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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누가 아프간 소녀의 눈물을 닦아줄까?-<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누가 아프간 소녀의 눈물을 닦아줄까?-<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0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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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의 남장 친구 파르바나와 델로와르.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의 남장 친구 파르바나와 델로와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이미지는 썩 유쾌하지 않다. 2007년 발생한 ‘샘물교회’ 사건, 탈레반, 강대국들의 침공과 전쟁 관련 뉴스가 먼저 떠오른다. 최근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집권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그 뉴스의 내용은 참혹하다. 대통령은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외국으로 줄행랑치고, 시민들은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들의 사례가 연일 보도된다. 현지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도운 직원, 가족들이 극적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는 소식은 이른바 ‘무릎 우산’ 의전 뉴스에 묻혀 버렸다.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감독 노라 투메이·2017)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다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직전이다. 실제로 영화 결말 부분에서는 미 공군기들의 비행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파르바나>는 2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2021년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당시에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내세워 모든 여학교를 폐쇄하고, 여성의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 여성들은 남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2021년의 상황은 어떠한가?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영화와 현실이,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비슷하게 오버랩된다.

<파르바나>는 2017년 캐나다·아일랜드·룩셈부르크의 회사들이 공동제작했다. 제42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제90회 미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또 유엔 친선대사로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온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캐나다 작가 데보라 앨리스가 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을 여행하며 아프간 난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쓴 책을 각색했다. 그래서 파르바나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매우 사실적이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의 주인공인 열한 살 소녀 파르바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의 주인공인 열한 살 소녀 파르바나.

영화의 주인공은 열한 살 소녀 파르바나다. 파라바나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부모, 언니, 갓난아기인 남동생과 함께 산다. 파르바나는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시장에 나가서 옷을 비롯한 물건을 판다. 또 있다. 파르바나는 편지를 대신 읽거나 써준다. 교사 아버지와 작가 어머니의 교육 덕분에 글을 읽고 쓸 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초반에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페르시아 키루스 2세,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 칭기스칸 등을 통해서 소개한다. 현대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영국, 소련, 미국의 침공을 받았으나, 어느 나라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파르바나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이러한 역사를 이야기를 통해 가르친다.

파르바나의 시련은 갈수록 악화된다. 아버지의 제자였던 탈레반 대원이 “여자에게 글을 가르쳤다.”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잡아간다. 그래서 이제 집안에는 남자가 없다. 여자는 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으니, 가족은 굶어 죽을 판이다. 아버지를 구하려고 몰래 외출했다가 폭행까지 당한다. 파르바나는 중대 결심을 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죽은 오빠의 옷을 입고 외출한다. 남장을 한 파르바나 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가게에서 쌀을 살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편지 대필도 가능하다. 파르바나는 남장을 한 친구 델로와르와 여러 모험을 하고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한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속 파르바나의 집과 가족.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속 파르바나의 집과 가족.

파르바나는 엄마의 강한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를 구하러 떠난다. <파르바나>는 이 모험을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한다. 파르바나의 아버지 구출 모험과 극중극 형식으로 전개되는 ‘슐레이만 이야기’다. 슐레이만은 파르바나가 갓난아기 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마을의 씨앗을 모두 빼앗아간 거대한 코끼리 왕과 맞서 싸우고, 마침내 씨앗을 되찾아온다. 그리고 파르바나는 교도소에서 아버지를 구해낸다.

‘슐레이만 이야기’는 파르바나의 창작일 수도 있고, 엄마의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중요하지 않다. 파르바나와 슐레이만이 거대한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서 그것을 이겨낸다는 점이 핵심이다. 파르바나는 죽은 오빠의 옷을 입고 모험을 떠난다. 그렇다면 ‘탈레반과 맞서 싸우는’ 파르바나와 ‘코끼리 왕과 맞서 싸우는’ 슐레이만은 사실상 동일 인물인 셈이다. 파르바나와 슐레이만이 소녀, 소년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파르바나의 행적과 슐레이만의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합쳐지는데, 이러한 결말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에서 물을 길러 가는 파르바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에서 물을 길러 가는 파르바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에서 노을에 물든 이슬람 사원의 모습.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에서 노을에 물든 이슬람 사원의 모습.

영화의 주요공간은 황량하고 삭막하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산, 벽돌 공장, 가구라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단칸방뿐이다. 반면 노을에 물드는 이슬람 사원, 카불 시장 뒷골목의 풍경들은 따뜻해서 참혹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을 서사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버지는 시장 땅바닥에 앉아서 딸에게 계속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파르바나는 갓난아기 동생에게 날마다 슐레이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린 소녀는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를 배우고, 현실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 것이다. 파르바나가 아버지가 수감 된 교도소를 알아낸 것도 편지를 대신 읽어준 어른을 통해서였다.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기 전에 친구 델로와르와 약속을 한다. “네가 말했던 해변에서 만나. 달이 바다를 끌어당기는 곳.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그렇다면 파르바나는 그 바닷가 휴양지에서 델로와르를 만났을까? 영화에서 말한 ‘20년 후’는 바로 2021년인데, “안녕”이라고 작은 손을 흔들며 헤어졌던 ‘남장 소녀’들은 이제 30대인데, 그들은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까? 뉴스로 전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고려하면, 파르바나와 델로와르가 바닷가에서 푸른 파도와 달리기를 하며 노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누가 파르바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두 소녀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파르바나>는 어렵고도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진다.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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