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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간과 AI의 공존은 불가능한가?-<엑스 마키나>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간과 AI의 공존은 불가능한가?-<엑스 마키나>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02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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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 스틸컷.

‘사람 의사’보다 ‘AI(인공지능) 의사’에게 진료를 받겠다는 환자가 더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AI 의사’의 오진율이 ‘사람 의사’보다 더 낮다는 조사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상상력과 관련된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AI가 미리 설정된 주인공과 줄거리 등을 바탕으로 단어나 형용사를 조합해서 쓴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AI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과학기술이 됐다.

<엑스 마키나>(2015·감독 알렉스 가렌드>는 AI와 관련된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SF영화이다. 가상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영화 속의 사건들이 현재 지구촌 어느 대학, 어느 기업의 연구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엑스 마키나>의 세계는 가상현실이면서 실제 현실이고, 미래이면서 현재일 수 있다. 무엇보다 <엑스 마키나>는 AI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관계, 소통과 공존의 문제를 탐구한다.

칼렙(돔놀 글리슨)은 검색 엔진 기업의 유능한 프로그래머이다. 그는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개발자이자 회사 회장인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칼렙은 네이든의 비밀 연구소에서 네이든이 창조한 AI인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만난다. 에이바는 고도의 지능은 물론 감정과 자의식까지 갖춘 로봇이다. 칼렙의 임무는 일주일 안에 에이바의 자의식이 진짜인지, 에이바의 감정이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꾸며낸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 스틸컷.

그런데 <엑스 마키나>의 공간이 흥미롭다. 네이든의 비밀 연구소는 대자연 속에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2시간 이상 날아갈 만큼 넓은 사유지 안에 있다. 설산과 숲과 강을 지나 도착하고, 스마트폰 통화권을 이탈한 대자연 한복판이다. 영화의 사건 대부분은 연구소 내부의 지하 방에서 벌어지는데, 감독은 수시로 연구소 밖의 대자연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러한 공간의 대비는 곧 대자연과 과학기술, 인간과 AI의 세계를 강조하는 효과를 거둔다.

칼렙이 수행하는 임무는 튜링 테스트이다.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에 대한 실험이다. 에이바는 ‘생각하는 로봇’이다. 칼렙은 네이든에게 인류 역사가 아니라 신의 역사를 바꾸었다며 찬사를 보낸다. AI와 관련해서 기술적인 측면은 이미 완성되었다. 다만 네이든은 에이바가 로봇임을 알면서도 자의식이 있다고 느끼는지, 에이바의 감정이 위장된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하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칼렙은 자기 소개하기,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색깔과 기억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그 결과, 칼렙은 에이바가 자의식이 있으며, 감정도 진짜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에이바는 칼렙과 대화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칼렙의 미세한 감정의 흐름까지 감지한다.

이 지점에서 칼렙과 네이든의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네이든에게 에이바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프로그램을 입력해 만들어낸 로봇에 불과하다. 단지 그 로봇의 지능이 뛰어나고, 자의식이 있을 뿐이다. 칼렙이 에이바를 만든 이유를 묻자, 네이든은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들 이유가 있나?”라고 대답한다. 네이든에게 에이바는 언제든지 만들고 또 폐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에이바의 기억을 삭제하면 그만이다. 몸통(육체)은 재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든의 연구소에는 에이바 이전에 만들어졌다가 폐기된 로봇의 몸통이 옷장 속에 다수 진열돼 있다.

 

'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 스틸컷.

반면 칼렙은 에이바와 감정적으로 교류한다. 그리고 에이바와 함께 연구소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에이바는 칼렙에게 연구소를 나가 도심 거리를 걷고, 교차로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에이바는 인간의 세계를 꿈꾼다. 칼렙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폐기될 운명에 처했던 에이바는 칼렙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충격적이다. 에이바는 네이든과 칼렙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구소에 가둔다. 그렇다면 칼렙에게 눈물로 호소하던 에이바의 감정은 가짜였나? <엑스 마키나>의 결말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에이바에게 칼렙은 연구소 탈출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네이든은 칼렙에게 “인간은 저들에게 아프리카 화석과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네이든의 이 예언이 현실화된다면, 인류에게 AI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엑스 마키나>는 인류 미래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단,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인간이 AI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네이든에게 에이바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일 뿐이며, 언제든지 폐기 처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지능이 뛰어난 에이바도 그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에이바의 입장에서 칼렙은 네이든이 보낸 시험감독관에 지나지 않는다.

<엑스 마키나>에서 네이든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검색 엔진 회사의 회장이며, 연구소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AI를 창조한 조물주이다. 또 그는 절대 권력자이다. 칼렙을 튜링 테스트의 실험 대상자로 선정한 것도 그의 과거와 현재, 내면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칼렙이 자신이 연구소에 가게됐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네이든은 이 장면을 웹캠을 통해 모두 지켜본다. 하지만 네이든은 결국 파멸한다. 그 이유는 네이든이 에이바의 감정을 무시한 채 그녀를 도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도 인간은 AI로봇을 만들고 , 로봇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는 존재이다. 네이든은 현대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는 또 파놉티콘의 세계이기도 하다. 네이든은 웹캠을 통해서, CCTV를 통해서 칼렙과 에이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들의 행동, 생각, 대화 내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다.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인류의 생활과 사고 패턴까지 지배한다. 네이든은 에이바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에이바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 파놉티콘의 시스템을 역이용해 탈출에 성공한다. 지능과 감정을 겸비한 AI 로봇의 복수이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바는 도심 거리를 활보한다. 그렇다면 탈출한 이후 에이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에이바는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거꾸로 인간이 에이바와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의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파악하고 있는, 인간보다 더 인간의 내면을 잘 파악하고 있는 로봇과의 소통과 공존. <엑스 마키나>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인류에게 간단치 않은 숙제를 던진다. 그리고 네이든의 행동과 운명을 통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네이든이 될 것인가, 칼렙이 될 것인가. 그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엑스 마키나' 스틸컷.
'엑스 마키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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