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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사코>, 반복과 차이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사코>, 반복과 차이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10.1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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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일본 감독이다. 올해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함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하마구치가 2018년에 발표한 <아사코>는 여주인공이 두 남자를 오가는 진부한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비범한 연출 솜씨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되었다.

 

고쵸 시게오의 사진전

아사코(카라타 에리카)와 바쿠(히가시네 마사히로)가 처음 만나는 장소는 일본의 사진작가 고쵸 시게오의 사진 전시장이다. 두 사람은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마구치는 그들 주변에 폭죽놀이를 하는 소년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며 따라서 철부지 사랑이 될 거라고 암시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해안가 도로를 달리다가 사고가 났을 때, 철없는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서로 쳐다보다가 낄낄거리며 웃는다.

특히 바쿠는 어린아이처럼 마음 내키는 데로 행동하는 무책임한 인간이다. 아사코의 친구 하루요는 “바쿠는 절대 사귀면 안 될 타입의 남자로, 너를 울릴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한다. 바쿠는 빵을 사러 나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와서는 황당하게도 “처음 만난 아저씨와 이야기하다 그 집에서 잠들어 버렸다”고 말한다. 울면서 매달리는 아사코에게 그는 “늦더라도 반드시 아사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는 “신발을 사러 다녀온다”고 한 다음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프롤로그이다.

 

철없는 아사코와 바쿠는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도 낄낄거린다
철없는 아사코와 바쿠는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도 낄낄거린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한 아사코는 도쿄의 카페에서 일하다가, 오사카에서 온 바쿠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가 바쿠가 아니라 료헤이(히가시네 마사히로가 1인2역을 한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점점 이끌리지만, 아사코는 료헤이를 계속 피한다.

아사코는 친구 마야와 함께 고쵸 시게오의 사진전을 보려고 하는데, 우연히 료헤이가 합류하게 된다. 간난 아기, 출산을 앞둔 부부, 자매로 보이는 소녀들 등, 고쵸 시게오의 사진(고쵸가 가족이나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것처럼, 아마도 하마구치는 고쵸의 사진처럼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이 반복되면서, 아사코와 바쿠가 만났던 상황이 반복되는 동시에 그 자리에 바쿠가 아니라 료헤이가 있기에 차이가 만들어진다.

료헤이는 외모만 바쿠와 똑같을 뿐, 내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료헤이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라든지 신중하게 행동하는 면모를 보면, 다정하고 안정감 있고 성숙한 인물이다. 여자들 사이에서 나쁜 남자 바쿠가 착한 남자 료헤이보다 더 매력 있게 느껴져서 훨씬 더 인기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아사코와 료헤이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아사코는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한다.

 

아사코는 료헤이가 진짜 바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아사코는 료헤이가 진짜 바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돌아온 바쿠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가져온 대규모 도호쿠(동북부) 태평양 연안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파는 도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충격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 있던 료헤이 앞에 아사코가 나타난다.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그녀는 바쿠를 또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빠진 나머지 료헤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다시 5년이 흐르고, 아사코와 료헤이는 동거하고 있다. 두 사람은 도호쿠 재건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나중에 아사코는 친구들에게 “잘못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한다.

아사코가 료헤이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면서 “감사할 게 너무 많다”고 고백한 다음, 바쿠가 연예인이 되어 나타난다. 공원에서 우연히 바쿠가 타고 있는 차를 보게 된 아사코는 차 앞에서 손을 흔든다. 이때 카메라는 트랙 아웃 하면서 아사코에게서 멀어진다. 이 장면은 예전에 빵을 사러 나가는 바쿠를 배웅하며 아사코가 손을 흔들었을 때의 카메라 움직임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사코가 이전과는 반대로 “바쿠, 잘 가”라고 외치고 있지만, 속마음은 바쿠를 향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이 트랙 아웃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아사코의 손짓의 의미를 읽어낸 바쿠는 그녀를 찾아와 “약속대로 데리러 왔다”고 말한다. 아사코는 료헤이를 버리고 바쿠를 따라나선다.

 

아사코는 모든 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온다
아사코는 모든 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온다

돌아온 아사코

여전히 무책임한 바쿠의 행동거지를 보면, 예전에 비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바쿠는 부모가 사는 홋카이도로 향하다가 바다가 보고 싶어 센다이 초입에서 차를 멈춘다. 아사코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이 엄청 행복한 긴 꿈이었던 것 같다”면서,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전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잘못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서 자원봉사를 하려고 료헤이와 함께 지나갔던 센다이에서, 그곳의 바다를 모른다고 하는 바쿠를 보면서, 아사코는 ‘바쿠는 료헤이가 아니다’라는 사실과 ‘자신이 성장했으며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서 바쿠와 철부지 사랑을 나눴던 미성숙한 시절로 돌아가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반복할 수 있지만, 시간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아사코가 료헤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바쿠는 쿨하게 작별 인사를 한다. 이때 카메라는 이전처럼 트랙 아웃 하지 않고 아사코와 떠나가는 바쿠의 차를 멀리서 찍는다. 바쿠를 잃고 싶지 않아 료헤이를 바쿠라고 생각하려고 했던 아사코가 더이상 바쿠에게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아사코는 방파제 위에 올라 바다를 본다. 아사코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 다음에 바다를 향한 아사코의 뒷모습 클로즈업 쇼트가 이어진다. 그 바다는 아름답지만 도호쿠 대지진 이전의 오염되지 않은 바다는 아니다.

아사코는 다시 료헤이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사코가 배신한 다음이기에 반복이지만 다시 차이가 발생한다. 아마도 그들 또한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어른으로 성숙했으니 사랑한다면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사코와 료헤이는 오사카의 집 베란다에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다. 어쩔 수 없이 아사코를 받아들인 료헤이가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더러운 강”이라고 하자,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 게 인생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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