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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매그놀리아>의 프랭크
[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매그놀리아>의 프랭크
  • 김경욱(문화평론가)
  • 승인 2022.03.07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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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하는 남자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1999)는 다중 플롯 영화로서 주요 인물이 여러 명이다. 부모의 잘못이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지, 그 결과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는 가운데, 프랭크 T.J. 매키(톰 크루즈)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다.

 

 

프랭크는 『유혹과 파멸』의 저자로서 ‘여성 전문가’로 자처하며, “금발 미녀가 여러분에게 매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광고한다. 그는 집회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웅장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인류의 여명‘ 부분에 사용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 곡이다)와 함께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웅처럼 남성 추종자들 앞에 등장한다. 그는 “남자를 존경하라, 그리고 여자를 길들여라”라고 외치면서, “여성을 노예로 삼고 지배하는 방법”을 설파하며 광신적인 부흥회처럼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다.

 

프랭크는 어둠 속에서 영웅처럼 등장한다
프랭크는 어둠 속에서 영웅처럼 등장한다

그런 다음, 프랭크는 쇼프로그램 『프로필』의 여성 기자 기네비어와 인터뷰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프랭크는 마초 또는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는 여성 기자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는가 하면, 팬티 차림으로 그녀 앞에 가까이 다가가 “거리에 나가서 1초라도 멈추는 여자가 있다면 당장 꼬실 수 있다”고 장담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 때문에 사방에서 여자들이 몰려온다”고 자신하는 그는 상대가 백인 금발 미녀가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흑인 여성이므로, 자신의 말이 당장 실현되리라고 자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네비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프랭크는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다(이 장면을 지금 보면 더 인상적인데,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꽃미남 스타 톰 크루즈가 연기하기에 그렇게까지 혐오스럽지는 않다). 인터뷰 자리임에도 그는 기네비어가 질문할 틈을 주지 않은 채 혼자 미친 듯이 떠들어댄다. 아마도 그는 기네비어가 자신에게 매혹되거나 자신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인터뷰하려는 목적을 잊어버리기를 원했던 것 같다.

 

프랭크는 여성 기자 앞에서 마초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인다
프랭크는 여성 기자 앞에서 마초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인다

기네비어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이제 진정하고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하자, 그제야 프랭크는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알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기네비어가 부모와 학력 등에 대해 질문하자, 프랭크는 ”방송국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사서였는데 퇴직했다. UC버클리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거의‘ 받았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러나 프랭크의 답변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기네비어가 UC버클리를 다닌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하자, 프랭크는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아니었는데, 3명의 교수가 청강을 허락했다“고 변명하면서 딴소리를 늘어놓으며 화제를 바꾸려고 한다. 그의 거짓말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항은 부모에 관한 것이다. 기네비어의 조사에 따르면, 프랭크는 얼과 릴리 패트리지의 외동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1980년에 사망했고 아버지는 생존해있다.

기네비어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방어기제로 사용했던 프랭크의 억지웃음은 점점 사라지고 침묵 속에서 분노의 표정으로 바뀐다. 그러다 프랭크는 ”내 시간을 내줬는데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고 소리 지르면서, 기네비어를 때리기라도 할 듯이 가까이 다가가며 위협을 한다. 인터뷰에서 치부를 드러낸 그는 아무 잘못이 없는 비서에게까지 미친 듯이 화를 낸다.

프랭크는 왜?

프랭크의 아버지 얼은 방송가에서 성공한 인물이었으나 현재는 임종 직전의 상태에 있다. 얼은 간병인 필(필립 시모어 호프먼)에게 아들 프랭크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얼의 고백에 따르면, 12살의 나이에 예쁜 도자기 인형같이 예뻤던 릴리를 만났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릴리는 얼의 인생 그 자체였던 아내였으나, 얼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다. 아마도 얼은 한 여자에게 매여 살기에는 자신이 너무 멋진 남자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얼의 가장 큰 잘못은 릴리가 암에 걸렸는데도 밖으로 나돌면서 그녀를 전혀 돌보지 않은 것이다. 아들 프랭크는 14살에 혼자 엄마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 얼은 아내와 아들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고, 찾아가지도 않았다. 얼 자신의 말처럼,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후회하고 한탄해도 너무 늦었다.

흔히 아버지/어머니가 집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나면, 혹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들/딸은 어머니/아버지의 정서적인 남편/아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프랭크는 사춘기의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어가는 어머니의 남편 역할을 감당했던 셈이다. 프랭크의 간호를 통해 어머니가 회복되었다면 상황은 훨씬 나았겠지만, 어머니가 끝내 죽음을 맞이하자 프랭크의 멘탈은 붕괴 직전에 이른다. 프랭크는 먼저 아버지 얼이 자주 ”천한 놈“이라고 비하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못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자책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과정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여기에 어머니의 죽음이 더해지자, 남자인 자신의 능력 부재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몰아칠 때, 해결 방법의 하나는 덜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프랭크는 먼저 현실을 기만한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학력을 위조하고, 어머니는 살아있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는다. 그런 다음, 자신이 어머니 같은 나약한 희생자라는 무력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가해자와 동일시한다.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의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정서적 폭력은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대신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해 버린다. 또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 해결되지 않은 슬픔은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프랭크는 두려움과 슬픔을 분노로 바꾸고, 그 분노를 통해 강하다고 느낀다. 그는 강한 남자로서, 여성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고, 여성을 지배하고 가학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전도사가 된다. 결국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의 나쁜 행동을 그대로 재연하게 된 것이다.

가해자와의 대면

헌신적인 간병인 필의 노력으로 프랭크는 죽어가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망설이던 프랭크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간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버지의 얼굴에 대고 직접 자신의 분노와 저주를 퍼붓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것이 프랭크의 의식적인 핑계라면, 무의식적으로는 아버지에게 남아있는 애착 때문일 것이다. 프랭크의 경우처럼 부모가 문제가 있을 때, 아이는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부모를 증오하는 (윤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남이 아니라 부모이므로 아무리 미워하고 잊어버리려 해도 애착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고통까지 겪게 된다.

 

프랭크는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악담을 퍼붓지만 오열하고 만다
프랭크는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악담을 퍼붓지만 오열하고 만다

프랭크는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아버지 앞에서, 냉소하고 저주하며 악담을 퍼붓는다. 그는 ”당신을 위해 결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끝내 터져 나오는 오열을 막지 못한 채, ”죽지 말라“고 ”나를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소년 프랭크에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젊은 아버지 얼은 대항하기 어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랬던 아버지가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프랭크에게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된다. 그럼으로써 프랭크는 무의식에서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소년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나쁜 부모를 ’용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용서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대면(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프랭크는 아버지와 대면해 자신의 분노를 진짜 대상(여성 등이 아니라)에게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를 매듭짓고 진짜 어른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P.S.: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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