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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들②-<괴물>의 강두와 국가 폭력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들②-<괴물>의 강두와 국가 폭력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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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의 손을 잡고 괴물을 피해 도망가는 강두.
현서의 손을 잡고 괴물을 피해 도망가는 강두.

<괴물>(2006)에는 서사적으로 의미가 큰 죽음이 두 차례 등장한다. 현서와 괴물의 죽음이다. 희봉의 죽음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일 수 있다. 여중생 현서는 한강에 출현한 돌연변이 괴물에게 납치당했다가 먹이로 희생되고, 희봉은 손녀를 납치해간 괴물과 맞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현서와 희봉의 죽음은 괴물의 직접적인 폭력에 의한 것이다. 괴물은 현서의 고모 남주가 쏜 불화살을 맞고 화염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희생양' 현서와 희봉의 죽음은 관객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괴물의 죽음은 현서와 희봉에게 감정 이입했던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괴물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현서와 희봉의 죽음의 의미가 달라진다. 주한미군기지에서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사실에 주목할 수도 있고, 한강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확장하여 괴물을 근대화, 경제화의 문제점이 압축된 존재로 규정할 수도 있다. 프롤로그의 자살 장면이 지닌 상징성을 고려하거나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죽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젊어서 집 밖을 떠돌아다닌 희봉과 ‘바보 남편’ 강두에 대한 아내들의 복수 서사로 읽을 수도 있겠다. 물론 현서의 죽음을 ‘소녀와 희생양’ 모티브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느 경우이든, 현서와 희봉은 괴물의 희생양으로 명확하게 관객에게 인식된다.

<괴물>에는 죽음 이외의 방식으로 희생양이 되는 인물도 있다. 강두는 목숨을 잃지는 않지만 희생양의 범주에 포함된다. 희생양이 반드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죽음이 아니라 테베에서 추방당하는 처벌을 받는 희생양이다. 오이디푸스는 이방인, 왕, 업둥이, 절름발이와 같은 희생양의 징후를 여러 가지 지닌 인물이다. 그래서 르네 지라르는 오이디푸스를 “희생양의 집적체”라고 표현한다. 강두 역시 여러 가지 희생양 징후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하위 계층의 홀아비이고, 정신적으로 약간 모자라고, 사회적·경제적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괴물>은 영화 초반의 에피소드를 통해 강두의 이러한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한다.

 

넘어진 강두를 현서가 일으켜세우는 장면.
넘어진 강두를 현서가 일으켜세우는 장면.

<괴물>의 서사는 한강에 돌연변이 괴생명체가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괴물의 출현은 강두 일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재난이다. 돌연변이 괴물의 출현, 현서의 납치, 시민들의 죽음, 시설 파괴 등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그래서 국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경찰이 투입된다. 그런데 봉준호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괴물>에서도 사건 해결 자체보다 사건 발생 이후의 부조리한 상황 전개에 초점이 맞춰진다. 괴물이 납치한 현서를 꼬리에 말아 쥐고 한강 건너편으로 사라진 이후에 새로운 문제가 불거진다.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과 그로 인한 희생양의 발생이다. 그 구체적인 인물은 강두이다.

강두는 괴물이 출현하자 앞장서서 괴물과 싸운다. 그 과정에서 괴물의 피가 얼굴에 튄다. 이 괴물의 피가 강두를 옭아맨다. 강두는 병원으로 강제 이송된다. 강두의 강제 입원은 그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의심 때문에 이뤄진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인물이 격리되는 상황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강두와 함께 괴물과 싸웠던 미군 병사의 입원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한몫한다. 문제는 그러한 조치가 비과학적이며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정부는 괴물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강두의 강제 격리와 입원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재난을 수습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혹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과학적 근거도 없이 강두를 희생양으로 만든 것이다.

