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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알렝 레네 <마음 Coeurs>(2006)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알렝 레네 <마음 Coeurs>(2006)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23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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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란 것

알렝 레네의 영화 <마음 Coeurs>(2006)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외롭다. 소심한 티에리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샤를로트를 좋아하지만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한다. 오빠에 비해서는 훨씬 대담하지만 이상주의자인 가엘은 남자에 대해 경계를 한다. 그것이 너무 심해서 광고를 통해 남자를 만나지만 번번히 성사되지 못한다.

빠텐더이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리오넬은 아버지로 인해 평생을 고통속에 지낸다. 니꼴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변해버린 남편 단을 이해하지 못해 괴롭다. 더욱 괴로운 것은 과거처럼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주전에 직업군인을 그만 둔 단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니꼴과의 관계도 예전과 달라졌다. 그는 고독해지고 혼자 있고 싶어진다.

이 모든 인물들의 공통점은 외롭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느 한 특정인물을 쫓아가지 않으므로 여러 인물들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그저 우리들 인간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 공통 분모가 외롭다는 것이고, 제목은 ‘마음’이다. 대체 마음이 어떻다는 말인가? 이 영화는 현대인의 외로운 마음을 다룬다. 저 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결국 마음은 하나고 그게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은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이다. 정말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것일까? 이 영화의 질문은 그것이다. 인간의 삶은 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것이기만 한 것일까?

 

외로움의 원인

노처녀 동생 가엘과 살아가는 티에리의 고민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안됐다는 것이다. 집안 한복판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초상 아래에서 그는 여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 안쓰럽다. 가엘을 시집 보내고 나서 자신도 결혼하겠다는 책임감이 어쩌면 그를 아직도 노총각의 존재로 살게 하는 지 모른다.

하지만 직장에서 그를 설레게 하는 대상은 바로 직장 동료 샤를로뜨다. 그는 샤를로뜨의 미소를 가장 좋아하며, 어떤 계기만 있다면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싶을 정도로 위안이 된다. 그녀의 사랑을 마음속으로 갈구하던 그에게 샤를로뜨가 빌려준 비디오는 그로 하여금 사랑의 신호라는 오해를 하게 한다. 물론 그건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는 바같에 내리는 눈처럼 진실은 안에 숨겨져 있다.

큰 기대 안하고 봤던 비디오에서 문득 샤를로뜨로 추정되는 한 여인의 음란한 춤이 나오는 순간, 티에리는 그게 샤를로뜨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티에리는 마침내 샤를로뜨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다 좌절하면서 어리둥절해진다. 샤를로뜨가 비디오를 통해 자신에게 성적인 암시를 한 것으로 보는데, 샤를로뜨는 그걸 부정하고, 티에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샤를로뜨는 의도적으로 티에리에게 자신의 성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실한 것이긴 하나? 그건 순전히 티에리 자신의 환상일 뿐인가? 티에리에게 분명한 의사를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샤를로뜨의 행동이 티에리로 하여금 갈등하게 한다. 이들 사이의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찍힌 음란 비디오를 건넨 샤를로뜨의 내면이 암흑속에 갇혀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샤를로뜨는 신과 악마의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왜 혼자서 자신의 스트립쇼 비디오를 찍는지 그 이유도 정확히 알 수 는 없다. 과거를 알 수 없으니 추측컨대 혹 지금의 부동산중개소 직원 이전에 왕년에 스트립쇼 댄서 출신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내적 욕망이 음란한데 그걸 억압하기 위해 성서를 애독하고 독실해 졌는지 모른다. 항상 유혹과 억압을 말하는 그녀는 어쩌면 티에리에게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던지고 유혹을 한 후 그를 조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티에리의 마음을 떠보고 그를 육욕의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관계로 유지하고 싶은 자신의 의도? 마지막에 음란영상이 담기지 않은 비디오를 다시 선물하는 것을 보면 이제 티에리를 자신의 연인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육욕과 정신이 갈등하는 모습의 샤를로뜨는 리오넬의 아버지 아르뛰르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할 수 없이 자신의 나체쇼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대목에서 드러난다. 많은 갈등을 거듭한 끝에 그녀는 나체쇼를 결행했고, 그것이 그녀 내면속에서 음란한 행위가 아닌 성스러운 행위가 되도록 성모에게 기도 드린다. 그녀 생각에 아르뛰르를 진정시키는 일은 힘든 리오넬의 처지를 편하게 경감시켜 주는 선한 행위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과 니꼴의 관계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은 단대로, 니꼴은 니꼴대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문제고 갈등이다. 니꼴은 대체 왜 단이 몇 개월 전부터 갑자기 자신을 멀리하고 항상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서재가 있는 방을 꼭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뭔지를 알 수 가 없어 답답하다. 원래 그랬던 사람이 아니라, 최근에 와서 그것이 나타났고 특히 실직한 이후 그 병폐가 더 심해졌다. 이젠 같이 있는 것만도 지겹고 짜증난다.

