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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5) - K-문학을 위하여
창간 13주년 연중기획 (5) - K-문학을 위하여
  • 유성호 l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1.28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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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5]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굳건하게 통용되던 ‘한국문학’이라는 용어 대신 ‘K-문학’이라고 써놓고 보니 영 생소하기만 하다. 하긴 내 어릴 적에는 ‘방화(邦畫)’라고 불리던 것이 이제는 ‘한국영화’라는 명칭으로 확고하게 몸을 바꾼 것을 보면 예술의 명칭 변화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듯하다. 한국가요보다는 K-팝이 익숙해지고 K-방역까지 자주 언급되는 마당에, K-문학만 어색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물론 문학은 가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웹 콘텐츠, 게임, 뮤지컬 등에 비춰볼 때 개념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은 장르다. 다른 장르들이 한류라는 뉴 웨이브에 실려 빠른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는 데 비해 문학은 여전히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오래된 물결(Old wave)’일 뿐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문학은 예술의 맏이임에 틀림없지만, K시리즈로만 한정해보면 가장 늦게 울음을 터뜨린 막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의 심장을 향하는 최근 한국문학의 높아진 위상을 떠올릴 때 그것이 비록 ‘오래된 물결’일지라도 천천히 유속(流速)을 늘리면서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K-문학을 그동안의 국민문학 개념인 ‘한국문학’을 넘어 세계의 좌표 속에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문학의 새로운 좌표

그동안 ‘국민문학’과 ‘세계문학’은 대립적 개념으로 사용돼왔다. 국민문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고유성을 드러낸 것이었다면, 세계문학은 특정 지역과 언어를 초월해 인류 공유의 보편성을 담아낸 것이었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 유럽 공통어였던 라틴어 대신 지방어에 불과했던 이탈리아어로 쓰였다는 점에서 국민문학의 선구로 꼽힌다. 영국의 디킨스, 독일의 괴테, 프랑스의 위고, 러시아의 푸시킨 등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국민문학의 탁월한 결실 가운데 보편성을 인정받은 것들이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을 사후적으로 획득해간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 세계문학으로 창작된 것은 없는 셈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세계문학이 영독불(英獨佛)과 러시아라는 한정된 대상으로 구성됐다는 점에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에도, 이 4개 언어권에 속한 작품 외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도 생생한 목록이 기억에 선하다. 셰익스피어 등 영어권, 카프카 등 독일어권, 플로베르 등 프랑스어권,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어권 작가들이 그대로 우리의 불멸의 고전이요 로망이요 명작으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안방까지 치고 들어와 있었다. 적어도 문학에서는 ‘세계=서구’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됐던 것이다.

서구의 오랜 지배를 받아온 제3세계문학에 인류가 눈을 돌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유럽과 가까워서 더 큰 고통에 시달린 아프리카는 문학의 불모지로 인식되기까지 했다. 세네갈 시인 데이비드 디오프는『 아프리카』라는 작품에서 강렬한 예언자적 감성으로 이런 서구 중심의 세계문학 개념에 균열을 가한다. “나에게 아프리카를 말해다오./이 굽은 등은 너인가/굴욕의 무게로 부서진 이 등/붉은 상처 자국에 전율하는 이 등/그리고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채찍에 ‘네’라고 답하는 이 등이 너인가/그러나 어떤 엄숙한 음성이 내게 대답한다./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하얗게 시든 꽃들 가운데/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바로 이 나무,/이것이 아프리카다.”

시인은 식민지 역사로 물든 아프리카의 아픈 현실과 밝은 미래를 대조하면서 조국에 대한 확신을 열정적 목소리로 노래한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젊은이들에게 이런 비전을 호소하면서 당당하고 자유롭던 아프리카와 제국의 억압으로 노예화돼버린 아프리카를 동시에 불러온다. 이때 그의 조국은 핏물로 얼룩지고 등에 채찍 자국이 선명한 모습으로 각인되지만, 마침내 강한 생명력을 지닌 “젊고 튼튼한” 한 그루 나무로 비유되기에 이른다. 시인은 아프리카가 당당한 세계사적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종교적 엄숙성으로 확인하면서, 제국주의의 폭력이 얼마나 부당한지, 왜 서구 중심의 시선이 보편성이 될 수 없는지, 어떻게 그 억압을 극복해갈 수 있는지를 노래한 것이다. 

이때 이 시편은 당당한 세계문학으로 진입한다. 이렇게 새롭게 호명된 세계문학은 서구를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정말 세계 전역의 독자들을 전혀 다른 보편성으로 불러온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계문학 작품들이 앞다퉈 번역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서구 미번역 작품들도 여럿 있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제3세계 것들도 수없이 많다. 이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세계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K-문학은 이런 흐름에서 탄생했다.

