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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말밥굽 소리 - 상여 그리고 깃털
[최양국의 문화톡톡] 말밥굽 소리 - 상여 그리고 깃털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1.11.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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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오빠생각 (동요) -

 

 가로수길 은행나무에 갈바람이 이어진다. 만남을 향한 마파람 나들이는 치열한 흔적을 남기며 종착역을 향한다. 한 손으로 햇살 거울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로 치장을 한다. 노란 갑옷을 입은 경기병들의 이별 의식이 시작된다.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들려온다. 경기병과 서곡은 무기와 악기를 소환하며 울려 퍼진다. 빠르게~느리고~빠르게. 두 손의 손가락들이 햇살에 흔들리며 화답한다. 휘모리장단의 ‘말밥굽 소리’로 행진하듯 다가온 가을을 누른다. 능선 위를 오르는 ‘상여’의 울음을 튕긴다. 그리고 산이 울리며 ‘깃털’이 가득 담긴 달항아리를 뜯는다. 이제 ‘말밥굽 소리’~‘상여’~‘깃털’로 이어지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

 

가로수 / 은행나무 / 경기병 / 서곡 연주

 경기병 서곡(Light Cavalry Overture)은 주페(Franz von Suppe,1819년~1895년)의 희가극 《경기병》의 첫 부분에 연주되어 작품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이다. 《경기병》은 당시 빈의 유명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칼 코스터(Carl Costa, 1832년~1907년)의 대본에 의한 것(1866년)으로, 헝가리와 맞닿아 있는 오스트리아 경계 지방에서 일어나는 경기병의 삶과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 경기병 서곡(Light Cavalry Overture,1884년~1885년), Franz von Suppe, Google
* 경기병 서곡(Light Cavalry Overture,1884년~1885년), Franz von Suppe, Google

이 곡은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전반부는 트럼펫과 호른의 신호와 함께 트롬본이 답하는 형식에 의해, 개선문이 열리는 듯한 갤럽풍의 경쾌한 행진곡으로 시작되어 말밥굽 소리를 연상시키며 우리의 손뼉을 유도한다. 이어 관악기 선율이 주를 이루는 전반부와는 달리, 경기병 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한 단조의 헝가리풍 선율이 첼로와 바이올린의 서사적 엘레지와 더해지는 중간부가 연주된 뒤, 다시 처음의 행진곡풍이 관현악으로 재현되면서 화려하게 끝난다.

경기병(輕騎兵)은 중무장한 중기병(重騎兵)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가벼운 무장과 함께 무겁지 않은 갑옷을 걸친 말을 타는 기병을 의미한다. 무기이다. 서곡(overture)은 원래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또는 모음곡 등의 첫 부분에 연주되어 작품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이다. 악기이다. 이는 그 자체가 작품 전체를 요약한 특성도 있어,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처음 등장할 때는 ‘sinfonia’로 불리며, 이후 자연스럽게 18세기 교향곡(symphony)으로 연결된다.

우리 걸어가는 가로수길 양옆, 경기병처럼 서 있는 은행나무. 늘어서 있음으로 어울리고 하늘과 맞닿을 때 생명력을 노래하는 그들의 빛깔은 노랑. 그들은 그 빛깔로 인해 낮과 밤을 지배한다. 한 점의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떨어져 내리는 낮은 단절이며 울음이다. 낮의 세상은 무기이다. 하늘 문을 열고, 채우며 비어져 가는 순환 반복의 달을 만나는 밤은 연결이며 울림이다. 밤의 세상은 악기이다. 가로수의 언어는 ‘빠르게~느리고~빠르게’ 무기와 악기의 은유로 흐르며 말밥굽 소리로 행진한다.

 

무기는 / 단절이고 / 현의 노래 / 연결이니

 말밥굽 소리는 가야금 소리로 이어진다. 현의 노래다.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 2004년》는 대가야가 신라 이사부 장군에 의해 멸망하는 시기(562년)에 악사 우륵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노란빛 물결이 찰랑거리는 소설이다.

