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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터널> ― 두 구조대원의 선택, 재난의 위기와 회피/협력의 갈림길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터널> ― 두 구조대원의 선택, 재난의 위기와 회피/협력의 갈림길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06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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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 <터널>과 <더 터널>

재난영화는 재난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장르이며, 화재, 지진, 해일, 화산 폭발, 외계인 침공 등을 다루는 재난의 소재는 다양하며 CG와 특수효과 등에 의지한다. 한국영화 <터널>(김성훈, 2016)에서 무너진 터널에 갇히게 된 샐러리맨 정수(하정우)에게 있는 거라곤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 생수 두 병, 딸의 생일 케이크뿐이다. 사고대책반 구조대장(오달수)이 구조를 하려고 하지만 상황을 더디게 진행되고, 정수의 아내(배두나)는 라디오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된다. 이렇듯 재난영화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재난을 당하지만, 지연되는 구조와 목숨 위기의 상황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재난의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족애를 확인한다는 전형적인 공식을 보여준다.

펄 오이에 감독의 <더 터널>도 터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재난을 다룬 노르웨이 영화이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터널에서 유조 트럭이 폭발하고 터널이 붕괴되어 최악의 재난을 맞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직 최고의 구조대원 스테인 베르게(쏜뵨 하르)는 자신의 딸이 터널에 갇힌 사실을 알고는 딸을 구하기 위해 터널로 들어간다. <더 터널>은 재난을 맞이하는 두 구조대원 아버지의 상반된 결정을 통해 재난에 대처하는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재난의 복선과 가족의 갈등

<더 터널>의 전반부 내러티브는 재난의 복선과 가족의 갈등을 보여준다. 공적 문제에서는 유조 트럭의 운전자가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재난의 위기를 복선으로 암시한다. 사적 문제에서는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과 새애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갈등한다. 엘리저 베르게는 3년 전 병으로 죽은 엄마 모나 베르게의 묘지에서 새애인 잉리에게 빠져 엄마를 잊어가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딸은 ‘엄마 얘기는 이제 안 하시네요. 엄마는 이제 잊었나요? 매번 잉리 아줌마 이야기만.’라고 말하며, 과거 엄마의 죽음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반면에, 아버지는 ‘절대 안 잊어. 하지만 3년이나 지났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더 터널>의 전반부 스타일은 공중촬영으로 공적 문제의 복선을 암시하는 반면, 가까이 다가가는 카메라로 사적 갈등을 강조한다. 엘리저가 수영하는 모습을 여러 각도로 담아내는 장면에서, 수영은 수영 코치였던 엄마 모나에 대한 엘리저의 그리움과 앞으로 사적 관계를 맺게 된 소년과의 만남을 동시에 표현한다. 유조 트럭이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공중촬영은 흰 눈이 쌓인 곳과 검은 색의 도로를 선명한 흑백 대비로 보여주며, 재난 현장에 대한 사전 정보 제공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수영장에서 엘리저가 바닥에서 잠수하는 장면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카메라는 엘리저가 엄마의 죽음,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내적 위기를 겪고 있는 내면을 표현한다. 유조 트럭이 사고를 내는 장면에서, 눈이 제대로 안 보이면서 점점 길이 흐릿하게 보이는 인물의 시점 숏과 혼란스럽고 당황해하는 인물의 클로즈업을 동시에 교차편집하여 재난사고의 위기를 암시한다.

 

재난의 위기와 상반된 선택

 

<더 터널>의 중반부 내러티브는 재난의 위기와 상반된 선택을 보여준다. 공적 문제에서 유조트럭 터널 안에서 충돌사고와 폭발로 스토레펠 터널 사고가 일어나고, 구조인력의 부족한 상황에서 책임자 크리스티안은 전직 최고의 구조대원 전문가 스테인 베르게를 호출한다. 공적 문제와 사적 갈등에서 두 명의 구조대원 아버지는 상반된 결정을 내린다. 구조대원 책임자 크리스티안은 위험한 터널 재난 현장에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들인 구조대원 이바르도 구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말리면서 이바르와 사적 갈등을 일으킨다.

반면에, 전직 구조대원 스테인은 딸을 구하기 위해 재난 현장으로 뛰어든다. 엘리저가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오슬로행 고속버스를 타고 터널에 갇히고, 스테인의 애인 잉리가 사고영상을 보고는 엘리저가 갇힌 사실을 스테인에게 알려준다. 스테인은 엘리저를 돌보라는 아내 모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위험한 구조대원을 그만두었지만, 엘리저를 구하기 위해 다시 구조대원의 옷을 입고 터널로 진입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스테인이 딸에게 ‘굴로 가 있어. 아빠가 갈게.’라고 문자를 보내지만 딸은 받지 못한다. 딸은 센터에 전화를 해서 ‘스테인 베르게한테 굴에 있다고 전해 달라’고 말하지만, 센터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공적 위기와 사적 갈등에 처한 스테인과 엘리저는 서로 연락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굴’로 피신하라는 재난 수칙에 의거해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부녀의 유대감을 보여준다.

