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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언제부터 독일이었을까 
독일은 언제부터 독일이었을까 
  • 안치용
  • 승인 2021.08.0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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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고전산책]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1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말 많고 탈 많던 도쿄 올림픽이 8일 폐막했다. 여느 때처럼 한일전이 주목받았고, 미국과 중국의 메달 경쟁이 뜨거웠다. 올림픽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를 흔히 태극전사라고, 따지고 보면 국가주의가 짙게 밴 용어를 사용하는데,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사실 올림픽은 인류애를 확인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국가주의ㆍ민족주의를 뜨겁게 분출하고 국가간ㆍ민족간 전쟁을 의제(擬制)하는 또는 승화하는 전장이다.

올림픽은 근대성의 산물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세계체제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체제를 공고히 하는 되먹임을 가한다. 올림픽 경기장에 나부끼는 국기를 보며 가슴이 뭉클할 사람에게 별로 설득력 없는 이러한 이야기를 정색을 하고 한 학자가 2015년에 작고한 베네딕트 앤더슨이다. 앤더슨은 그의 주저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 혹은 크게 보아 국가는, 개인의 믿음이나 국가의 선전과 달리 좋게 말해 우연한 것이고 신랄하게 말해 조작된 것이라고 선언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선전하고 돌아오는 태극전사를 열렬히 환영해야 할 시점에 꺼내기에 적절한 논의가 아닌 듯하다만, 앤더슨의 논의를 새삼 기억하기에 좋은 시점이라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독일은 언제부터 독일이었을까 

유럽사는 로마사와 다르지 않다. 로마의 탄생과 로마제국의 성립과 발전, 동ㆍ서로마로 제국의 분열, 서로마ㆍ동로마의 멸망,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 멸망까지, ‘로마의 역사는 19세기 초반에서야 끝나기 때문이다. 비잔티움제국으로 불리는 동로마 제국이 1453년에 멸망하였고, 교황 요하네스 12세가 로마에서 오토 대제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씌워준 게 962년이니 500년가량 동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은 공존하였다. 영토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신성로마제국이 서로마제국을 계승한 셈인데, 사실 꼭 그렇다고 하기는 힘들다는 데에 신성로마제국의 특징이 발견된다. 말하자면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유럽 역사의 중심에 선 게 신성로마제국이었으나,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딱히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고 한 볼테르의 비아냥거림 그대로였다.

신성로마제국을 설명하면 오토 대제가 등장하고, 오토 대제의 황위 등극 이후 역대 독일 국왕이 황제 칭호를 가지게 되었다는 설명이 따라오지만 이 설명 또한 정확하게 맞는다고 할 수 없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2세가 1438년 황제위에 오르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내용상 세습했기 때문이다. 1485년 프리드리히 3세 때에 신성로마제국의 대외적인 국호로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국호는 그의 아들인 막시밀리안 1세에 의해 1512년 쾰른 제국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 이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공식 국호로 사용되었다. 근대에 접어들며 독일민족(Deutscher Nation)’이 하나의 실체로 등장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대()게르만의 관점에서 공유한다고 정리하면 되겠다.

신성로마제국은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며 신성하지도 않은 채로 844년이나 존속하다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건을 두고 괴테는 나의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일보다 더 관심 없는 일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괴테의 말이 유명무실한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독일인의 심정을 전적으로 대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독일인의 향수는 종종 발현되었고, 말하자면 아돌프 히틀러에게서 극적으로 또 전형적으로 분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폴레옹은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대신 라인강의 동쪽 지역에다 신성로마제국에 비해 현저하게 오그라든 라인동맹을 세웠다. 남서 독일 16개국이 가담한 라인동맹은 채 10년을 살아남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한 1815년에 라인동맹은 빈 회의 결정에 의해 독일연방(Deutscher Bund)으로 바뀐다. 독일연방은 신성로마제국에 포함되었던 기존 영방(領邦)국가들을 모아서 복원한 것으로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을 포괄한다.

독일연방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을 비롯하여 바이에른 왕국, 작센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헤센 대공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등이 포함된 38개국으로 구성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독일연방을 주도하였으며, 오스트리아는 연방의회의 의장국이었다. 연방의 수도는 프랑크푸르트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스트리아의 영토 중 일부(헝가리,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달마티아 등)와 프로이센의 영토 중 일부(동프로이센, 포젠 공령 등),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한 독일연방의 영역으로부터도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양국의 군대 중 많은 부분이 연방군에 속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이 두 국가는 종전처럼 독립국으로 행세하게 된다. 볼테르를 패러디하면 독일연방 또한 독일도 아니고 연방도 아니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독일연방은 단명하여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로 와해하고 만다. 이후 독일연방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북독일 연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 분열되었다. 북독일 연방은 이전까지 중부 유럽에서 연방체를 표방한 유명무실한 연방국가들과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연방국가, 또는 근대국가라는 평을 받는다.

