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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연애의 내부와 외부
[이주라의 문화톡톡] 연애의 내부와 외부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1.10.13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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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편의 로맨스 드라마

한동안 범죄, 스릴러, 판타지 등의 장르물에 밀려 주춤하던 로맨스 드라마가 다시 인기를 회복하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홍천기>와 <유미의 세포들>에서부터 2000년대 초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갯마을 차차차>까지, 역사로맨스에서 현대연애물 그리고 세포들을 인격화한 상상력과 결합한 로맨스까지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고 있다.

이 세 작품을 보다가 우연히 겹쳐지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회차에 <유미의 세포들>과 <갯마을 차차차>에서 한 명의 배우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며 동시에 출연한 것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윤혜진(신민아 분)의 대학시절 첫사랑인 지성현의 역할을 맡은 배우 이상이가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여자주인공 김유미(김고은 분)의 전 남자친구 지우기의 역할을 맡으면서 등장하였다. 이상이는 <놀면 뭐하니>의 ‘MSG워너비’ 프로젝트 멤버로 활약하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이니 비슷한 시기에 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그렇게 색다를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한 배우가 여자주인공의 ‘전 남자’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다른 두 작품에 동시에 등장하니, 이 두 작품의 차이가 한 눈에 드러났다.

 

유미의 세포들 포스터 ⒸtvN
유미의 세포들 포스터 ⒸtvN

 

2. 상처뿐인 관계들 - <유미의 세포들>

<유미의 세포들>은 이동건 작가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한 드라마다. 여자주인공 김유미가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과정을 웹툰 특유의 일상물 문법을 기반으로 하여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채로웠던 것은 이러한 일상물 속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1인칭 나레이션을 모두 유미 몸속에 존재하는 세포들의 대화와 행동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세포들을 인격화하여 유미 내면의 복잡한 마음이나 결단 등을 보여주면서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일단 세포들의 존재가 너무나 귀여웠고, 그리고 세포들을 통해 드러나는 유미의 내면이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를 진행 중인, 그리고 이별을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웹툰 원작을 충실하게 드라마로 옮기고 있다.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의 순서를 거의 바꾸지 않고 구현해 내고 있다. 드라마의 진행도 한 회차에 20~30분 정도 분량의 에피소드 2~3개 정도가 배치되는 방식으로 구성하여서, 웹툰의 에피소드별 진행의 특징이 잘 살아나도록 하였다. 보통 한 작품을 매체 전환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 경우, 전환되는 매체의 성격에 맞춰서 인물 및 이야기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과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유미의 세포들>은 그러한 수정 없이도 원작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일상의 사소한 고민과 생각을 담아내는 일상툰의 문법이 익숙한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이 작품을 보다가, 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시되고 해결되는 문법이 기본인 드라마라는 매체를 통해 이 작품을 보니, 의외로 <유미의 세포들>에 그려진 인간관계의 양상과 연애의 고민에서 약간 피곤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보였다.

<유미의 세포들>은 ‘연애의 내부’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약간은 소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미의 프라임 세포, 즉 유미의 일상을 주요하게 결정짓는 핵심 세포는 ‘사랑 세포’이다. (실제로는 ‘출출이 세포’가 유미의 프라임 세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유미는 사랑을 시작하면 남자친구가 우선순위 1위로 올라선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중요도보다 남자친구에 대한 중요도가 높다. 이렇게 유미의 우선순위에 따라 유미 마을의 모든 세포들은 사랑의 관계를 행복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유미의 내면, 즉 사랑을 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복잡한 심경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유미의 내면을 요동치게 하는 것은 유미 스스로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외부적 요인의 자극이 유미를 괴롭힌다. 유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같은 회사 동료 우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루비이기도 하고, 현재 남자친구 구웅의 같은 회사 여자 동료 새이이기도 하다. 또는 유미의 연애를 믿어주지 않는 대학 동창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미를 배신하고 헤어진 주제에 유미 눈앞에 나타나서 은근슬쩍 호감을 표시하는 전남친 지우기도 유미의 내면을 흔들리게 만든다. 유미의 연애는 끊임없이 삼각관계에 휘말리고, 한 남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으로 소모된다. 유미에게 주변 사람들이란 유미를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 상징적인 예가 배우 이상이가 보여준 전남친 지우기 캐릭터이다. 전남친 지우기는 유미에게 헤어지는 이유도 제대로 말해 주지 않고 도망쳤다. 그런 지우기를 끝까지 따라가서 알게 된 진실은 지우기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전남친이 대학 동창의 결혼식에서 유미에게 다시 호감을 표시한다. 유미는 이러한 전남친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현 남자친구 구웅에게 불가능한 시간을 내서라도 자기 친구 결혼식에 꼭 동반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물론 구웅이 얼마나 괜찮은 남자친구인가, 라는 점이다. 전남친 지우기 앞에서 눈치껏 유미와 결혼할 것처럼 행동해 주는 구웅을 보고 유미는 구웅과 진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에 전 남자친구 지우기는 유미의 분노유발자일 뿐이다. 그는 유미에게 함부로 들이대고, 자신의 결혼을 자랑한다. 유미를 지금도 자신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처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이가 <유미의 세포들>에서 보여준 전남친 역할은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서 타인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거나, 타인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관계의 역학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상대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은 감정적인 공격, 그리고 사회적 지위 및 조건에 대한 자랑 등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단지 전남친 지우기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 후배 루비, 구웅의 여자 사람 친구인 새이, 유미의 대학 친구들, 모든 인물들이 다 얄미운 인물들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유미 마을의 세포들이 보여주는 귀여움을 걷어내고 나면, 실상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보여준다. 인간관계가 이렇게 피곤한 일이라면, 아마 연애 또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유미의 연애는 남자친구의 배신 혹은 남자친구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물론 원작에서 유미는 세 번째 남자친구 순록을 만나서 행복한 결말을 맺지만, 왜 유미의 연애는 이렇게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상처받는 연애로만 그려지는 것일까. 이렇게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유미의 세포들>에서, 연애는 피곤하게 느껴진다.

