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이주라의 문화톡톡] 올해의 베스트셀러 경향
[이주라의 문화톡톡] 올해의 베스트셀러 경향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1.12.13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를 읽어내려는 대중들의 욕망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근대적인 출판 시장이 작동한 이후로 출판, 언론 그리고 서점에서는 상업적인 이유든, 시사적인 이유든, 학술적인 이유든 매년 베스트셀러 동향을 분석하여 왔다. 현재 우리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960년대 즈음해서 신문에 실린 베스트셀러 분석 기사,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서점 활성화 전까지 분석해 놓은 교보문고의 집계, 그리고 인터넷 서점 이후 축적된 약20여년 간의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이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종합해서 일별하면, 1990년대부터 언제나 10위 이상의 상위권을 장악하는 책들은 자기계발서이다. 그리고 한국소설계에서 인지도 있는 유명 작가의 신작들, 마지막으로 때때마다 떠오르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종다양의 대중 서적들이다. 물론 각 인터넷 서점의 특징별로 상위권에 올라오는 책들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알라딘>의 경우 한국소설 및 웹소설 등의 서사 콘텐츠들이 강세를 보이는 사이트다. 최근 한국소설의 핫한 작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피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이와 달리 <도서11번가>의 경우는 짐작컨대, 학부모들의 구매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같은 기간 다른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루리의 『긴긴밤』이 상위 10위권 내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나 『아들의 뇌』와 같은 양육 및 교육 관련 책을 상위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사이트에는 아동용 만화 및 그림책 그리고 아동문학 등이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이러한 특정 독자층의 구매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사이트로 <예스24>와 <교보문고>가 있다. <예스24>는 더욱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며, <교보문고>는 <예스24>와 <알라딘>의 중간 정도 되는 느낌인 것 같다. 대중성과 인문교양 관련 취향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 모양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 서점별 베스트셀러의 특징은 차치하고, 전체 사이트별 공통점에 주목하였다. 2021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목록들 중 특히 상위 10위권 내에 있는 서적들을 살펴보면서 2021년 베스트셀러의 경향이 어떠했는지 대략적으로 분석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대략적으로’이다. 통계 분석에 기반한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 분석자의 감각에 의존한 직관적 분석이라는 뜻이다.

직관적으로 대략 살펴보았을 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점은 ‘부’와 ‘투자’에 관련된 책들이 엄청난 상승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투자의 본질』, 『주식투자 절대원칙』, 『거인의 포트폴리오-월급을 쪼개서 경제적 자유를 만드는 23가지 전략』, 『웰씽킹-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미래의 부’, ‘가상화폐’, ‘1등주 공략’ 등의 키워드로 책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며 베스트셀러 순위권 내에 진입한 책들이 다수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담론 속에 나타나는 관심의 방향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와 동학개미운동 이후 주식의 시세는 일상의 안부 인사가 되었으며, 부동산 가격의 급등 이후 자산 축적 및 재테크에 대한 관심도 여느 때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경향이 코로나 직전까지 한국 베스트셀러와 대비적이라는 점이다. 2010년대 중반에서부터 2019년 정도까지 한국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에세이 분야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와 같은 에세이 말이다. 단순한 만화체의 그림에 파스텔톤 색을 입혀 편안하지만 예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책표지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2010년대 중반 에세이 분야의 부상은 그 이전까지 ‘개인의 노오력’을 강조하던 자기계발서의 열풍, 거의 10년 간 이어져 온 그 열풍을 '위로'라는 키워드로 잠재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이전 10년 간 자기계발서가 ‘이렇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라는 당위를 개인 주체에게 강요하였다면, 에세이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위로의 화법으로 개인 주체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랬다.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북로망스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북로망스

