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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같음과 다름의 고뇌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같음과 다름의 고뇌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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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누구에게 주목해야할까? 한 명은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이라 불리고, 한 명은 입체파 화가들의 아버지로 칭송받으니 말이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게다가 운명의 장난처럼 이들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다. 어쩌면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는 이 두 명의 거장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덕에 파리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유산이 남겨진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원제목, <세잔과 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기보다 어느 한 편에 서서 누군가를 관찰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세잔’은 이름 그대로 불리고 ‘나’는 에밀 졸라를 필두로 영화 속에서 세잔을 바라보는 모든 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세잔을 그려내려 노력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같은 시대를 살아간 두 위대한 인물의 관점을 그렇게 나와 너의 이야기로 바꿔서 에밀 졸라가 세잔을 관찰하는 방식을 취한다.

문제는 왜 세잔을 관찰하는가이다. 그가 더 위대한 화가여서 라거나, 그의 명성이 너무 뒤늦게 찾아왔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라고 말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오히려 주목해야하는 것은 세잔과 에밀졸라의 고뇌가 어디에서 맞닿고 있는 가이다. 그들의 고뇌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릴 수 있는가’에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 둘은 순수한 감각으로 경험될 수 있는 인간과 사물을 어떻게 쓰고 그려내야 하는지를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세잔의 사물은 사과 혹은 생빅투아르 산이 주로 그 대상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한 인간의 모습이 진지한 대상이기도 했다. 자세를 180번 이상을 바꾸게 했음에도 결국 에밀 졸라의 초상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진정한 에밀 졸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에게 세잔은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괴팍하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에밀 졸라 역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란 무엇인가가 고민의 대상이었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했던 것과 그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것도 그런 맥락과 연결된다. 만일 에밀 졸라가 세잔이 순수함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건 세잔이 속해 있는 사회가 타락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생 빅투아르 산, 엑상 프로방스
생 빅투아르 산, 엑상 프로방스

이렇게 두 사람은 “자연”이라는 똑같은 화두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엑상 프로방스는 그들에게 똑같이 ‘자연’이란 키워드를 선사했지만 방식만은 다르게 전했던 것이다. 에밀 졸라는 환경(자연)에 영향 받은 행동의 의미, 즉 당시 자연주의 문학의 핵심을 사유했었다면, 세잔은 ‘자연’의 본모습을 보고 그리는 방법에 집착했었다. 글(에밀 졸라)과 그림(세잔)의 차이는 이렇게 드러난다.

불행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같음(자연)과 다름(방식, 쓰기/그리기)의 충돌. 자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던 에밀 졸라는 그 나름의 생각을 글(소설 『작품』)로 '그려내었고', 세잔은 나름의 경험을 그림으로 '써내려갔다'. 자연을 쓰고, 자연을 그리는 방식의 차이는 같은 것이었지만 둘의 갈등이 되었다. 인간적 갈등에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바로 쓰기와 그리기의 바로 그 차이점이다.

게다가 영화는 세잔과 에밀 졸라의 고뇌에 찬 그리기와 쓰기를 실천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세잔의 그림그리는 손을 주로 보여주지 그린 그림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반면 에밀 졸라의 감정, 곧 글쓰기로 이어질 그 감정은 모두 클로즈업으로 대치되어 미학적 이미지가 된다. 그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영화를 보는 이의 몫으로 남을 것이지만, 분명한 건 글쓰기와 그리기의 같음과 다름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티 광장
알베르타 광장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그들이 왜 ‘자연’이라는 화두를 똑같이 갖게 되었는지가 조금은 이해된다. 늦은 오후까지 드리우는 맑은 저녁 햇빛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플라타너스 나뭇잎의 그림자 흔적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려내려 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청 광장 안에 가득 번지는 마들렌 향기와 그림자 흔적들, 그 속에 자리잡은 야외 벤치에 무심히 앉아 웅성대는 사람들과 그 목소리 울림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살짝 헷갈리게 할 정도다. 영화에는 엑상프로방스의 알베르타 광장과 분수의 모습이 나오는데, 변함없는 그 모습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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