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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한국적 난센스? : 그림책 작가 서현의 우주적인 유쾌한 유머
[김시아의 문화톡톡] 한국적 난센스? : 그림책 작가 서현의 우주적인 유쾌한 유머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05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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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은 1982년생이다. 그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유쾌함을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독자를 매료시키는 그의 힘은 무엇일까?

『눈물바다』(2009), 『커졌다』(2012), 『간질간질』(2017)에 이어 4년 만에 『호라이』와 『호라이호라이』 두 권의 그림책이 6월에 동시에 출간되었다. 2020년 안산시 도서관에서 영상을 제작한 <책 안 보고 뭐하니?>를 살펴보니 팬데믹의 여파로 그의 그림책 작업이 늦어졌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녹색 표지의 『호라이』를 보니 달걀 프라이가 곳곳에 있다. “호라이가 밥 위에”를 시작으로 “머리 위에”, “꼬리 위에”, 심지어 “빨랫줄에” 널려 있고 “수박 안에” 들어 있는가 하면 “손톱 위에” 있다가 “글자 위에” 있다가 “네 컷 만화에” 등장한다. 노른자와 흰자 모양의 호라이는 우주선 같다가 태양 같다가 어느새 고양이의 눈동자 형태였다가 발자국까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유머를 자아낸다. 게다가 페이지 사이에 끼었다가, 숨었다가 “꿀꺽”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라졌다가 남자아이의 노란 얼굴에서 웃는 이빨 위에 그려져 있으며 독자와 눈을 맞추고 끝난다. 서현의 그림책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상상을 초월한 그림과 유머와 함께 웃으며 성장하면 된다. ‘넌센스’ 장르처럼 이야기의 통념을 깨뜨리고 비논적리인 과장이 유쾌한 웃음을 던진다. “책에서 나무가 자라는 걸 보았어요”, “우산은 필요 없어요. 비옷도 필요 없어요.”라며 주인공 아이는 나무처럼 손을 하늘로 뻗고 혀를 내밀어 입을 벌린 채 땅에 꽂혀서 비를 기다린다. 얼마나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페이지를 넘기면 “와, 비다!”라고 감탄하는 주인공과 비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이의 성장을 나무에 비유하며 나무와 같이 아이의 발가락에선 뿌리가 자라 주인공도 놀라고 독자도 놀란다. “어?”, “어?”, “어?”라는 단순한 질문의 문장은 주인공의 흰옷에 적혀져 있는데 아이의 커지는 몸과 함께 타이포그래피도 커진다. 글과 그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 글이 있고 커지는 글자에 따라 소리 내 읽는 독자의 목소리가 저절로 커진다. 반복과 과장의 리듬은 페이지 안과 프레임 밖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점진적으로 끌어낸다.

 

