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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권력’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권력’
  • 조현행 | 문학서평가, 독서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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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권력, 사회』(박승일) 서평

인터넷에서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고 구입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얼마 전 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 때문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염색약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들어가는 모든 인터넷 SNS의 피드에서 염색약 광고를 봐야만 했다. 종류도 다양한 염색약 광고가 수시로 내 눈앞에 떴다. 아마도 누구나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인터넷 알고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는데,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인터넷은 내가 접속한 정보를 기억해 뒀다가 내가 필요한 정보로 재구성해서 제공한다는 것. 이른바 개인별 ‘맞춤 정보’인 셈이다. 그들의 영업방식이 결국 내가 제공한 정보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이 나에게 제공하는 최초의 정보, 다시 말해 세상의 많고 많은 염색약 중에 ‘어느’ 염색약을 나에게 보여줄 것인지는 누가 정하는가? 만약 그들이 특정 제품을 보여주는 행위에 어떤 의도가 있다면, 그것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이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나의 이런 의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책이 나왔다. 바로 박승일의 『기계, 권력, 사회』다. 이 책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활동이 어떻게 인간들의 생활환경을 구성하고 그들의 정신에 침투해서 마침내 권력으로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헤친다. SNS부터 유튜브,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웹2.0까지, 전 세계에서 인터넷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근 30년 동안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따라가면서 그 양상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그 양은 방대하고, 형식은 치밀하고, 내용은 더없이 흥미진진하다.

먼저 저자는 지금의 사회를 과거 ‘규율사회’에서 이행해 온 ‘관리사회’라고 설명한다. ‘때리고 명령하고 구속하고 금지하는 것’으로 통제가 가능했던 과거의 ‘규율사회’를 지나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에 걸림돌이 없는’ 지금의 ‘관리사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관리사회’가 정말로 통제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당겨 말하자면 저자는 지금의 ‘관리사회’는 과거의 ‘규율사회’와는 다른 차원의 권력과 통제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을 매개로 한 권력의 메커니즘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의 ‘관리사회’에서 권력은 무엇보다 정신을 관리한다. 규율사회에서 신체를 구속하고 정신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통제했다면 ‘관리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감정과 사고, 나아가 그에 따른 행동에 개입하면서 인간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 방식은 “왜곡된 인식을 심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대신, 사람들의 소통·즐거움·참여·공유·창의·협력·열정·표현 등을 이끌어내고 육성하면서 확산 및 증대시키는 형태로 작동한다.” 인터넷이 이런 정신에의 작용에 활용됐음은 물론이다. ‘관리사회’에서는 지배당한다는 느낌 없이, 사람들에게 자유롭다는 느낌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제당하고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인터넷이라는 큰 울타리에 사람을 밀어 넣고 그 안에서만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염색약을 구입하는 행위는 나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소비행위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나에게 보여줬던 정보는 그 포털사이트가 선택한 정보였다. 나는 그들이 제공한 선택지 내에서만 상품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떻게 인터넷 권력이 되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의 의지가 담겨있는 로그 정보가 수천만, 수억으로 확대돼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루게 되면, 바로 이로부터 개인의 의도를 뛰어넘은 무의식적인 욕망 패턴의 추출이 가능해진다. 내가 인터넷에서 했던 클릭이 집계돼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집약되고 인터넷은 그것을 “사용자 개인의 의지를 초과하는 집합적 의지, 곧 ‘일반의지’라 할 만한 것을 축적하고 또 그것을 가시적인 형태로 바꿔 낸다.” 사람들은 이렇게 제공된 인터넷의 ‘욕망의 패턴’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감정과 사고,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스스로 알아서 돌아가는 자동화된 ‘권력’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집약된 공동체의 일반의지는 정부나 기업의 통치에 직접적인 자원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권력에 대해 말하면서 “알기 전에는 행동할 수 없다”라고 일갈했다. 재판에서 한 죄수의 사형 판결을 두고 그는 “한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만한 권리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 까닭을 낱낱이 알기 전에 행동하는 것은 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조하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터넷 뒤에 가려진 권력의 메커니즘을 알기 전에, 인터넷에 접속하고 선택하는 등의 행동은 인터넷 권력에 예속되고 종속돼도 좋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을 알기 전에, 편리하고 유용하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의 권력을 한껏 키워주고 그 권력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게 아닐까.

앎은 행동을 추동한다.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앎은 구체적인 행동을 가능케 한다. 인터넷 권력이 우리를 통제한다는 사실을 그냥 건성으로 넘겨버리는 것이 아닌, 그 양상과 면면을 구체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의 행동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이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떻게 통치되고 있는지 감히 알고자 하는 것, 그럼으로써 현실을 이해하고 그 원리를 파악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 너머의 새로운 가능성을 묻고 따지고 또 요청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쓰임”이라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터넷 접속해 수많은 콘텐츠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조현행
문학서평가, 독서칼럼니스트.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전공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학교 밖에서는 문학읽기, 독서, 글쓰기, 서평쓰기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함께 읽고 토론하며 글쓰는 『독서 동아리』, 『나는 문학으로 생각한다』가 있고, 공저서로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 『질문하는 소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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