 

* 현의 노래(2004년), 김훈, Google
* 현의 노래(2004년), 김훈, Google

악기는 우륵이 대가야의 가실왕 때 창조한 가야금, 무기는 이사부 장군으로 대변되는 신라의 무력과 대장장이 야로가 만드는 창칼을 의미한다. 나라를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 속에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여야 하는 우륵과 무기를 만들고 통제하려 하는 이사부를 통해 ‘소리’의 이중성에 대한 고뇌를 그린다.

야로 부자를 죽이고 목욕을 마친 이사부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마루로 나온다. 신발이 해어져서 발가락에 피가 흐른 채 투항한 우륵과 ‘소리’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그럴 것이요. ~ ( 중략 ) ~ . - 그 늙은 대장장이(야로)가 말하기를,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 하였다.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이냐? -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의 것이오. 병장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병부령께서 더 잘 아시리이다. - 그러니 아마도 소리와 병장기는 같은 것인 모양이로구나.”

김훈은 신수정과의 대담(문학동네 2004년 여름호)에서 《현의 노래》에서 불러내고자 한 악기와 무기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악기와 무기라는 상징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요. 악기가 홀로 위대하고 홀로 아름답고 무기가 추악하고 야만적이라는 구분은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국 둘은 서로 같은 것이고 서로를 동경하는 것이겠죠. 나는 악기는 무기를 동경하는 것이고 무기는 악기를 동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소설 속에서 무기와 악기는 ‘상여’와 연결된다. 가야 출신 대장장이 야로는 쇠붙이의 주인은 따로 없고 지닌 자의 것이라고 한다. 우륵은 소리는 가지런한 것이 아니며, 살아서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손가락으로 열두 줄을 울려 새로운 시간을 맞는다고 한다. 무기는 단절과 울음의 세상을 지배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물질적 ‘상여’의 대상물이다. 악기는 연결과 울림을 통해 끊임없이 시공간에서 새롭게 창조된다는 점에서 정신적 ‘상여’의 대상물이다. 주인이 바뀐 무기와 시공간이 달라진 악기는 상여의 오른쪽 능선에서 나타난다. 무기와 악기는 노랑의 음영이 아니고, 낮과 밤의 노랑이다. 무기와 악기는 모두 아수라의 것이지만, 아수라에게 악기는 무기와 달리 항상 새롭고 낯설다. 무기와 악기의 틈바구니에 가련한 가야의 제도가 있다. 순장이다. 궁녀로 궁궐에 들어가 순장을 거부하며 도망치다가 야로와 우륵을 거쳐 다시 순장되는 가련한 여성. 벼 익는 향기는 울음 줄기가 되어 흩어지는데,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늘어지며 눈을 가린 채 입에 재갈이 물린 아라. ‘상여’의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온다. ‘느리고’의 순장 후 깃털이 날아간다.

 

깃털로 / 산이 울리며 / 자진모리 / 둥기둥

 깃털은 달항아리를 안으며 산을 뜯는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And the Mountains Echoed, 2013년)는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가 쓴 소설이다.

 

* 그리고 산이 울렸다(And the Mountains Echoed,2013년),K. Hosseini, Google
* 그리고 산이 울렸다(And the Mountains Echoed,2013년),K. Hosseini, Google

이는 1949년 봄~2010년 겨울의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이별에 따른 슬픔과 부재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남매인 압둘라와 파리(페르시아어:‘요정’ 의미)의 가난으로 인한 어린 시절의 헤어짐, 그리고 그들과 선으로 연결되나 시공간적으로 다른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2010년의 겨울을 향한 지난한 시간 여행을 한다.