 

<더 터널>의 중반부 스타일은 공적 위기와 사적 위기를 차별적 연출로 대비시킨다. 공적 위기 장면은 공중촬영으로 전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사고 후 터널 동쪽 출입구 장면에서, 익스트림롱숏의 공중촬영은 사고 현장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2명의 구조대원이 터널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에서, 터널로 들어가는 모습은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주는 반면, 터널에서 피해자들를 구조하는 모습은 가까이 다가가는 미디엄숏으로 상황의 정보와 인물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재난의 해결과 가족애 확인

 

<더 터널>의 후반부 내러티브는 재난의 해결과 가족애 확인을 보여준다. 구조대원 두 아버지의 상반된 결정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난다.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에 뛰어든 아버지는 자신과 딸의 목숨을 건지지만, 재난을 피하기 위해 비겁한 방법을 권유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다. 딸 엘리저는 구조대원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터널 사고에서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인 ‘굴’로 소년과 함께 들어가고, 아버지 스테인은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딸을 찾기 위해 ‘굴’로 들어가 딸과 소년을 구해낸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직 구조대원으로의 프로정신으로 굴에 갇힌 다른 어린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재난 현장으로 뛰어들고, 딸도 아버지를 돕기 위해 함께 터널로 들어간다. 스테인이 사라-마르티네 자매를 구해서 산소 마스크를 씌워주고 구해내지만, 정작 본인이 질식해서 쓰러진다.

동료였던 이바르가 크리스티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터널로 뛰어들어 스테인을 구하고 자신이 죽게 된다. 이바르는 아버지 크리스티안의 사적 관계보다 자신의 구조대원으로서의 사명감을 우선시하여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편 센터의 직원은 유조 트럭에 대한 조사, 사라-마르티네 자매에 대한 따뜻한 지시, 현장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정보 전달로 구조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휠체어 모습으로 통해 과거 재난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더 터널>의 후반부 스타일은 바스트숏과 클로즈업으로 재난의 위기와 가족애를 강조한다. 엘리저와 스테인이 두 자매에게 마스크를 씌워서 데려가는 장면에서, 갑자기 질식해서 쓰러진 스테인의 얼굴을 점점 카메라가 다가가면서 풀숏, 바스트숏,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면서 죽음의 위기를 표현한다. 터널에 갇힌 엘리저, 그 사실을 전달해주는 잉리, 딸을 걱정하는 스테인을 각각 교차편집과 바스트숏·클로즈업으로 강조한다. 마지막 모나 베르게 묘지 장면에서, 처음에는 부상당한 스테인과 엘리저가 모나의 죽음을 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스테인과 잉리 사이에 엘리저가 있는 모습으로 유대감을 보여주며, 엘리저의 표정이 눈물에서 미소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재난영화와 가족애

<더 터널>은 사적 갈등에 처한 부녀가 재난이라는 공적 위기를 당해 유대감과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면서 재난영화의 공식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재난영화는 재난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위기를 스스로 헤쳐 나가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반면, 공권력은 관료제의 구태의연한 관습과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책임자로 대비를 보여준다. 반면에, <더 터널>에서는 딸이 공적 재난의 피해자이고 아버지가 구조대원이어서, 공적 위기와 사적 관계가 서로 뒤엉키게 된다. 스테인-엘리저 부녀는 재난 수칙에 따라 통일된 행동을 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까지 구하려는 영웅적 행동으로 목숨을 건진다. 반면에 크리스티안-이바르 부자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타인을 위험에 내모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반발하며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구조한 아들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재난의 위기에서 두 구조대원 아버지의 상반된 결정은 상반된 결과, 즉 회피·도피는 죽음으로 끝나는 반면 참여·협력은 삶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터널>은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가족 신뢰의 변화와 가족 관계를 변화를 보여주며 주제를 전달한다. 우선, 수미상관식 구성은 가족 신뢰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반부에 엘리저는 엄마의 묘지에서 “왜 우리는 늘 아빠를 기다려야 되죠?”라며, 엄마의 기일에 오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아버지에 대해 불신을 드러낸다. 후반부에 엘리저는 목숨이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굴에 있으면서 아버지가 자신을 반드시 구하려 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수미상관식 구성은 가족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모나 베르게 묘지에서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딸 엘리저는 새애인에게 빠져 있는 아버지에게 실망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나 베르게 묘지에서 엘리저는 자신을 구하려다 부상당한 아버지 스테인, 자신의 위기를 아버지에게 알려줘 도움을 준 아버지의 새애인 잉리 사이에 서서, 함께 엄마 모나의 죽음을 추모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새엄마를 받아들인다. <더 터널>은 터널 사고에서 용감한 시민들이 탈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라는 점에서 무게감을 더하며, 노르웨이에는 비상구가 없는 1,100개의 터널이 있다는 것에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생활ESG영화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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