강두의 강제 입원은 사회로부터의 일시적인 추방을 의미한다. 게다가 강두는 병원에서도 겹겹이 폐쇄된 특수 병실에 입원한다. 여기에서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강두의 행적은 ‘재난(위기)-범죄-징후-처벌(폭력)’로 구성되는 박해의 상투적 전형 가운데 ‘범죄’와는 무관하다. 강두는 바보, 홀아비, 무능력자이지만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인물이다. 손님이 주문한 오징어구이의 다리 한 개를 뜯어먹은 것은 그냥 철없는 행위일 뿐이다. 강두가 희생양 징후를 지니고는 있지만, 범죄와는 무관한 인물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은 정부가 강두를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 추방하는 폭력의 부당함과 동시에 강두의 병원 탈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매점에서 낮잠을 자는 강두.
매점에서 낮잠을 자는 강두.

<괴물>에는 정부 이외에 다른 권력기관의 폭력도 등장한다. 언론은 정부가 조작한 가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병원은 과학적인 검증 없이 정부 지시를 묵묵히 실행할 뿐이다. 강두는 정부, 언론, 병원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무고한 희생양인 셈이다. 이는 봉준호 영화가 줄곧 사회 비판과 풍자에 초점을 맞추어온 점과 일맥상통한다. <살인의 추억>이 연쇄살인 수사 과정에서 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의 문제를 끌어들여 우리 사회를 비판했다면 <괴물>은 경찰, 언론, 병원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강두가 지닌 희생양 징후는 현서의 죽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찰은 강두가 납치당한 현서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현서가 이미 죽었다고 단정한 데다가 ‘바보 같은’ 강두의 말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물>은 현서가 강두에게 전화하는 장면, 강두의 휴대폰이 울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따라서 경찰이 간단한 위치 추적만 했어도 두 명의 희생양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서는 표면적으로 괴물의 희생양이 되지만 본질적으로는 국가 권력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익숙하다. <살인의 추억>에서 경찰은 엉뚱한 혐의자들만 체포한 뒤 폭력 수사를 진행한다. <마더>에서는 경찰의 무능 이외에 무사안일주의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찰은 여고생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도준을 지목하는데, 그 이유가 어이없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을 증거물로 제시한다. 경찰은 나중에는 셔츠에 피해자의 혈흔(코피)이 묻었다는 이유로 정신지체아 종팔을 살인범으로 구속한다. 그러니까 경찰은 엉뚱한 증거물로 도준과 종팔을 체포한다. 게다가 진짜 범인 도준은 풀어주고, 무고한 인물인 종팔을 범인으로 확정한다.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강두 일가족.
합동분향소에서 현서의 죽음을 슬퍼하는 강두 일가족.

<괴물>에는 두 가지 유형의 희생양이 등장한다. 현서와 희봉은 돌연변이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희생양이다. 강두는 유사 죽음의 과정을 거쳐 괴물을 물리친다. 그들이 희생양이 되는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를 포함한 권력기관의 폭력이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괴물 탄생의 지정학적 구조, 바이러스를 둘러싼 정부와 주한미군의 대책, 경찰의 무능과 무사안일주의, 병원과 언론의 권력 추수주의 등이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한 가지만이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희생양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두는 희생양의 덫에서 빠져나와 영웅적인 면모를 발휘한다. 비록 현서를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괴물을 물리친 후 고아 소년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이러한 결말로 인해 강두가 희생양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두는 <괴물>에서 희생양 징후가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고, 실제로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두가 지닌 희생양 징후는 강두의 영웅적인 면모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그래서 강두가 마지막 시퀀스에서 바이러스 관련 발표를 전하는 텔레비전을 발로 끄는 장면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괴물>의 강두 일가족은 우리 사회의 하위 계층에 속한다. 다섯 명의 가족 중에서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인물은 최연장자인 희봉뿐이다. 하지만 그도 젊은 시절에는 가족을 보살피기보다 밖으로 떠돌던 인물이다. 남일은 운동권 출신으로 변변한 직업이 없으며, 남주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머뭇거려 우승하지 못하는 양궁선수이다. 이 인물들의 특징은 <플란다스의 개>의 시간강사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말단직원, <마더>의 엄마와 도준,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 <옥자>의 미자 등 봉준호 영화의 다른 주인공들과 비슷하다. 희생양 징후가 짙은 인물들의 이러한 특징은 관객들이 봉준호 영화에 몰입하는 중요한 설정의 하나가 된다. 감정이입과 동일시의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의 희생양 징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관객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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