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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버티는 힘에 대하여: <미치지 않고서야>
[양근애의 문화톡톡] 버티는 힘에 대하여: <미치지 않고서야>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1.10.18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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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MBC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는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말의 쓰임이 평탄한 상황에서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송곳>과 <미생>에 비견되며 ‘오피스 활극’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는 드라마의 내용도 성격도 주요 정보도 알려주지 않는 제목 때문인지 드라마의 재미와 흥미에 비해 시청률도 화제성도 높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미치지 않고서야’로 시작되는, 말도 안 되고 어이없고 황당한그러나 끝내는 일어나고야 마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의 연속이 직장 생활이고 또 사회라는 점에서 이 제목만큼 인상적인 문구도 없는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많은 사람을 자른다고?

드라마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희망퇴직신청서를 받는 당자영(문소리)이 희망퇴직 조건과 회사의 입장을 차분히 설명하는 장면. 희망퇴직 대상자는 가족의 사진을 들이밀며 호소하지만, 당자영은 흐트러짐 없이 희망퇴직을 거부하면 정리해고를 당하고 구제신청에서 회사가 지더라도 회사가 행정소송을 불사할 것이며 10년 이상이 걸리는 싸움이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설득처럼 보이는 이 협박의 말은 노동자로서 권리가 있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부품 취급을 당하는 수많은 직장인의 애환을 잘 보여준다. 감정보다 주어진 사태의 해결을 중시하는 당자영의 모습은 회사의 가혹한 처사를 충실히 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의 성질은 다르지만 그는 인사 담당이라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중인 것이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나간 후, “어디 피나는 데 없구요. 선방했네요”라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으로 보아 그 일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자르는 사람이든, 곧 잘릴 사람이든 회사를 잘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며, 그 부품이 닳고 고장 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다른 부품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당자영은 회사가 있어야 직장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고 정리해고든 매각이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여성에게 너무나도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고 임원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도 그를 추동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다. 부품에게도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부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었을, 회사의 필요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의 움직임이 기업 운영의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는 ‘을’과 ‘을’의 대립각에 치중하기보다 ‘을’들을 대립시키는 ‘갑’의 위력과 ‘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갑’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며 회사 생활을 다각도로 비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을’을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해나가는 인물들로 대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미치지 않고서야' 포스터, 출처: MBC 공식 홈페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포스터, 출처: MBC 공식 홈페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 자리에서 버틴다고?

<미치지 않고서야>의 배경은 창인시에 위치한 전자회사다. 경상남도 창원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드라마 촬영 장소와 인력을 지원받아 만들어졌다. 드라마 타이틀이 뜨기 전에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특정 인물이나 사건, 국가, 지역, 배경, 기업 등의 명칭 및 내용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라는 문구가 뜨지만, 실제로 창원시에 국내 전자회사 R&D 센터와 생산공장이 있고 극 중에 등장하는 연구단지의 모습 등 현실 속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장면이 꽤 많다.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구조조정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문제가 특정한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극 중의 ‘한명전자’에서 벌어지는 일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창인시 한명전자 연구동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반석(정재영)은 당자영과 함께 드라마를 핵심적으로 이끌어간다. 실제 회사 내의 조직도를 방불케 하는 드라마 인물 조직도와 진짜 출입증에 걸려 있을 법한 증명사진 등 하이퍼리얼한 설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활 연기가 드라마 속 생활전기사업부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은 드라마의 인기를 구가하는 힘이었다. 정재영을 비롯한 구세대 중년 회사원들과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젊은 회사원들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방식도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회사의 사활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중년 이상의 회사원들에게 희망퇴직 권고는 그 자체로 배신감을 준다. 그러나 젊은 세대 역시 무한 경쟁 속에서 만들어낸 최대치의 능력을 그저 써먹으려고 하는 회사에 희망만을 걸 수는 없다.

드라마는 연구동을 이끌어가는 ‘을’의 두 축을 균형감 있게 재현하며 창인시 생활전기사업부로 발령 받은 당자영이라는 외부 인물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최반석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는 개발자로서 충실하고 회사원으로서 성실하다. 그가 겪는 갈등은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 마련된 징검다리 같다. <미치지 않고서야>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해관계의 얽힘으로 인해 갈등을 겪던 인물들이 어느새 각자의 생활 반경 속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들은 필요한 선에서 협력하는 관계로 진전한다.

무모하지만 과감하고, 거침없지만 솔직한 최반석의 모습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회사원들이 버티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십여 년간 개발자로 일했던 그가 부서를 이동하다 인사팀에 갔을 때 보여준 면모를 보자면, 그가 버티는 힘은 오기나 자존심을 넘어선 것 같다. 최반석은 ‘왜?’라고 질문하기보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한다.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그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배우면서 자기식으로 그 일을 한다. 특별히 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와 인간다움의 조건을 벗어나지 않고 뚝심 있게 자기 길을 간다. 해고와 다름없는 인사 발령을 받고 동료에게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을 맡았으면서도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일을 그저 자기식으로 해낸다. 최반석이라는 인물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라, 밀어낸다고 함부로 내쳐지지 않는 그만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장면, 출처: MBC 공식홈페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장면, 출처: MBC 공식홈페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스타트업을 차린다고?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도 버티던 그가 정작 사표를 낸 것은 한세권(이상엽)이 기술을 가지고 이직을 한 후다. 최반석은 사표를 내고 이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스톤 컴퍼니’라는 스타트업을 차린다. <미생>의 결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후의 행보는 씁쓸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사표를 던지기까지 그가 회사 안에서 버텨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도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스톤 컴퍼니에 당자영과 신한수(김남희), 서나리(김가은)이 합세하고 벤처기업투자공모전에 나가는 에피소드는 드라마의 뻔한 해피엔딩이 주는 쾌감을 일상의 위로로 전환시킨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래된 사이니지가 고장나면 누가 와서 고칠까요? 정답은 “안고칩니다”입니다. 고장난 건 버리고 새걸로 교체하면 되니까요. 여러분 중에 혹시 버려진 사이니지처럼 직장에서 짤릴 뻔한 적이 있으십니까? 저도 23년동안 안짤리려고 꽤 열심히 일했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회사에서는 절 봐주지 않더라고요. 새로 뽑은 젊은 개발자, 더 싸고 효율적이고 부담이 없을테니까요. 예 물론 이해는 합니다. 회사도 어려울테니까요. 그치만 이렇게 맥없이 내쳐지는 게 맞을까. 나는 아직도 더 일을 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어느날 버스정류장에서 고장난 사이니지를 봤습니다.“

자신의 일과 생활을 분리시킬 줄 몰랐던 이 우직한 한 직장인, ‘중년 장그래’의 고백은 어떻게 위로를 넘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직장에서 또 사회에서 자기 자신으로 버티는 힘에 대해 더 상세히 알고 싶어진다. 일상과 접촉면이 넓은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이 있게 다루어지는 더 많은 드라마가 보고싶다. 

 

글 · 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을 수상했다. 기억과 역사의 길항 및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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