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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설명서 상의 공포: 영화 <랑종>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설명서 상의 공포: 영화 <랑종>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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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랑종>

영화 <랑종>의 ‘공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 야바위꾼의 손가락처럼 경직되어 있다. 본디 야바위꾼은 현란한 손기술만으로 모두를 속여야 한다는 운명 탓에 한 순간의 서투름은 치명적인 몰락을 가져온다. 퇴물 야바위꾼의 운명은 그래서 비참하다. 영화<랑종>을 보는 내내 이 퇴물 야바위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은 이유 역시 이 영화가 비참해 보여서다.

 

페이크 다큐와 <랑종>

영상에 기록된 어떤 사실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하기 이전, 그러니까 영상 기록물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때 <블레어 위치>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제작비의 이천 삼백 배가량의 경이로운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당시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왔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가장 흔한 수식이기도 하다.

 

이른바 마녀를 찾기 위해 떠난 이들의 실종 이후, 그 부근에서 발견 된 영상물을 편집 없이 공개한다며 허접해 보이는 홈페이지에 슬쩍 흘리는 전략은 그야 말로 바이럴 마케팅의 끝판 왕이면서도 <블레어 위치>를 세기말 기념비적인 영화로 등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강력했다.

그 강렬함은 영화제작의 세계에서 이른바 먹히는 기획이 되어 이후 돌려막기 하듯 아류작들을 정신없이 쏟아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관찰예능과 같은 이 영화 장르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 서서히 자기만의 문법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문법은 꽤 성공적이어서 제품 제작 설명서처럼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 탓에 우리는 <블레어 위치>류의 영화적 전략에 길들여지다 못해 이젠 한 눈에 알아챌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랑종>은 그 사용설명서와 같은 제작 문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연기이지만 연기가 아닌 척하는 연기. 영화<REC>를 그대로 따라한 장면 등은 바로 그 지나친 의존의 상징들이다.

 

설명서대로 만든 공포

사실 두 감독의 역량을 감안하고 보면 이런 식의 접근은 의아하다. 이를테면 이렇다. 무당과 신내림의 관계는 괴물도 악령도 아닌 이른바 ‘불안한 인간’의 전형을 유지한 채로도 얼마든지 끔찍한 공포를 포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컬트적 표현에 함몰되고 말았다는 것.

 

예를 들면 <랑종>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님’(싸와니 우툼마)의 절규 장면(무심한 풍경 속에 오디오로만 전해진다.)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그 공포를 느끼고 있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제아무리 대대로 이어져온 만행과 그에 대한 보복, 그것을 사적 영역이든 공적 영역이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 가리지 않고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섬뜩한 그 순간들은 인간적인 공포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더 끔찍하게 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홍진 감독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독특한 공포관은 단언컨대 바로 그것을 탁월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은 그런 주특기를 배제하고 전위적인 행위와 빤한 페이크 다큐 문법으로 이들을 성기게 이어놓음으로써 영화<랑종>을 장르 강박에 빠진 오컬트 영화로 만들고야 말았다. 그렇게 그들이 기획한 공포는 페이크 다큐의 문법에 포박되어 설명서대로 만든 공산품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페이크 다큐의 성공 문법에 지나치게 기댄 탓에 각종 자극적인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하기 까지 한다. 

 

그럼에도 영화 <랑종>의 미덕은 그들의 주특기인 삶과 공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려는 시도에 비교적 충실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어떤 기운에 압도당하는 순간의 비극적 공포는 우리 삶의 일부이고 그런 삶이 이루는 기록들은 곧 역사가 된다는 식으로 말하려 한 흔적이 간간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분노와 보복의 역사가 주는 공포가 더 고통스럽고 끔찍할 때가 있다. 영화 <랑종>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분노와 보복의 초-역사적 공포, 바로 그것이긴 했다.

하여튼, ‘설명서대로 만든 공포’는 한 순간의 서투름으로 몰락하고 마는 퇴물 야바위꾼의 비참한 말로와 다르지 않은 결말을 이끌 수 있다는 것. 영화 <랑종>은 바로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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