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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사랑의 실감, 일상의 다큐멘터리
[이주라의 문화톡톡] 사랑의 실감, 일상의 다큐멘터리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14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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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일상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걸까. 근대적 연애가 도입된 지 백 년이 넘어선 지금, 연애의 열풍으로 사랑앓이를 심하게 겪었던 1920년대에서 딱 백 년이 된 지금, 우리에게 사랑과 연애는 무엇일까. 전통과 관습의 억압도 돈과 계급의 차이도 많이 사라져 개인의 자유로운 연애가 진정 가능해진 현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연애에 직면한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어려움을 여전히 토로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SBS에서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방영했던 <그 해 우리는>은 요즘 시대 사랑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그 해 우리는>은 고등학교 때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남녀 한 쌍이 그 다큐멘터리가 역주행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두 학생은 역시나 고등학교 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연애를 했었고, 무려 5년이나 연애를 지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졌고, 이별은 그리 쿨하지 않았고, 그렇게 서로 껄끄러운 상태에서 다시 만난다

 

그 해 우리는 포스터ⒸSBS
그 해 우리는 포스터ⒸSBS

<그 해 우리는>은 이별 뒤 재회를 그린 사랑 이야기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사랑 이야기의 핵심이다. 사랑은 왔다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은 미숙하고 어리숙했던 첫사랑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실패한 후,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를 다시 만나, 지나간 이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안에 시달리며 새로운 상대와 밀당을 하고, 두 사람의 타이밍이 잘 맞으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무한 반복이 요즘의 사랑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누군가를 다시 맞아들이는 반복의 과정이 표면적으로 보면, 참으로 가볍고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크나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사랑 이야기는 이별에 대해 말해야 한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항상 지나간 이별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해 우리는>은 이를 국연수(김다미 분)와 최웅(최우식 분)의 이별과 재회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커플의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의 종합선물세트이다.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마주치게 되면, 이별을 했던 그 순간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그 동안의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떠오르지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의 설렘과 풋풋함도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의 가장 명작이라 꼽는 작품이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인지도 모른다. 20년도 넘은 작품인데 아직까지도 20대들이 좋아하는 사랑 영화 중 하나이다. <그 해 우리는>은 <이터널 선샤인>과 마찬가지로 이별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의 설렘이 이별의 상처와 겹쳐지는 순간이 우리가 매번 겪는 사랑의 시작이다. 이미 수많은 이별을 겪은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어떤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린다. 예전 사랑의 실패가 이번 사랑에도 동일한 영향을 미쳐서, 나는 또 사랑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예전에 헤어졌던 애인과 다시 만날 때에도, 똑같다. 국연수와 최웅이,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나면 똑같은 이유로 또 헤어진다는 연애 속설을 듣고 서로 달라지려고 그토록 애썼던 이유도, 동일한 실패가 반복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국연수는 자기 일에 몰두하면 단답식의 무뚝뚝한 답변만을 남기는 자신의메시지 창을 보며 자기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최웅도 자신이 연수를 귀찮게 할까봐 조심스럽다. 우리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사랑의 과정에서 겪었던 나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두 사람의 사랑이 주변의 반대나 방해에 부딪혀서 좌절을 겪게 되는 식의 이야기는 이미 올드해 진 것이다. <그 해 우리는>은 사랑의 시작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잡아내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사랑이 깨지는 이유 또한 예민하게 포착하였다. 전형적인 사랑의 서사에서 나오는 이별의 이유는 출생의 비밀, 집안의 반대, 계급 차이, 가치관 차이 등으로 그려졌다. 이 중 가장 현실적인 이별 사유가 가치관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려지는 가치관의 차이는 대체로 계급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나 젠더 역할 수행에 대한 이해도에서 비롯된 갈등으로만 이 문제를 전형화시키고 있다. 혹독한 성장 환경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차갑고 도도한 재벌남과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는 여자,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와 이와 부딪히는 소신있는 남성, 이렇게 말이다.

<그 해 우리는>에서, 결정적인 이별의 장면은 없다. 연수가 웅과 돌담길을 걷다가 “내가 버릴 수 있는 게 너밖에 없어.” 라는 잔인한 말을 남기고 연수가 돌아선 순간이 사실 결정적 이별의 장면이지만, 이 장면에서 도대체 왜 연수가 웅을 버리는지, 왜 연수와 웅이 헤어져야 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재회 이후 이 둘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그렇게 추억을 회상하는 일이 잦아지면서야, 둘의 이별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웅은 몰랐지만 연수는 헤어짐을 직감했던 그 순간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던 때였다. 연수는 여기저기 낼 입사원서를 작성하느라 바쁘다. 웅은 ‘햇빛 아래 누워 있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하던 예전처럼 침대에서 누워 뒹굴거리고 있다. 문득 웅이 묻는다. 연수 너의 꿈이 뭐냐고. 연수는 뭐, 취직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거, 정도로 대답한다. 웅은 놀란다. 연수가 어려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웅은 그렇게 대단하게 살아온 연수의 꿈이 고작 취업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다. 웅의 무심한 놀라움은 연수에게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웅과 나는 다르구나. 넉넉한 환경에서 아무런 억압 없이 어떤 부족함 없이 자란 웅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이별은 바로 이러한 순간에 시작된다. 사랑은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하지만, 이별은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한 균열로 마무리된다. 나와 다른 네가 나의 삶과 가치관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지켜봐 줄 때, 나는 인정을 받는 기분으로 더욱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네가 도대체 왜 그렇게 사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할 때, 나 또한 내 삶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다. 그렇게 나의 삶과 가치가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 나는 너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은 식어가는 것이다.

이별은 대단하고 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대중매체에서 전형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배신, 가치관의 타협 없는 충돌, 외부의 위협 등만으로 사랑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이별은 오히려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사소한 순간에 극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 뿐이다. <그 해 우리는>은 이러한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 하나하나의 조명을 밝혀 준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최웅이 생각하는 이별과 국연수가 생각하는 이별의 장면이 다르다. 그리고 각자 마음이 싸늘해지는 순간들이 다르다. 이러한 사소한 순간들에 대한 예민한 포착이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그 해 우리는>은 현재 우리가 겪는 일상에서의 사랑을 가장 실감 있게 풀어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프였던 다큐멘터리 제작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일상을 되도록 가만히 지켜보면서 일상에 숨겨진 사소한 중요함을 포착하듯이, 이 드라마도 사랑을 극적 이야기로 풀어내기보다는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랑의 설렘부터 이별의 아픔과 이별 후의 그리움까지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한 애증까지 복잡다단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사랑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그 해 우리는>은, 복잡다단한 감정이 널을 뛰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 봐” 라고 말해 준다. 다큐멘터리 편집에서 이야기를 엮어내기 위해서 주인공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할 때 내가 사랑하는 상대의 시선을 따라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말해 준다. 이렇게 사랑은 말없이 조용히 할 수 있는 행동이며, 극적이지 않은 일상의 사소함이다.

 

 

글ㆍ이주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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