 

갯마을 차차차 - 마을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식혜 커플 ⒸtvN
갯마을 차차차 - 마을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식혜 커플 ⒸtvN

 

3. 에너지가 되는 관계 - <갯마을 차차차>

하지만 <갯마을 차차차>에서 배우 이상이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여기에서도 이상이는 삼각관계의 한 꼭짓점을 담당하며, 여주인공 윤혜진과 남주인공 홍두식(김선호 분)의 관계를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윤혜진의 첫사랑으로 등장하여, 윤혜진에게 다정하게 호감을 표시하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홍두식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홍두식이 각성하게 하는 효과를 낳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상이가 맡은 첫사랑 지성현 PD는 윤혜진에게 거절당한다. 그리고 윤혜진은 홍두식과 연애를 시작한다.

윤혜진과 홍두식의 연애도 순탄치만은 않다. 일단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의 연애이니, 모든 사람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노출된다. 홍두식의 생일날에도 둘은 오붓하게 있을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두식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때문이다. 이 둘의 연애도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서울 생활에 익숙한 윤혜진에게는 남녀 둘의 친밀한 관계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들 사이의 공적인 영역에서도 노출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 둘의 연애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은 두 연인을 마냥 방해하는 얄미운 역할만은 아니다.

역시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가장 잘 대표하는 역할이 배우 이상이가 맡은 지성현이다. 지성현은 윤혜진에게 거절당한 후 괴로워하지만 공진항에서 진행하고 있던 녹화 때문에 계속 공진항에 머물러야 한다. 게다가 홍반장과는 이미 신뢰가 쌓인 관계라서 윤혜진의 선택을 받은 사랑의 라이벌 홍반장을 쉽게 미워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혜진과 홍두식은 사랑싸움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혜진은 두식의 아픈 과거를 알고 싶어 하지만 두식은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이로 인해 혜진이 두식에게 거리를 두자, 두식은 괴로워한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두식 옆에서 지성현은 이렇게 말한다. 혜진이는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있는 그대로 다 받아줄 거라고. 너에게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지성현은 사랑에 있어서는 서툴지도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함께 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다.

공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모두들 오지랖이 넓어서 개인의 사생활을 불쑥불쑥 침범하는 무례함을 장착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하는 기본은 지킨다. 누군가에 대한 배려가 그 기본이다. 두식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속이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여화정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두식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는다. 여화정의 깊은 괴로움을 아는 조남숙은 장영국와 여화정의 관계를 모른 척 해 준다. 그리고 그들은 윤혜진과 홍두식의 연애를 모른 척 해 주기도 한다. 모두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마을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윤혜진과 홍두식의 연애 관계 또한 모든 마을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두식의 과거로 인해 혜진과의 관계가 서먹해 졌을 때, 그래서 두 사람 모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게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혜진은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우연히 마주친 여화정 앞에서 갑자기 울어 버린다. 그때 여화정은 무슨 사정인지 캐묻지 않고 혜진을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인다. 그리고 혜진에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가지는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음을 드러내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대화를 통해 혜진은 두식이라는 사람이 나와는 다른 타인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 타인이 처해 있는 두려움을 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배려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혜진과 두식의 연애는 이렇게 사람들을 통해 연결되고 유지된다. 그들의 연애는 외부로 활짝 개방된다.

연애는 매우 사적인 일이어서, 나만의 기분 롤러코스터일 수도 있지만, 연애는 또한 관계의 일종이어서, 나와 네가 주고받는 핑퐁 게임이기도 하다. 연애를 하면서 나만의 기분에만 집중하기 시작하면 연애를 둘러싼 모든 관계는 나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을 흔드는 연인에게 끊임없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불안과 고독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든 연애가 주변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애라는 것이 이미, 타인을 믿고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는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연애는 고립보다는 연결을 추구해야 한다. 내 내부의 동요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란스러움에 대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때, 그렇게 타인을 배려할 때 연애는 가능해진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상처로만 남는 관계에서 연애는 즐겁지 않다. 주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고, 연애는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글 · 이주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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