답답한 마음으로 단을 바라보는 니꼴은 단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단은 성장과정부터 순탄치 않았고 그 결과가 현재 나타난다. 단은 3대째 군인 집안에서 자라났고 아버지는 엄격해서 어린 단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그는 아버지를 피해 항상 몰래 어머니를 만났고, 그것이 성장과정에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니꼴은 단이 처음에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가정적 영향하에서 가능한 심리상태다. 완고한 가부장적 분위기와 무서운 아버지, 아는 여자라곤 어머니밖에 없었던 성장과정은 그에게 성인이 되면서 여전히 여자에 대해 어리숙한 남자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생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며 힘겨운 생을 보내고 있는 리오넬은 남다른 고통을 더 느낀다. 어려서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강인한 어머니에 의해 키워진 그는 동성애였고, 친구를 병으로 잃은 후, 줄곧 돌아온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 어머니 역시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에겐 병석에 누워 미친 소리를 질러대는 치매 아버지와의 단조롭고 고통스런 삶 밖에 없었다.

 

외로움의 극복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을 앓고 있던 단과 니꼴은 별거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찿아 나간다. 단은 리오넬의 충고로, 니꼴은 스스로 생각한 끝에 결정한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과 니꼴은 결혼하기 전까지 몰랐던 자신들의 문제가 전면으로 나타나면서 둘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중년 커플의 전형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금이 가면서도 풀어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가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둘의 상처는 극복될 수 있을 텐데, 문제가 미해결상태로 장기화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만 빠져있기 때문이다.

실직과 더불어 자신의 인생에 회의가 온 단의 입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일 것이다. 그건 할아버지 때부터 군인이었던 집안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아무런 상담도 없이 무조건 군인의 길로 간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자신이 일에 연루되고 책임 지는 위치에서 양심적으로 책임을 지다 보니, 자신의 정의로운 성격이 군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 것이다.

군인이기에 자신의 성격은 너무 나약했던 것이다. 그는 곰곰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게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라 생각하는게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서재 있는 방을 고집했던 것이다. 이런 연유를 단의 입장에서 생각해 줬어야 함에도 니꼴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단을 판단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이 변했다고 판단했지만, 변한 부분은 단의 정체성 부분에 관한 것이지 니꼴에 대한 사랑이 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니꼴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 표현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단의 입장이 되지 못한 니꼴은 결혼 전에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 호기심으로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던 다정다감한 단을 그리워한다. 과거에 집착하면서 단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밖에 없었던 니꼴에게 단의 변화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결국 별거를 결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녀가 단이 죽치는 빠로 찿아간 것도 정식 이별을 선언하기 위해서 였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단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은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복수형 마음들이다.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여러 마음들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마음 하나 하나다. 그 모든 마음들이 결국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 먹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모두 외롭고 뭔가 치유 받아야 하는 그런 상태다.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누구의 힘이 되어 주지 못하며, 자기의 문제는 자기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티에리와 샤를로뜨가 결혼은 못해도 계속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단과 니꼴이 별거는 할 지 언정 계속 만날 것이며, 가엘과 리오넬도 나름 짝을 다시 찿아 새로운 삶을 일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암시하는 것이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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