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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톡톡] 호랑이 세 마리와 말 한 마리
[안치용의 문화톡톡] 호랑이 세 마리와 말 한 마리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2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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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에나 빅 마우스(big mouth)’가 존재하는데, ‘빅 마우스는 입이 싼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스피커로 불리기도 한다. ‘빅 마우스에 대해선 개인 차원에서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일 테지만, 관점을 바꿔 조직 전체로 봐선 빅 마우스가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일 수 있다. 공식적인 계통을 통한 의사 전달이 아닌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경로를 통한 의사소통에서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비공식적 의사소통은 공식적 의사소통 못지않게 중요하다. 업무와 관련된 정보 뿐 아니라 구성원과 관련된 사소한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조직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비공식적 정보는 공식적 정보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공식적 정보이든 비공식적 정보이든 정보는 유통되어야만 정보로서 가치를 갖는데, 정보유통에서도 공식적 채널 외에 비공식 채널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귀에 들어온 정보를 입으로 토해내지 않으면 못 견디는 빅 마우스는 그 성격 탓에 개인적으론 명성의 손상을 입지만 조직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활력을 유지하고 때로 정화하는 데 기여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살신성인의 감초라 할 만 하다. 물론 빅 마우스가 빈번하게 조직의 활력을 저감시키는 것도 사실이긴 한데 굳이 살신성인이란 표현까지 동원한 까닭은 빅 마우스에도 유용한 면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사내정치(office politics)에서만 빅 마우스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동네 NGO 동창회 등 다양한 유형의 조직ㆍ커뮤니티마다 빅 마우스가 있다. 알려지지 않아도 좋을 것까지 알려지게 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빅 마우스는 알려져야 할 것을 알려지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알려져야 할 것이 알려지지 않으면 큰일이다. 부작용 중에는 허위 또는 과장된 정보의 유통과 이로 인한 조직ㆍ단체 및 구성원의 피해가 대표적이다. 사실 조직ㆍ단체의 피해는 일반적으로 미미하고 구설수에 오른 구성원만 정신적으로나 실제로 심각한 피해를 입곤 한다.

구설이 파괴력 있게 작동하려면 이때는 빅 마우스뿐 아니라 마우스의 숫자가 중요해진다. 가끔 미동조차 않는 강심장이 있지만 험담과 구설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가담한 마우스의 숫자는 마우스들이 겨냥한 인물이 입을 상처의 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구전되는 내용이 더 결정적이다. 최초 일격으로 인한 충격의 강도는 콘텐츠와 민감하게 연계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가해질 충격의 강약과 입을 상처의 경중은 마우스의 숫자에 좌우된다. 험담과 구설은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또 내용의 입수경위와 무관하게 해당하는 사람에게 심리적 피해를 입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만드는데, ‘마우스의 숫자는 이때 증폭기 성능의 지표가 된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가 딱 부합하는 사례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위()나라 태자가 조()나라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이때 중신 방총(龐蔥)이 태자를 수행하게 되었다. 방총은 조나라로 떠나기 전에 위()의 혜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혜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방총은 이번에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소식을 전한다면 믿겠냐고 물었다. 혜왕은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방총이 만약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혜왕은 그때는 믿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

방총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고 말하였다. 방총은 자신이 조나라로 떠난 이후 그릇된 정보로 자신을 헐뜯을 정적들의 위해를 염려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혜왕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지 않은 이상 그에 대한 어떤 비방도 결코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방총이 우려한 대로 태자와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 방총을 비방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결국 혜왕은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몇 년 후 태자는 위나라로 귀국할 수 있었으나 혜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돌아오지 못하였다.

 

 

삼인성호(三人成虎)는 고사에서 보듯 아무리 근거 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반복하여 듣게 되면 곧이듣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집단마다 빅 마우스가 상대적 관점에서 특정되고 숫자도 제한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빅 마우스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빅 마우스는 전체의 욕망을 대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증폭과 왜곡이 커뮤니케이션에서 회피하지 못할 본질적 한계라면 차라리 빅 마우스를 통한 소통의 시장기능 활성화로 일부 노이즈라도 제거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앞에서 내가 제시한 관점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소통의 왜곡으로 인한 폐해가 크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소통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모든 소통을 받아들인다 하여도 삼인성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질색이다. 하지만 타인들의 입이 호랑이처럼 덤벼드는 상황에 불가피하게 처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반전이 쩌는영화 <럭키 넘버 슬레븐(Lucky Number Slevin)>에서 누군가 주인공 조쉬 하트넷에게 탈무드를 인용하며 누가 너에게 3번이나 말[]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한두 번이면 모르지만 3번이나 말이라고 하면 당장 마구(馬具)를 사러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진짜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삼인성호의 발상과 유사해 흥미롭다.

이제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 타인들의 입이 호랑이처럼 덤벼들 때의 처신은 어떻게 해야 최선일까. 정답이야 없겠지만 근사(近似)한 답은 마구를 사는 것이 아닐까. 잠시 말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 어차피 우리는 말이 아니기에, 말이 되려고 마구를 산다고 해서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말이 아니지만 말이 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우리가 말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에게 세 사람이(또는 세 마리 말이) 차례로 너는 사람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말이 양복을 입으려 들지는 않지 않겠는가.

말이 되는 일. 말이라고 윽박지르는 데 굳이 인간이라고 우기는 것보다 결코 나빠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지혜의 왕솔로몬의 말마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글 · 안치용(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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