북독일 연방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보불전쟁)을 거쳐 남독일 지역을 흡수ㆍ합병하며 1871118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독일제국으로 탄생하였다. 이 독일제국은 4왕국, 18공국, 3자유시 등 25개의 국가와 2제국령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였다. 프로이센을 알맹이로 한 이 독일제국이 현재 독일의 직접적 조상인 셈이다. 그러나 더 윗대의 조상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인 이들이 있었는데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히틀러는 1000년 왕국을 표방하였지만 결과적으로 1945년까지밖에 존속하지 못한 제3제국을 1933년에 열었다. 히틀러의 나라가 제3제국인 이유는 9621806년의 신성로마제국이 제1제국이고, 18711918년의 독일제국이 제2제국이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나치 독일의 뿌리가 되면서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은 시간문제였다는 관점도 성립한다.

독일이 근대국가(nation)로 발전하는 도정에 프로이센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한데 프로이센 왕국 발흥기의 영토 중 본래 프로이센에 해당하는 지역은 신성로마제국 바깥에 위치했고, 또한 과거 프로이센이란 명칭이 붙었던 땅은 현재 독일에 속해 있지 않고 주로 폴란드의 영토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서프로이센의 주도였던 단치히는 현재 그단스크로 불리며 폴란드의 대표적인 도시 중의 하나로 세계인에게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레흐 바웬사가 자유노조운동을 일으킨 근거지가 그단스크이다.

 

세계시민, 베네딕트 앤더슨

민족이란 발명된 것이란 주장으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1983년 작 <Imagined Communities-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은 국내에 <상상의 공동체> 또는 <상상된 공동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백의민족,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 등의 민족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한국인에게, 민족이란 발명된 것으로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앤더슨의 생각은 어쩌면 불경스러운 것일 수 있겠다. 부제까지 연결지어 생각하면, 민족주의(Nationalism)의 기원과 확산에 관한 성찰을 통해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그래도 마뜩잖다고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싶다. 잠깐 곁길로 빠져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데에는 논란이 존재하지만 통용되는 번역어이므로 일단 쓰고 나중에 추가적으로 논의하도록 하자.

앤더슨은 1936년 중국 윈난 성 쿤밍(昆明)에서 영국인 어머니와 아일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영국 이튼스쿨, 케임브리지대를 거쳐 1967년 미국 코넬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정년 퇴임 때까지 코넬대에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51279세의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평생 연구와 저술 활동에 매진하였다. 민족주의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의 실제 전공은 동남아시아학. 대학원 시절인 1965~1966년 인도네시아 반공대학살을 연구하여 논문을 썼다가 수하르토 독재정권에 의해 27년간 인도네시아 입국을 금지당했다. 앤더슨 사후 미국의 정치잡지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앤더슨에게 고향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인도네시아였을 것이라며 그는 온 마음과 정신을 기울여 그곳을 공부하고 또 정서적으로 그곳에 살았다고 추모했는데 모국어 수준으로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그가 숨진 곳도 인도네시아 동부자바였다.

쿤밍에서 태어나고 어려서 베트남인 보모의 손에서 자랐으며, 혈통이 영국과 아일랜드에 걸쳐 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평생 동남아시아학을 공부하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숨진 앤더슨. 앤더슨의 삶을 일별하는 것만으로 그가 세계시민이었으며 민족주의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 제목에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환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확고한 실체로 느낀다고 생각한 그 민족이라는 것이 사실은 상상되고 고안된 가공의 현실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단은 민족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예상할 수 있다.

앤더슨의 생각에 적극 동의하게 되는 게 지금 우리에게 자명하게 알려진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사실은 100~200년 전에만 해도 전혀 의미를 갖지 못했다. 앞에서 살펴본 독일 역사에서도 200년 전에는 독일민족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만한 것이 부재했다. 19세기를 거치고 특히 20세기에 들어서 갑자기 민족이 왜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게 됐을까.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구성원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민족의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몰살하는 20세기의 끔찍한 경험은 나치에서 두드러졌지만, 그 이후에도 그 정도로 극악하지 않다고 하여도 부정적인 양태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에서 빚어진 인종분쟁은 겉으로는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글 안치용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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