의 풍경을 노래한 <하숙집(下宿屋)>도 수록되어 있다. 다카다 와타루가 그랬던 것처럼 가가와 료의 노래는 나지막이 시를 읊는 듯한 가창법, 그리고 일상의 사소하고 정감 있는 소재들을 주제로 삼는 등 다카다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곡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 미국의 컨트리풍이 짙은 곡도 공존했다.

또한 1973년에 발표된 첫 라이브 앨범 <야(やぁ)>는 가가와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다섯 개의 빨간 풍선’의 멤버 나카가와 이사토(中川イサト)의 지원이 빛을 발한 음반으로 평가된다. 이어서 URC 레코드에서 벨우드 레코드로 이적한 직후인 1974년에는 <아웃 어브 마인드(Out of Mind)>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 동안 URC에서 보냈던 포크 싱어로서의 책무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한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975년에는 유명 뮤지컬 극단 ‘도쿄 키드 브라더스’(東京キッドブラザース)의 이름이 함께 표기된 앨범 <10월은 황혼의 나라(十月は黃昏の国)>에 이어, 1976년 <남행 하이웨이(南行きハイウエイ)>와 1978년 <고마자와 근처에서(駒沢あたりで)>를 연이어 발표했으며, 2017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솔로로 활동하거나 밴드를 이끌면서 일본 전국을 돌며 공연 활동을 지속했다. 여기에서는 가가의 료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교훈 1>을 소개한다.

 

만년의 가가와 료-출처: https://starforest.exblog.jp/26770615/
만년의 가가와 료-출처: https://starforest.exblog.jp/26770615/

교훈 1

 

목숨은 하나 인생은 한번 / 그러니 생명을 버리지 마세요 / 당황스러우면 그저 얼떨결에 / 나라를 위해서였다고 말하면 돼요 / 너무 무서우면 뒤꽁무니를 빼세요 / 도망가세요, 숨으세요 / 우리가 죽은 뒤에도 고향은 / 그 이후에도 계속 남아있으 거예요 /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일 뿐 / 목숨을 다시 살려주는 일은 없어요 / 너무 무서우면 뒤꽁무니를 빼세요 / 도망가세요, 숨으세요 / 목숨을 버리고 남자가 되라는 /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떨렸을 거예요 / 그래요, 저는 여자라서 괜찮아요 / 여자로 썩었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 너무 무서우면 뒤꽁무니를 빼세요 / 도망가세요, 숨으세요 / 죽고 나서 신으로 불리기보다는 / 살아서 바보로 불립시다 /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다 해도 / 그 목숨만은 버리지 마세요 / 너무 무서우면 뒤꽁무니를 빼세요 / 도망가세요, 숨으세요.

 

글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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