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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라는 타임머신: 뉴스영화로 보는 8·15 1주년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라는 타임머신: 뉴스영화로 보는 8·15 1주년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17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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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뉴-쓰 특보' 815 1주년 기념식
'해방 뉴-쓰 특보' - 815 1주년 기념식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12일부터 8·15 광복 76주년을 기념하여 VOD 기획전 ‘1946년을 담다: 뉴스필름으로 보는 해방 2년 차의 기록’을 진행 중이다. 해방 1주년을 담은 뉴스영화 8편(〈시보〉 4편, 〈해방 뉴-쓰〉 4편)을 VOD를 통해 볼 수 있다.

컬러영화가 대중화되기 전에 제작된 뉴스영화이니 8편 모두 흑백영화다. 모두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화기도 하다. 〈시보〉 4편은 사운드가 유실되어 무성영화가 되어버렸지만, 타임머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비록 흑백이고, 짧고, 무성영화도 있지만, 8.15 1주년이던 당시를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오늘은 8편의 뉴스영화를 통해 그때 당시를 조금씩 살펴볼까 한다. 그전에 뉴스영화 자체의 역사도 살펴보려 하는데, 여러모로 타임머신 탄 기분이 들겠다.

 

- 뉴스영화?

요즘은 뉴스영화라는 단어조차 잘 안 쓰지만, 텔레비전 기술이 개발되고, 방송사의 방송 시간이 늘고, 상당수 가정에 TV 수상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뉴스영화의 입지는 꽤 컸다. 신문이나 라디오 뉴스보다 신속성은 떨어졌지만, 진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는 효과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뉴스영화도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극영화도 영화관 관람 이외엔 방법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TV 대중화가 1970년대 후반쯤 이루어지니, 꽤 오랜 기간 뉴스영화가 독점적인 동영상 뉴스였다.

미국에서는 꽤 여러 뉴스영화가 경쟁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1915년에 설립된 폭스 필름이 1919년부터 제작한 무성 뉴스영화인 〈폭스 뉴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1928년부터는 〈폭스 무비톤 뉴스〉로 이름을 바꾸고 유성 뉴스영화를 제작한다. 합병을 통한 20세기폭스사 출범 이후에도 뉴스영화 제작은 지속되었지만, 1963년에 제작을 중단한다. 미국에서는 그 시기가 TV가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 〈대한뉴스〉를 아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민간 제작 뉴스영화가 공존하진 않았다. 뉴스영화는 정부가 제작하는 관보 역할을 했는데,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상영됐던 〈대한뉴스〉는 TV가 대중화되고도 남았던 1994년까지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

1995년 1월 1일부터 〈대한뉴스〉 의무 상영이 폐지된다는 뉴스를 전하는 당시 신문 기사 중 ‘49년 만에 2040호로 끝을 내게 됐다는 기사가 보이는데, 계산해보면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대한뉴스〉가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1946년 당시 제목은 그냥 〈시보〉였고, 미군정 공보부가 제작하는 뉴스영화였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우리 정부 공보부가 제작을 이어갔고, 몇 차례 이름이 바뀌다가 1953년에는 〈대한뉴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1946년부터 1994년까지 총 2,040편의 뉴스영화가 관 주도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뉴스영화에는 정부 입장과 의지가 담길 수밖에 없었다. 세트를 짓고 배우를 고용해 없는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입장에서 뉴스가 선택되고 제작되었다.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뉴스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에서도 〈조선시보〉라는 제목으로 뉴스영화를 제작했다. 〈조선시보 제11보〉(1943)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로 볼 수 있는데, 일본 천황에게 충성하고, 기꺼이 전쟁에 참전하자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 미군정 공보부 제작 〈시보〉 속 역사적 뉴스와 인물

이번에 공개된 8편의 뉴스영화 중 4편이 바로 미군정 공보부가 제작한 〈시보〉로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으로부터 수집한 〈시보 제1호〉, 〈시보 제2호〉, 〈시보 제5호〉, 〈시보 – 특보 ‘조선민중을 위하야’〉이다. 아쉽게도 사운드가 소실되어 무성으로 봐야 하지만, 미군정 공보부 제작 뉴스영화 시리즈답게 당시 국내외 정치 인사, 주요 사건이나 행사 등을 볼 수 있다.

