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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시제와 시선의 어긋남, 그리고 그 비극-<소공녀>
[김희경의 문화톡톡] 시제와 시선의 어긋남, 그리고 그 비극-<소공녀>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12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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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사람의 시제는 오늘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에서 이에 부합하는 사람은 오직 한명 미소(이솜 분)뿐이다.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며 하루살이처럼 지내는 미소는 어떤 순간에도 시제를 오늘에 맞춘다. 매일 가계부를 쓰면서 지출 목록을 하나씩 지워야만 하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이 시제는 변함이 없다. 오늘 당장 내게 기쁨을 선사할 담배와 위스키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반면 미소를 제외한 인물들에겐 오늘의 시제가 내일이다. 지금 다니는 기업보다 더 큰 기업에 가야한다는 생각,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소공녀>는 시제의 불일치로부터 출발, 시선의 엇갈림을 거쳐 시선을 아예 차단하게 되는 로드무비다. 누구나 자신의 시제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나의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과거의 가치관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게 되는 법이다. 결국 서로의 시제가 일치하지 않으면 각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미소는 지금 이 순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미소가 답답하기만 하다.


미소의 여정은 월세도 오르고, 담배값도 오르면서 시작된다. 미소는 지출 목록을 지우던 중 집을 지워버린다. 담배와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여기엔 자신과 공간과 시간을 나눌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미소는 과거 밴드 활동을 같이 했던 다섯 친구를 찾아 나선다. 이때마다 영화는 그들이 있는 공간, 즉 회사나 집을 비춘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친구의 이름과 그 친구가 연주했던 악기 이름을 자막으로 넣는다. 영화는 이들의 밴드 활동을 사진 한장으로만 기억하고, 플래시백으로 과거 연주했던 장면은 굳이 넣지 않는다. 그런데도 친구 이름 아래에 악기 이름을 배치하는 이유는 뭘까. 악기는 변하지 않는다. 반면 이 악기로부터 빛나는 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모두 변했다. 영화는 단 두줄의 자막만으로 그 대조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변화된 다섯 친구들은 처음엔 미소를 반가워해도 이내 불편해 한다. 친구들에게 미소의 자유는 일차적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유는 내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가치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시선이 작용한다.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미소는 그저 인간 미소일 뿐이다. 그러나 집을 나온 미소는 남성들에게 여성의 이미지로만 각인된다. 록이와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집에 들어온 미소를 성적 도구로만 취급한다. 대용은 미소에게 방을 따로 내어주고 자신의 방문은 걸어잠근 채 대화를 거부한다. 와이프와 헤어져 여성에 대한 상처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미소와 대용의 와이프는 전혀 다른 존재들이지만 순식간에 여성이란 점으로 묶여 버린다.

 

미소는 시선은 단순명료하다. 그러나 미소를 둘러싼 시선들은 너무 복잡하고 미소와 전부 엇갈린다. 그래서인지 미소는 시간이 흘러 하나씩 지출 목록을 지워가면서 이 시선들까지도 제거해 버린다. 휴대폰 연락이 되지 않는 것, 그리고 백발이 되어 버린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에 가까웠을 시선의 차단을 의미한다.


먼저 다섯 친구들은 서로 만나 미소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통신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소가 휴대폰을 쓰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관계의 단절은 이 친구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카메라로 비춰지진 않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버린 남자친구 한솔과의 연락도 끊어졌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소는 특정 거주지조차 없어 편지를 주고받기에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인된 시선의 제거는 혼자가 된 미소의 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한편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백발은 이제서야 미소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암시한다. 머리가 백발이 될까봐 늘 약을 먹어야 했던 미소는 마지막 숏에서 백발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위스키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떠났음은 알 수 있다.

약은 미소의 지출 목록에서 유일하게 시선과 관련된 항목이었다. 젊은 여인에게 백발은 남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는 요소일뿐이지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약 대신 위스키를 선택한 미소가 끝내 제거해 버린 것은 세상의 시선이며, 남긴 것은 오늘의 행복이다.

 

 

*사진: 네이버영화

글 · 김희경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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