Ⓒ 서현, 사계절 출판사, 사진 김시아

서현의 그림책은 상호텍스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눈물바다』를 살펴보니 여러 모양의 우산과 더불어 달걀 프라이는 검은 고양이의 우산 역할을 하며 소품으로 등장한다. 호박 머리 짝꿍도 더 단순화된 형태로 『호라이』에서 재등장한다. 하지만 『눈물바다』에서 “훌쩍”이라는 의태어는 『호라이』에서 “꿀꺽”이라는 의성어로 변했다. 시험을 못 봐서 울고, 밥을 남겨서 울던 추억은 눈물과 함께 정화된 후, 『커졌다』에서 웃음은 더욱 유쾌해졌다. 그뿐 아니라 『눈물바다』에서는 눈물이 바다가 되었을 때 온갖 이야기 캐릭터가 등장한다. 『수궁가』의 토끼와 자라, 상어에게 잡아 먹히는 순간의 피노키오, 인당수에 빠지려는 찰나의 심청이, 눈물바다에서 목욕하는 선녀와 헤엄치는 인어 등 수많은 캐릭터는 호쿠사이의 <파도> 같은 거대한 리듬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눈물바다』의 주인공은 침대를 탄 채 파도를 탄다. 이야기를 아는 독자는 이미 알고 있는 캐릭터를 찾느라 가로로 긴 페이지를 넘기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어릴 적 보고, 듣고, 읽었던 이야기를 소환하느라 독자들도 기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눈물바다』와 마찬가지로 『커졌다』에서도 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가 주인공이다. 『눈물바다』에서 아이의 얼굴이 밤톨 모양이라면 『커졌다』에서 아이의 얼굴은 더 동그랗고 도토리 같다. 작은 차이가 또 다른 캐릭터를 낳는다. 『커졌다』는 도토리처럼 작은 아이가 무한대로 크고 싶은 욕망을 이야기한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단군 할아버지와 마호메트 신이 웃으며 심판을 보는 그림책 안의 세상은 평화롭고 “하늘 위로 구름을 뚫고”, 우주만큼 커지는 ‘나’는 달걀 로봇과 친구가 되고 별똥별 사탕도 먹는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달걀은 이미 우주를 품은 씨앗이며 우주적인 상상력은 지구까지 삼켜버린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달걀은 『간질간질』 면지에서 달걀 프라이로 그려져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머리카락이 주인공 캐릭터가 되고 수없이 많은 분신이 되어 엄마에게 “밥 주세요. 간식 주세요.”를 반복할 때 엄마가 요리하는 음식은 프라이팬 위의 달걀 프라이다. 이렇게 달걀은 외형과 내형의 형태로 등장하다가 당당하게 『호라이』와 『호라이호라이』 ’형제 그림책’ 주연에 캐스팅된다. 『호라이』 표지에서 사람처럼 앉아 있는 달걀 프라이는 왠지 외계인 같다. 의인화까지는 아니어도 비생명체를 생명체처럼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호라이호라이』 표지를 보면 달걀 프라이는 더 나아가 의인화되었다. 수북하게 담긴 밥 위에 올려진 달걀 프라이의 난감한 표정이라니. “나는 호라이”, “밥 위에만 있고 싶지 않아!”라며 당찬 달걀 프라이의 신나는 모험이 시작된다. 달걀 프라이는 어느새 달, 태양, 모자, 눈동자, 우주선으로 변신하더니 급기야 수없이 많은 날아다니는 우주선 같은 달걀 프라이를 만난다. 초현실적인 유머는 일상적인 밥상에서 시작하여 우주적 공간에서 여행하고 냉장고로 돌아오는데 계란판 위에 지구를 비롯하여 여러 모양의 행성이 있다. 달걀에 금이 가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행성인지, 공인지, 동그란 초콜릿인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며 말없이 끝난다.

‘하얀 몸과 노란 얼굴’의 달걀 프라이는 성장 서사의 욕망이자 알레고리다. 넥타이의 무늬와 마크처럼 그려져 있는 모습은 어느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정적으로 보이다가 샌드위치 속에서 기이한 표정으로 널브러져 있는 호라이는 기이하다.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는 서현 작가는 그림책과 만화의 문법을 오가며 독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유머를 만드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단순한 이야기도 창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성소영, <채널예스>, 서현 ‘작가와의 만남’ 참고)

“3년~5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1년 이상 걸리는 것 같습니다. 『간질간질』 은 2년에 걸쳐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이야기의 씨앗은 6년 전에 나왔는데 작업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완성해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그림책은 얇고, 그림이 그려져 있고 글이 짧아서 금방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짧은 책일수록 만드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립니다. 이야기를 다듬고, 정해진 페이지 안에서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그림을 수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림책은 독자들이 사서 읽어야 작가들이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정치적으로 혼탁하고 상식과 논리가 전복된 ‘팬데믹’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이렇게 유쾌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그림책이 있어 삶은 견딜만하다. 심심할 땐 정치권의 나이 든 어른들처럼 비열하게 싸우지 말고 상상을 하자!

 

 

. 김시아 (KIM Sun nyeo)

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의 이해를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8월 출간 예정)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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