압둘라와 파리의 60여 년의 시간은 ‘깃털’과 ‘울림’을 연결고리로 하여 아프간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압둘라가 열 살(파리 세 살) 무렵의 ‘깃털’이다. 파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깃털’을 얻어 주기 위해 다른 마을 소년에게 자기 신발을 주고 깃털로 바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작 깃털은 그의 셔츠 밑 바지 허리춤에 들어가 있고, 뒤꿈치는 찢어져 피가 난다. 시간이 흘러, 기억 상실 상태인 압둘라가 60대 후반(파리 60대 초반; 프랑스 파리 거주)으로 파리가 오빠를 만나러 온 미국에 와서 본 '깃털'. 파리는 깃털 하나를 들어 올려 팔목에 가볍게 대고, 그것이 살아나서 날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바라본다.

압둘라와 파리의 아버지인 사부르가 가난 때문에 딸을 팔러 카불로 향하기 전날 밤에 자신들의 오두막에서 들려주는 슬픈 동화는 남매간 60여 년의 헤어진 시간 동안 중요한 ‘울림’의 역할을 한다. 또한 ‘울림’은 다양한 시공간적 연결고리를 가진 주변 인물(각 장별 주인공 역할:약 10여 명) 등의 서사와도 맞물려 있다. 그들과의 연결을 통한 다소 느슨하지만, 설명본능을 드러내지 않는 서술 방식은 더욱 지속적인 큰 울림으로 전환된다.

이제 압둘라와 파리의 서사는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다. 나(기억 상실로 과거를 잃어버린 압둘라의 딸)는 차창 밖 풍경과 슬픈 단조와의 놀이를 한다. “나는 파리가 자는 걸 바라보면서, 아버지와 내가 자기 전에 했던 놀이를 떠올린다. 나쁜 꿈을 떼어내고 행복한 꿈을 넣어주던 놀이. 나는 내가 그에게 줬던 꿈을 떠올린다. 파리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그녀의 이마에 내 손바닥을 살포시 올려놓고 눈을 감는다.” 이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든다. 아빠(압둘라)와 고모(파리)는 순수의 노래를 부르는 꿈을 꾼다.

“햇살이 화사한 오후다. 그들은 다시 한번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다. 오빠와 동생. 젊고 눈매가 맑고 튼튼한 오빠와 동생. 그들은 꽃이 화사하게 핀 사과나무 그늘의 웃자란 풀밭에 누워 있다. 그들의 등에 와 닿는 풀이 따스하다. 햇살이 흐드러진 꽃들 사이로 반짝이며 그들의 얼굴에 와서 닿는다. 그들은 졸린 듯 나란히 누워 있다. 오빠는 밖으로 나온 두툼한 뿌리를 베고 있고, 동생은 오빠가 접어준 외투를 베고 있다.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찌르레기 한 마리가 가지에 앉는 모습을 바라본다. 서늘한 공기가 잎사귀들을 지나 아래로 흐른다. 그녀가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그녀는 무엇이든 자기편인 오빠. 그러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얼굴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 눈썹의 경사, 콧마루, 눈썹의 곡선만 보인다. 그러나 괜찮다. 그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 낮잠이 서서히 몰려온다. 그녀는 완벽한 평온의 물결이 자신을 감싸는 걸 느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떠내려간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맑고 빛나는 가운데.”

‘깃털’을 통해 가족 간 이별의 슬픔과 기억 부재의 상실을 극복한다. ‘울림’으로 인해 슬픈 가족사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선을 유지하며 확장한다. 현실 속 ‘느리고’는 깃털과 울림의 ‘빠르게’로 전조 바꿈을 꿈꾼다.

 

나는 종이 나무 그늘 밑에 있는/ 슬픈 요정을 보았네.

나는 어느 날 밤, 바람에 날아간/ 슬픈 요정을 알고 있네.

- 압둘라 어린시절, 어머니가 부른 노래 (자장가) -

 

‘느리고’의 자장가는 ‘깃털’로 살아난다. ‘빠르게’ 날아간다. 휘모리~진양조~자진모리장단. 그리고 산이 울린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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