이상하게도, 위로와 힐링이 필요할 것 같은 코로나 시국에, 오히려 위로와 힐링의 강자인 에세이 분야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베스트셀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렇게 에세이 분야가 상위 10위권 내에 좀처럼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에세이 분야에서 상위권에 들어와 있는 책들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가 역시 성공의 조류와 함께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다룬 책이고, 다른 하나가 기존 위로의 에세이를 고도로 도식화시킨 힐링 에세이다. 밀라노 패션 초창기 유학생으로 성공한 장명숙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나 배구 여제 김연경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가 전자의 예라면, 작가의 이력조차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작가 소윤이 우리 스스로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소윤의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와 글배우 작가가 "마음에 잃어버린 온기를 채워주는 문장들"을 담아낸 『모든 날에 모든 순간에 위로를 보낸다』가 후자의 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후자 쪽이다.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가 전형적으로 도식화되는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에세이의 전성기 시절, 에세이는 작가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통해, 작가가 그 삶의 굴곡을 어떻게 통과해 냈는가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관계에 치여 상처를 받은 사람 등등, 그들의 삶의 맥락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 같이 힘드니, 함께 힘내자의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출판되는 에세이는 이러한 삶의 맥락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조건 위로만 건넨다. 책의 제목처럼 위로의 문장을 백과사전식으로 발췌하고 모아서 전달하는 것이다. 삶의 맥락이 빠진 이 위로는 힘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정성 없는, 기계적인 위로가 되기 쉬운 것이다. 이런 식의 에세이가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에세이 시장이 새로운 발전의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즉, 위로와 힐링의 화법과 태도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서삼독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서삼독

이제 우리의 관심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돈과 부의 축적과 그로 인한 성공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회적 성공은 직장에서의 승진을 위한 인간관계 관리나, 사회적 매너의 장착, 시간 관리, 생활 습관 관리 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자기계발서가 요구하던 ‘자기 관리’의 키워드도 이미 베스트셀러 시장에서는 힘을 잃었다. 오직 성공은 투자와 재테크이다. 자산의 축적이 사회적 성공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책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시리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경제/경영, 그리고 에세이 분야의 완벽한 혼합물이다. 작가 송희구는 실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상의 캐릭터와 대화들을 각색하여 자신의 블로그와 부동산 카페에 올렸다. 이 시대 회사원들의 일상 대화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재테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굳이 따지자면 작가 개인의 경험이 각색된 소설이겠지만, 실제로는 작가 실제 경험에 기반한 에세이, 그리고 재테크의 방법을 공유하는 경제/경영, 이를 바탕으로 실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변화시켜 나가려 노력하게 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더욱 많이 가진다.

에세이의 붐을 한 번 거친 출판 시장에서 강요의 화법을 사용하는 자기계발서는 매력을 많이 잃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는 에세이 또한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이렇게 자기계발, 경제/경영 분야와 에세이는 각 분야의 단점들을 소거시키고 장점을 모아 훌륭하게 결합한 책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다. 에세이의 화법으로 재테크 및 성공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에세이든 자기계발이든 경제/경영 분야든,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경험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기반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책이 추상적인 현학에 빠지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의 삶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2010년대 중반의 히트작 『미생』과 비교한다면, 이 시대의 모순과 결핍이 확연해 진다. 이 사회에 정식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의 삶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생존의 방법을 모색했던 『미생』의 세계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더 많은 것을 축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으로 변경되는 것은 어딘가 찜찜하다. 이제 대중은 ‘미생’인 인턴사원이 아닌 연봉1억의 김부장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는 것일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속 등장인물의 층위는 물론 매우 다양하지만, 안정적 직장을 기반으로 재테크에 힘쓰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미생』과 동일한 리얼리티라고 평가받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 시장의 희망을 찾자면, 인문 분야의 변화 방향일 것이다. 최근 인문 분야는 ‘하루 한 장 인문학’과 같은 콘셉트의, 인문학의 내용을 백과사전식으로 축약하여 전달하는 형식의 책들을 계속 기획하였다. 이러한 책 기획에서 생각하는 인문학은 사실 교양을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읽는 책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문 교양의 본질은 정보가 아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의하면 교양은 책들 그리고 담론들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비평하는 일이다. 인문학 또한 사회적 담론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들의 문제를 포착해 질문을 던지는 일을 본질적으로 수행한다. 인문학은 질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이러한 인문학 서적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보여준 마이클 샌델의 저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거대 담론이 어떤 편향성을 보여주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이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에릭 와이너의 책은 대중적인 철학서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의문들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문학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백과사전식 정보전달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대중화, 상품화되어 가는 출판 시장에서도, 이렇게 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고민과 사유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기획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글 · 이주라(문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