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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짧고 경쾌한 즐거움, 단막극을 소개합니다 – 로맨스 드라마 2편
[구선경의 문화톡톡] 짧고 경쾌한 즐거움, 단막극을 소개합니다 – 로맨스 드라마 2편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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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은 어쩐지 외로운 장르가 된 기분이다. KBS의 <드라마게임>, MBC의 <베스트셀러극장>, SBS의 <오픈 드라마 남과 여>까지 방송 3사에 모두 단막극이 있고 주말마다 나름 이 단막극들을 챙겨보는 시청자가 존재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단막극은 주로 신인 작가와 신인 연출자가 쓰고 만들고 신인 배우가 나와서 결과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신인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훈련장이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젊은 층의 입맛에 더 맞았고 그래서 그들이 많이 보고 소비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볼거리가 넘쳐나고 채널도 플랫폼도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많아졌다. 드라마 편수가 늘어나고 빅히트하는 미니시리즈가 많아지고 채널도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수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연속성도 없고 특별히 이목 끌 만한 홍보 요소도 없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제작비도 적은 단막극에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어진 것이다.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제작비 투자 대비 수익률이 낮은 단막극에 크게 힘 쏟을 필요가 없으니 단막극은 점점 찬밥 신세가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도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래서 단막극을 살리고 유지하기 위한 관계자들과 방송사의 노력도 계속되어 왔다. 지금은 KBS에서는 <드라마 스페셜>, tvN은 <드라마 스테이지>, 그리고 jtbc에서는 <드라마 페스타>라는 이름으로 모두 시즌제로 1년에 한 번씩 공모와 방송을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문근영, 전소민, 최진혁 등 주연급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등 주목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와 실험의 장이 되는 단막극이 결국은 k-드라마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쩌면 지금과 같은 다채널 시대에 오히려 단막극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 엉뚱하지만 희망적인 생각도 한번 해 본다. 이제는 단순히 배우의 이름이나 엄청난 스케일의 제작비로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OTT의 발달로 콘텐츠에의 접근은 전보다 쉬워졌고 SNS의 발달로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어떤 작품이 재미있는지 아닌지 훨씬 빠르게 민감하게 정보가 전해지고 시청자는 더욱 냉정하고 스마트해졌다. 다시 말하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콘텐츠의 퀄리티만이 중요하다는 얘기이고 이는 어쩌면 창작자에게는 훨씬 유리한 일일 수 있다. 퀄리티를 담보해낼 수만 있다면. 본방에 재방까지 마치고 나면 흘러가 버리고 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유료든 무료든 화질이 좀 안 좋을 수는 있어도 지나간 드라마를 어디선가는 볼 수 있는 시대다. 지나간 노래가, 영상이, 역주행을 하듯이 단막극도 재미있다면 역주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단막극의 의미나 역할을 논하는 것은 관계자끼리 해야 할 일이고 시청자에게는 거두절미, “이거 재밌어, 한 번 봐 봐” 하고 권할 수 있는 작품만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런 작품을 두 편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이번에는 우선 가장 대중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두 편을 골라보았다.

 

'나의 흑역사 오답 노트' 포스터
'나의 흑역사 오답 노트' 포스터

수학과 연애의 상관관계 <나의 흑역사 오답 노트>

2017년 KBS 극본공모 당선작으로 드라마스페셜로 방영된 작품이다. 수능 출제위원으로 합숙소에 들어가게 된 수학 교사 도도혜(정소민 분)은 그곳에서 중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나필승(박성훈)을 수학과 담당 경찰로 만나게 된다. 흑역사로 남았던 그때의 기억에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둘은 자꾸 얽히게 되고 어쩐지 새로 시작되는 썸에 마음이 설렐 무렵, 2차 검토위원으로 수학 교수인 전 남편 최진상(오동민)이 들어오면서 뜻하지 않은 삼각 구도가 펼쳐지게 된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수학 오답 노트를 적듯이 사랑의 흑역사도 오답 노트로 남기는 도도혜. 과연 그녀의 흑역사 오답 노트의 엔딩이 무엇일지 결말도 궁금해지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연애 과정을 수학 이론에 빗대어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당의 평행 관계’ ‘썸의 교집합 요소’ 등으로 장을 나눠 소제목을 달고 전문적인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에피소드와 대사들은 만들어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고 이러한 구성이 로코의 경쾌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또 하나 신선한 점은 수능 출제 합숙소라는 새로운 배경이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는 딱히 본 적이 없는 공간을 가져와 그 자체로 흥미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홍보 문구의 ‘속세 단절 로코’라는 표현처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세 남녀를 데려다 놓음으로써 이야기를 훨씬 효율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2018년 당시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됐던 상황을 활용해 결정적인 에피소드로 잘 활용한 점도 작은 재미 요소 중 하나다.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포스터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포스터

사소한 것이 전부가 될 때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이 작품 역시 2020년 KBS 극본공모 당선작으로 2021년에 드라마스페셜로 방영이 되었다. 중학교 보건 교사인 오진(신예은 분)에겐 3년째 연애 중인 애인이 있다. 잘 나가는 광고제작사 대표인 차민재와의 연애는 별문제 없이 흘러온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축구 경기 내기에서 오진이 지자 차민재는 진심을 다해 여자친구인 오진에게 딱밤을 날리고 그 순간 오진은 깨닫는다. 이 관계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고작 딱밤이 이별 사유가 되느냐고 황당해하는 차민재. 하지만 오진은 더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를 그만두고 싶어지고 둘의 관계는 갈등으로 치닫는다.

연애나 사랑이 그저 이기적인 자기 욕망의 충족이기만 할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 종종 뉴스로 접하곤 한다.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 관계는 사랑이든 우정이든 업무든 어디서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문제를 사건에 치중해 풀어갔다면 건조한 사회극이 되었겠지만 여기서는 연애 관계 안에서 여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섬세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진의 반면교사가 되어준 엄마(서이숙 분)나 오진을 조심스럽게 존중해주는 짝사랑남 구원빈(홍경 분)을 통해 사랑의 예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사회상과 관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보기는 쉽지만 쓰기엔 어려운 게 로맨틱 코미디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너무나 많이 했던 얘기이고 다 아는 주제, 다 아는 감정들이기 때문에 새롭기가 쉽지 않다. 뻔하디뻔한 진부한 스토리에 클리셰의 남발로 뒤범벅되기 십상이다. 위 두 작품은 그런 실수를 잘 피해 간 수작들이다. 액션의 과격함이 싫거나 미스터리의 두뇌 싸움이 귀찮을 때, 너무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게 무언가 보고 싶지만 무턱대고 허망한 킬링타임은 좀 아쉬울 때,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 잠깐은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즐기고 싶을 때, 그런 날 보기 좋은 잘 만들어진 단막극 두 편이다.

 

 

글·구선경
문화평론가. 드라마 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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