 

'시보-특보 '조선민중을 위하야'' - 과도입법의원 개원식 전경
'시보-특보 '조선민중을 위하야'' - 과도입법의원 개원식 전경

예를 들어, 미 육군장관 로버트 P. 패터슨 방한(1946.1.14.), 미소 1차 정식회담(1946.1.16.), 비상 국민회의 설립(1946.2.1.), 남조선 대한국민 대표 민주의원 성립식(1946.2.14.),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1946.3.20.),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식(1946.12.12.) 등의 뉴스를 다룬다.

또한 미군정의 주요 인사와 미소공동위원회의 미국 측 인사, 소련 측 인사 등을 비롯해 김구, 김규식, 김여식, 김준연, 원세훈, 이승만 등 역사적 인물의 연설이나 발언 모습 등도 볼 수 있다.

 

'시보 제2호' 민주의원 김구 발언
'시보 제2호' - 민주의원 김구 발언

- 영화인 제작 〈해방 뉴-쓰〉 속 문화행사

〈해방 뉴-쓰〉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영화인들이 제작한 뉴스영화였다. 그렇다고 완전 민간 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군정의 허가를 받고 제작한 뉴스영화로 일종의 외주제작으로서 관보의 성격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방 다음 날부터 영화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와 해방된 나라의 사람들을 담아내면서 시작된 영화로서, 그 시작은 지극히 자발적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해방 뉴-쓰 특보〉, 〈해방 뉴-쓰 특2호〉, 〈해방 뉴-쓰 특3호〉, 〈해방 뉴-쓰 특**보〉(초반 자막 소실로 호수 불분명) 에는 문화행사 위주로 해방 즈음이 담겼다. 8·15 1주년 기념식, 한글 반포 500주년 기념행사(1946.10.7.~9.), 김규식 박사의 좌우합작 회담 결과 발표(1946.10.7.) 등의 행사장에서는 군정청 요인들과 더불어 이승만, 김구, 오세창 등의 모습도 보인다.

 

'해방 뉴-쓰 특보' - 조미 대항 야구대회
'해방 뉴-쓰 특보' - 조미 대항 야구대회

또한 8·15 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조미 대항 야구 경기를 비롯해 전국 특산품 전람회, 공예품과 농작법 전시회, 서울소방서 분열식, 내외신 기자 원유회, 국방경비대 소속 사관학교 졸업식, 도시 대항 야구대회 등 문화 체육 이벤트도 볼 수 있다.

 

- 그 당시 그곳 분위기

 

'해방 뉴-쓰 특보' 815 1주년 기념식_군정청 앞 특설모대로 행진하는 시민들
'해방 뉴-쓰 특보' - 815 1주년 기념식_군정청 앞 특설모대로 행진하는 시민들

8편의 뉴스영화를 통해 해방공간의 여러 공간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졌지만, 광화문 자리에 있던 당시 미군정청 청사(구 조선총독부 청사, 이후 대한민국 정부청사, 국립중앙박물관)도 볼 수 있다. 지금의 세종로 모습도 보인다.

주요 회의 및 행사장으로 덕수궁 석조전, 경복궁 경회루, 서울운동장, 동화백화점 등도 등장한다. 고궁 행사의 경우 요즘이라면 문화재 훼손 이슈가 불거질 여지가 있다.

 

'해방 뉴-쓰 특3호' 내외신 기자 초청 원유회
'해방 뉴-쓰 특3호' - 내외신 기자 초청 원유회

더불어 당시의 분위기도 느껴지는데, 8편의 뉴스영화는 그 당시를 매우 박진감 있게 담아내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기대와 희망 등 흥분된 분위기를 담아냈다. 사운드가 보존되어 행진곡풍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해방 뉴-쓰〉는 더더욱 신이 난다. 뉴스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 이후 역사를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역사적 인물의 모습과 일반 대중의 모습을 보며 아련함도 느끼게 된다. 〈해방 뉴-쓰〉의 경우엔 오래 제작되지 못했으니, 참여한 영화인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그 시기를 살지 않아 직접 본 기억은 없지만, 말, 글, 사진, 영화 속 장면들로 접해서일까? 노스탤지어도 느껴진다.

 

- 2021년에 VOD로 보는 1946년!

여러 생각과 느낌을 만나게 되는 타임머신 여행 같은 느낌이다. 지나간 역사의 간접 체험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니, 광복절도 나름 기념하면서 체험해보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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