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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울림의 탄생> ― 소아마비 청각장애인 임선빈 악기장, 60년 첫 북소리의 울림을 찾아서
[서곡숙의 문화톡톡] <울림의 탄생> ― 소아마비 청각장애인 임선빈 악기장, 60년 첫 북소리의 울림을 찾아서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1.12.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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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담긴 북: <울림의 탄생>과 무형문화재 임선빈 악기장의 60년 북 인생


다큐멘터리 <울림의 탄생>(이정준, 2020)은 무형문화재 임선빈 악기장의 60년 북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임선빈 악기장은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한 소아마비 고아에서 60년 북 장인을 거쳐 무형문화재 악기장이 된 인물이다. 그는 다른 한쪽 귀의 청력도 상실할 거라는 비보를 듣고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북소리를 담은 대작을 만들기 위해 23년을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낸다. 이 영화는 60년 동안 악기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을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무조건 배워라: 집도 가족도 없는 소아마비 청각장애인에서 악기장의 길로
 

<울림의 탄생>의 전반부에서 임선빈은 ‘무조건 배워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집도 가족도 없는 소아마비 청각장애인에서 악기장의 길로 나아간다. 과거 임선빈 악기장은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을 겪는다. 우선, 그는 6·25 전쟁 때 소아마비에 걸려 그의 아버지로부터 ‘저 놈이 차라리 내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으며, 이후 9살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헤어지게 되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다음으로, 그는 고철 줍기와 똘마니 짓을 강요하는 서부 이촌동 근로재건대에서 생활하지만, 다리를 절어서 일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계속 맞아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으며, 너무 맞아서 무서워서 도망쳐 나오는 등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혼자가 되어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등 경제적 고통을 겪는다.

 

지나가던 중년신사가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임선빈을 보고 ‘장애가 있지만 눈초리를 보니까 쓸 만하다’며 밥을 배불리 먹고 학교도 다니게 해주겠다며 데려간다. 그는 스승과의 만남으로 ‘장애가 있으니까 무조건 기술을 배우라’는 가르침을 따르며, 북 장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정신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난다.

 

현재 임선빈 악기장도 북 장인으로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을 겪는다. 북 장인이 자신의 힘든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던 유일한 길이기는 했지만, 아들은 고달픈 북 장인의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들 임동국은 부상으로 유도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되면서 전수교육 신청하는 등 북 장인의 길을 걷게 된다. 아버지 임선빈은 더 가르쳐 주려는 ‘스승’의 마음으로 임하고, 아들 임동국은 전수교육 심사위원에게 칭찬을 받은 후, ‘제자’로서 할 줄 아는 거라며 가르침을 성가셔 하면서 두 사람은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그 입이나 저 입이나: 북쟁이의 힘겨운 인생과 청력 상실의 비보
 

<울림의 탄생>의 중반부에서 임선빈 악기장은 북쟁이로서의 힘겨운 생계유지와 청력 상실의 비보 속에서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을 초탈한 태도로 극복하고자 한다. 임선빈은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아 저가의 ‘상품’을 만들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간다. 그는 ‘북쟁이로서의 생계가 많이 힘들지만 노숙하는 사람도 먹고 사는데, 이 입이나 저 입이나 마찬가지며 돈 벌기를 포기하면 된다’며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보여준다.

 

소아마비 청각장애인인 임선빈은 다른 쪽 귀도 나빠져 청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는 무릎 관절과 허리 관절이 심하게 망가져다 다리에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진단까지 받게 된다. 육체적 어려움에 처한 임선빈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위기감에 평소 꿈꾸었던 ‘작품’인 대북을 제작하고자 결심하면서 23년 묵은 나무를 꺼내온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아버지 임선빈은 고전적 스타일의 북을 고수하며 ‘소리’를 강조한다. 반면에 아들 임동국은 북을 치는 소비자 맞춤형으로 새로운 북통 ‘디자인’에 주력한다. 북의 ‘청각적’ 요소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북통의 ‘시각적’ 요소에 집착하는 아들은 정신적 갈등을 보여준다.


문제는 북통이 아니라 소리: 88올림픽 대북에서 평창 올림픽 대북으로
 

<울림의 탄생>의 후반부에서 임선빈 악기장은 88올림픽 대북을 만든 경험을 살려 평창올림픽 대북을 만들면서 북통이 아니라 소리를 강조한다. 평창올림픽 대북이라는 작품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정신적으로 갈등한다. 임선빈 악기장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23년 동안 간직해 온 나무를 꺼내고, 가죽의 성질을 살려 북을 메우고, 섬세하게 당겨주며 소리를 균일하게 만들며, 단청도 직접 그려 넣는 등 심혈을 기울인다.

 

스승이자 아버지 임선빈은 ‘내 소리, 즉 마음이 진정되는 소리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내적 영역에 끝없이 집중한다. 반면에, 제자이자 아들 임동국은 ‘작품을 남겨서 보여줘야 한다.’며 외적 영역에 관심을 가진다. 임선빈은 ‘북은 소리란 말예요. 북통이 문제가 아니라 소리란 말예요. 소리를 잡아내지 못하면 뭘 배웠단 말예요.’라며 60여 년 동안 북소리를 탐구해 온 장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한 가지 소리를 찾아서: 마음을 울려준 첫 북소리의 울림과 끝없는 구도자의 길
 

다큐멘터리 <울림의 탄생>은 마음을 울려준 첫 북소리의 울림을 기억하며, ‘한 가지 소리를 찾는’ 임선빈 악기장의 끝없는 구도자의 길을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한 가지의 소리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북을 만들고 있어요. 아직도 그 소리를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그 소리를 가지고 싸우고 있어요.’라며 집념을 보여준다. 전반부에서 ‘나처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눈을 못 감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중반부에서 ‘죽기 전에 이 북을 듣고 내 소리를 한번 만들어 놓고 싶어요. 이 북 소리를 듣고 마음이 진정되는 그런 북소리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후반부에서 ‘어렸을 때 쳤던 북소리가 내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소리였어요. 내 마음을 울려주는 소리입니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을 180도로 돌려놓았어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두운 공방에서 거친 손으로 북을 두들기며 소리를 듣는 장인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울림의 탄생>에서 무형문화재 임선빈 악기장은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 즉 북 장인의 길을 걷게 한 소리를 찾아서 끝없는 구도의 길을 외롭게 걸어간다. 이 영화는 북 소리에서 시작해서 북 소리로 끝이 난다. ‘60년을 해도 아직도 모르겠다. 제대로 해야 제대로 소리가 나온다.’는 겸허한 모습에서 임선빈 악기장이 걸어가는 구도의 길은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까지 쉼 없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생활ESG영화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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