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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커스>와 함께, 다시 채플린
[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커스>와 함께, 다시 채플린
  • 강선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05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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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찰리 채플린의 <키드> 개봉 100주년을 기념하여 채플린 특별전이 있었다. 채플린이 1919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창립하고 찍은 첫 영화인 1921년의 <키드>를 기념하는 이 특별전에 선택된 영화들은, <키드>, <파리의 연인>, <황금광 시대>, <서커스>,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살인광 시대>, <라임 라이트>, <뉴욕의 왕>이었다. 이 가운데 1928년 개봉한 <서커스>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가르는 경계에 서 있는 영화이다. 채플린은 1926년부터 <서커스>를 찍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한 사건들 때문에 영화는 1928년에 개봉되었는데, 개봉 직전인 1927년 영화사상 첫 번째 유성영화로 기록된 <재즈 싱어>가 개봉했던 것이다. 채플린은 유성영화 시대가 개막하자 ‘영화는 끝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과 함께 무성영화의 배우들이 보여주었던 표정과 몸짓의 풍부함들이 유성영화에서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커스>에는 끝나버린 자신의 시대를 뒤로하고 떠나는 것만 같은 채플린의 쓸쓸한 모습이 담겨 있다. 무성영화의 쇠락과 함께 자신의 영화도 끝이 날 것임을 예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무성영화와 함께 채플린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빛나는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시티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 채플린을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채플린으로 만들어준 영화들을 그는 이후 더 왕성하게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벤야민과 채플린

발터 벤야민은 채플린에 대한 짧은 글을 남겨두었는데, 이때가 바로 <서커스>가 개봉한 시기였다. 벤야민은 그 글에서 채플린의 이 영화가 그의 만년의 작품이며 채플린도 스스로 나이가 들어버린 쓸쓸한 모습을 연기했다고 쓴다. <서커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로 떠나는지 모르는 채로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걷는 채플린의 뒷모습은 확실히 모든 이들에게 그러한 인상을 받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채플린도 그 자신이 그어놓은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유성영화의 등장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벤야민은 같은 글에서 <서커스>에서의 채플린의 모습을 마치 ‘어떤 운명의 시련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방탄’ 옷을 입은 사람 같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 마주하는 채플린의 모습일 텐데, 프레임 안에 등장하기까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어디에서 살아왔을지 알 수 없는 모습을 하고, 또 어떻게든지 어디에서든지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서커스>에서도 펑퍼짐한 바지와 주머니에 어쩐지 소금이 들어있는 재킷, 머리에 얹어놓기만 한 것 같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 채플린은 우연히 서커스 관객들을 웃기게 된다. 경찰로부터 달아나다가 지루하게 반복되던 서커스에 등장하여 우연히 관객들을 폭소하게 하고, 그 일을 통해 서커스에 고용되면서 서커스 단원이자 서커스 단장의 딸이기도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를 고용한 서커스 단장은 잔잔한 웃음조차도 없는 서커스에 채플린이 나타나 관객들을 웃기면서 그가 스타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헐값에 고용한 그가 쇼의 메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악덕 고용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채플린의 항구적인 풍자의 대상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악덕한 고용주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채플린은 전혀 악의적이지 않은 표정을 하고서 서커스를 시작하게 된 우연한 순간들처럼 우연히 서커스 단장을 골탕 먹인다. 이 역시 채플린의 영화에서 악당이 등장하자마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통쾌함이다. 사르트르는 채플린의 또 다른 영화 <이지 스트리트>에 대해 말하면서, 영화 속에서 채플린은 경찰과 깡패들의 싸움판이 되어 버린 거리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채 경찰관이 되었지만, 그가 나타나면, 그가 거기에 있기만 하면, 우리는 마음을 놓게 된다고 쓴다. 영화 속 채플린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서 결국은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켜내리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서커스>에서 채플린은 여러 위기들을 극복하면서 점차 서커스에 적응해가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가까워진다. 그녀가 공중곡예를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채플린은 그녀에게 청혼하여 행복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결국 채플린은 그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있던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서커스 행렬을 떠난다.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던 영화가 시작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한 순간의 꿈처럼 사라져버린 서커스 무대와 사랑을 텅 빈 들판에 남겨두고 지평선 너머로 특유의 걸음걸이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채플린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영화를, 영광스러웠던 그의 시대를 뒤로 하고 떠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채플린

사르트르는 같은 글에서 채플린에 대해 ‘영화의 왕’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단지 채플린의 연기가 훌륭하다거나 재미있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채플린이 드러내는 세계가 진실을 표현하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채플린이 표현하는 인물은 ‘진짜 배고픔과 진짜 비참함을 안다’고 쓴다. 벤야민 또한 채플린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웃음이라는 것이 가장 국제적이고 혁명적인 정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당시의 영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독일 사람들까지 매료시켰다는 점에서 웃음은 국제적이고 혁명적이었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채플린은 결코 관객이 자기를 보고 미소 짓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관객은 포복절도하든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든지 해야 한다.’

채플린이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였는지, 또 작가이자 감독이었는지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채플린만큼 현실에 다가가고, 또 우리를 울고 웃기는, 미소에 그치지 않고 포복절도하게 하는 영화가 얼마나 있었는가 돌아보면, 우리는 다시 채플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커스>에서는 채플린이 서커스에 고용되기 전, 소매치기로 몰려 도망 다닐 때 놀라운 장면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거울 미로’ 장면이다. 채플린은 수많은 거울들로 이루어진 방에서 거울에 부딪치고 길을 잃고 경찰들을 따돌린다. 이 장면은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채플린은 사람들을 울고 웃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고 천재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화적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데 있어서도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벤야민이 말했던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시대의 장벽마저도 허무는 사람이 채플린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그를 떠올려 본다.

 

 

글·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강사 및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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