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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송해 1927> - 우연의 힘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송해 1927> - 우연의 힘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0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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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포스터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늘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많다. 나보다 먼저 산 이들의 삶을 들추어 보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나 소설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고, 나아가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나 두 번 산 인생을 상상한다. 각자 처음이자 한번 사는 인생이기에 혹시나 정답 같은 게 있나 하는 기웃거림일 테고, 다른 인생들에 대한 호기심일 테고, 되돌릴 수 없기에 하는 후회와 소망의 행위일 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번은 살고 있는 인생이기에 쉽게 훈수를 두고 손쉽게 판단하곤 한다. 태어나서 유사한 생애 주기 패턴을 겪는다는 명목 하에 인간은 가끔 타인의 인생을 두고 오만해 지기도 한다.

<송해 1927>은 제목 그대로 송해 선생의 인생사를 담고 있다. 90세를 훌쩍 넘기고도 전국을 돌며 노래자랑 사회를 보는 한 시대의 아이콘인 송해 선생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이다. 모두가 아는 공인의 삶은 들추어보기도 쉽고 판단하기도 쉽다. 또한 공인은 공인으로서 이미 고착된 자기 페르소나가 있고, 대중은 그 페르소나에 기반 해 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해 1927>은 그 틈새에서 이 둘을 한계가 아니라 조건으로 받아 안고 출발한다. 송해 선생의 인생을 불러오되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과거를 모아내되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게 길을 튼다. 무엇보다 영화는 긴 세월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을 자아낸다.

 

아는 것을 아는 대로

영화는 알려진 송해라는 한 인물의 삶의 궤적을 담는다. 영화의 프롤로그는 모든 인생의 첫 시발점인 태어난 정보에서 시작한다. 송해 선생의 육성으로 들려진 “고향은 황해도 재령이고, 태어난 1927년 4월 27일생입니다”는 영화의 시작이자 송해 선생의 시발점이다. 이렇게 제목에서 만난 1927의 숫자가 인생의 무게로 접속되면서 영화는 송해 선생의 공적 인생사와 사적 인생사를 꿰어낸다. 라디오와 미디어 아카이브를 통해 가수에서 코미디언을 거쳐 지금까지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일러주고,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는 몇 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막내 딸 인근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있음을 담는다. 간결하다면 간결한 인생 서사이자 영화 서사이다. 그러나 영화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간결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틈새에 많은 굴곡과 균열이 있고 그 디테일이 때론 인생과 영화의 결을 좌우하곤 한다.

<송해 1927>의 오프닝이 그렇다. 영화는 전국 노래자랑 행사 한 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송해 선생을 보여주는 첫 시작으로 당연하고도 확실한 출발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장면에서 송해 선생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다. 무대에서 선 송해 선생도 아니고, 송해 선생의 정면도 담고 있지 않는 영화는 핸드헬드로 사람들에게 가리워지고 묻혀진 송해 선생의 뒷모습을 찾아 혹은 따라 간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작은 체구의 송해 선생은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인파에 둘러 싸여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그의 평범함과 친화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가 그런 그의 뒤를 따라가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알린다. 그를 앞질러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가 아니라 그의 뒤에서 그를 담아가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무대 아래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송해 

 

의외의 길을 만나면 만나는 대로

영화는 이처럼 송해 선생의 걸어간 길을 객관적으로 나열하고 설명하는데 주력하기보다, 빠르게 스케치한 후, 지금의 그의 곁에서 그러나 살짝 뒤에 물러서서 송해 선생을 유연하게 따라간다. 영화는 그를 파고들어 속내를 들추려 하지 않고, 그가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만큼 혹은 이미 공인으로 보여진 만큼을 질료로 삼아, 지금의 그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연한 마주침이 일어난다. 그 마주침이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의 송해 선생의 길을 열 때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힘을 갖는다.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인터뷰는 정보를 알아내거나 사건(사실)을 증언으로 역할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인터뷰가 흥미로운 순간은 인터뷰가 “빈 공간으로의 소풍”으로 활용될 때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질문과 답안을 주고받는 인터뷰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예상치 못하는 의외의 순간이 생겨나고 이를 마주하고 발견하고 나아가 현실과 다시 조우할 때이다. 우연이 이끌어내는 발견의 힘은 <송해 1927>에서 멋지게 발현된다. 아버지로서 송해 선생을 알기 위해 영화는 막내 딸과 몇 차례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러다 우연히 예상치 못한 의외의 정보를 접하게 되고, 영화는 그 정보를 다시 송해 선생에게 건네면서 영화는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 지금까지 영화가 그동안 송해 선생의 공적인 혹은 사적인 궤적을 곁에서 뒤에서 담아왔다면 이 순간부터 영화는 현재를 만들어간다. 조금 더 거창하게 송해 선생의 현재와 미래를 열게 한다. (이 장면은 스포일러라 영화로 확인하기 바란다.) 영화가 현실에 개입하여 현실의 일부가 되고 현재를 확장할 때, 영화와 인생은 분리되지 않고 겹쳐진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멋진 순간이다.

 

노래를 부르는 송해  

 

보여지는 얼굴, 그 자체.

영화는 송해 선생의 ‘인생’을 담고 있지만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송해 선생의 ‘얼굴’이다. 90세를 넘긴 송해 선생의 얼굴은 표정으로서 기호를 품은 ‘읽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그 자체로 스스로 기호가 되는 얼굴이다. 유구한 사건과 경험을 겪고 세월을 새긴 송해 선생의 얼굴은 해독이 필요하기보다 직관으로 인지되는 유기적인 존재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송해 선생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공인으로 살아온 단단한 송해라는 페르소나와 시간의 흔적을 새긴 채 스스로 시간이 된 얼굴이 공존한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통해 송해 선생의 얼굴을 주목하면서 시간의 기록과 이행을 지금 여기서 현재적으로 보여준다. 자크 오몽의 말을 잠시 빌면, 송해 선생의 얼굴은 “시간을 묘사하고 시간과 일치를 이루고 시간을 확대하며 이따금씩 정지”시킨다. 특히 앞 서 언급한 (그러나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었던) 장면에서 송해 선생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시간-얼굴이자 살아있는 얼굴 그 자체이다. 얼굴은 보여주면서 동시에 얼굴 아래 감추고 있는 것을 가시화한다. (이선주 개그우먼의 얼굴 또한 송해 선생의 얼굴과 다른 맥락에서 오랜 잔상을 부여한다.)

<송해 1927>는 한국사 한 시대의 아이콘 송해라는 인물의 개별성과 보편성을 엮어낸다. 영화는 공적 인물로서 송해 선생을 선택했고 그런 그를 알려내지만, 과거의 그에 멈추지 않고 지금 현재 여기서 살아가는 한 사람을 담고 있다. 영화는 특별하고 영웅적인 송해가 아니라 인간 송해를 일상적 맥락에서 담으면서 한 세월을 살아낸 지금 여기의 송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게 한다. <송해 1927>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최근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상영했고, 다가오는 EIDF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람 가능하다.

 

창밖을 바라보는 송해 

 

 

사진출처: 다음

글 · 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의 필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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