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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피닉스>와 ‘역사적 트라우마’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피닉스>와 ‘역사적 트라우마’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09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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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페졸트의 <피닉스>(2014)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넬리(니나 호스)가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안면 부위를 심하게 다친 넬리는 얼굴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만신창이 상태다. 넬리의 참혹한 모습은 그녀가 겪은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유대인 넬리는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금의환향은커녕 캄캄한 밤중에 미군의 삼엄한 검문을 거치게 된다. 성형외과 의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재건 수술을 해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하는데, 넬리는 남편 조니(로날드 제어펠드)와의 재회를 기대하기 때문인지 최대한 원래 모습대로 해달라고 주문한다.

 

넬리는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조니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넬리는 카바레 ‘피닉스’에서 일하는 조니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이전에 넬리를 알던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는 걸 보면, 그녀가 비록 성형 수술로 인해 모습이 바뀌었다 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닌 듯한데, 남편이었던 조니는 “넬리는 죽었다”고 확신하면서, “그녀가 넬리를 전혀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니가 넬리의 생존을 부인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행각에서 기인한다. 조니는 넬리의 은신처를 나치에게 밀고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체포되자마자 바로 이혼서류를 작성했기에, 그에게 그녀는 절대 살아 돌아오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녀의 죽음에 슬퍼할 수는 있어도, 살아있는 그녀 앞에서 느끼게 될 죄책감을 감당하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필사적으로 그녀는 넬리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밖에 없다.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조니는 넬리의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넬리에게 넬리 역할을 해서 즉, 넬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연기해서, 유산을 찾게 되면 그 일부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조니의 만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전히 자신을 유대인이 아니라 독일인으로 생각하는 넬리는 이전에 조니와 함께 살며 누리던 행복을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조니는 넬리에게 빨간 원피스를 건네며, 지옥에서 돌아온 만신창이의 생존자가 아니라 마치 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라고 주문한다. 피해자가 전혀 피해자가 아닌 모습이어야 가해자의 마음은 편할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담백한 이 영화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 느껴지는 이유는 피해자 넬리가 그 피해를 호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행복했던 과거를 복원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결국 조니의 행각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불행이 개인적인 사건, 사고가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자행된 만행에서 비롯되었기에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만일 그들이 다른 시대 또는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조니 같은 인물의 이기적인 인간성과 혐오스런 성격이 평생 드러나지 않은 채, 큰 문제 없이 살아갔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했던 넬리의 친구 레네가 “우리에겐 돌아갈 길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없다”면서 자살한 것처럼, 넬리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넬리는 남편과 살았던 집이 붕괴된 것을 확인한다
넬리는 남편과 살았던 집이 붕괴된 것을 확인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넬리는 자신이 생존했다는 소식에 마중을 나오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은 독일인 친구들 앞에서, 조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성악가였던 넬리는 피아니스트 조니와 함께 다시 노래할 날을 꿈꾸며, 그 희망을 통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넬리가 노래할 때, 조니는 더 이상 그녀가 넬리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그녀의 왼팔에는 수인번호까지 선명하다. 다시 말해서 넬리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넬리의 얼굴처럼, 베를린 시내의 붕괴된 건물들처럼, 아내를 완전히 배신한 다음에도 그녀의 돈을 탐내는 남편의 상태처럼, 결국 어떤 것도 복원할 수 없다는 확인일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행복했던 과거를 재현하는 플래시백 장면이 없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사랑이 덧없이 사라지는 걸 탄식하던 노래 가사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반복한다(레네는 “독일어 노래는 이제 못 듣겠다”고 했는데, 이때 넬리는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마친 넬리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긴 채 그 공간을 떠나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크리스티안 페졸트가 <피닉스>를 찍은 이유는 독일 사회의 ‘역사적 트라우마’(도미니크 라카프라에 의하면,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형성된 트라우마가 직접적인 경험자뿐만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때, 이러한 트라우마를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한다”)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가족, 집단의 심리적 문제는 그것을 직접 겪은 이들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서 영향을 미친다. 참혹한 사건은 그 피해자에게 가장 심각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모든 사람과 후세의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일으킨 독일 사회에 ‘역사적 트라우마’는 아마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피닉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떠나가는 넬리의 모습은 초점이 흐려질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 트라우마가 독일 사회에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는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영화를 통해 환기하는 작업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사회와는 또 다른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7월에 다룬 <반교: 디텐션>이나 <피닉스> 같은 영화에는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 ·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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