 

책으로 벽을 쌓은 파주 지혜의 숲

K-문학의 국제적 위상과 번역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이라는 커다란 성취를 이뤘다. 한강에 관련한 개인적 정보나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에 대한 기사는 그야말로 차고도 넘쳤다. 수상작에 대한 수준 높은 리뷰도 여럿 등장했다. 잘 알려졌듯이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가 된 한 여성이 스스로 나무가 돼간다고 생각하면서 겪어가는 내면의 흐름을 담고 있다.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위안과 공감의 친화력이 강렬한 데다 한강 특유의 점착력 있는 문장이 얹혀 소설을 끝까지 손에서 못 놓게 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물론 나는 한강의 대표작으로 이미 『희랍어 시간』과 『소년이 온다』를 주목한 바 있다. 전자가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존재론적 드라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차원을 호소했다면, 후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황에 대한 기억을 때로 사실적 서사로 때로 살아남은 자의 내면적 목소리로 어루만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상작은 번역자의 선택에 의해 『채식주의자』로 향했다. 그것은 저자인 한강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한영 번역’이라는 과정과 결과가 중요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非)영어권 작품이 영국에서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 것에 대해 시상하되, 작가와 번역자에게 동일한 상금을 수여하고 동급의 예우를 한다는 점에서 ‘보편언어로서의 영어’를 캐치프레이즈로 삼는 그레이트 브리튼(GB)의 제국적 욕망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초’를 유난히 상찬하는 우리 특유의 호들갑은 여전히 문제적이었다. 이 ‘최초’의 사건 이전에도 한국문학은 쓰이고 읽혔을 테고, 수상 후 갑자기 한국문학의 수준이 높아진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힘을 실감했으니 이제 ‘번역’이라는 굴절과 창조의 작업에 대한 지원을 국가가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자연스럽게 대두했다. 

이때 우리는 번역가 데버러가 직역이 아닌 의역(意譯)을 주로 택했고 심지어는 오역에 가까운 창의적 번역도 많이 구사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보다는 영어 사용자가 더 친숙하게 맞이할 ‘창의적 번역’이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한다는 번역관(觀)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우리는 ‘문학으로서의 번역’을 생각해보게 되고, 정확한 번역보다는 아름다운 번역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외로운 요구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문학이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궁극적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이를 접하고 누리는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게 하는 언어예술이다. 그 점에서 아무리 영상 매체가 주도적 예술로 자리 잡아간다고 해도, 문학을 통해 경험과 생각을 계발해가는 인류의 성숙 과정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문학은 인간이 삶과 사물을 인식하는 데 더없이 필요하며 언어를 통해 사상과 정서를 키우는 데 중심 역할을 지속해가고 있다. 특별히 국가가 문학의 창작과 번역의 저변 확대를 위해 나서준다면, 개인 차원의 일로만 여겨졌던 문학의 순환 회로가 더 탄탄하고 견고한 공공적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점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K-문학 융흥 프로젝트

‘코로나 19’로 빚어진 지구촌 전체의 재난이 인류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꿔가고 있다. 그동안 주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10만 관중이 운집한 채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수만 명이 동시에 출발선을 떠나는 마라톤 대회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청중이나 한국영화의 천만 관객도 어쩌면 2020년 이전의 신화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단기간에 어떤 대안 모형이 마련된다면 이런 변화 양상이 스포츠나 공연 예술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참여자 감소 문제는 팬데믹 사태가 불러온 변화 가운데 가장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미증유의 감염병은 문학에도 결정적인 변화를 안겨줄 것이다.

지금 한국문학은 번역과 해외출판, 세계문학과의 교류, 차세대 번역가 양성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다. 세계인으로부터 ‘K-문학’ 혹은 ‘문학 한류’로 주목받으면서 인류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귀에 익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보다는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라는 차원을 상상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말은 한국문학을 바깥에서 알아달라고 애원하던 시대의 수동적 술어이고, 이제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그 위상과 가능성을 ‘세계문학으로서 K-문학’으로 귀착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K-문학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서 더 나아가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한국문학의 생산을 강화하는 한편 양질의 번역을 통해 세계 독자들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게끔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시대 환경을 반영하는 ‘분단된 남과 북의 문학’, ‘한국인 문학과 한국어 문학’, ‘다문화환경 속에 등장할 새로운 한국문학’ 등을 담아가야 한다. 

한류 차원에서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핵심 역할을 수행할 역량 있는 번역가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양성함으로써 이루어갈 문학 한류를 기대하고자 한다. 곧 들어설 새 정부가 책임지고 수행해가야 할 K-문학 융흥(隆興) 프로젝트다. 

 

 

글·유성호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및 인문대학장.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편집주간. 저서로 『서정의 건축술』,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등이 있음. 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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