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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법정에 선 어린 가해자를 대하는 태도: <소년심판>(넷플릭스)
[문선영의 문화톡톡] 법정에 선 어린 가해자를 대하는 태도: <소년심판>(넷플릭스)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2.03.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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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드라마 <소년심판>의 1화에서 소년부 판사 심은석(김혜수 분)은 소년범에 대한 강력하고도 확고한 감정을 표현하며 등장한다. 그녀의 소년범에 대한 발언은 소년범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소년부의 또 다른 배석판사 차태주(김무열 분)의 반감을 살 만큼 강렬하다. 소년범의 갱생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들의 죄를 냉정하게 판단하려는 은석과 어린 소년의 범죄를 이해하며 교화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태주, <소년심판>의 초반부에 펼쳐지는 주요 인물의 대립은 최근 소년범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만 14세 미만의 소년이 저지르는 범죄 사건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무인모텔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우고, 차량 절도, 무면허 운전을 하고도 경찰 앞에서 당당한 어린 무법자들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보호가 우선되어야 할 촉법소년들이다. 기사를 통해 노출되는 소년범은 ‘소년’이라는 신분을 무기로 무서울 것 없이 질주하는 무서운 불량 청소년으로, 또는 법을 악용하며 악랄한 행동을 일삼는 괴물처럼 그려진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년범 사건에 대해, 소년법의 강화에 무게가 실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드라마 <소년심판>은 이러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소년범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주요 인물인 소년부 판사 은석, 태주가 풀어가는 소년범죄는 총 4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는 최근 발생한 실제 소년범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몇 가지의 에피소드를 토대로 그 사건들을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소년범 사건은 소년법 개정 논쟁을 불러일으킬 법 한, 충격적인 실제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다. 초등학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명문고 기말고사 시험 답안 유출 사건, 무면허 운전, 집단 성폭행 등은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청소년 관련 범죄 사건들이다. 한때는 충격이었지만, 현재는 잊히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가 소환한 이유는, 가해자였던 소년들의 죄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죄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과정을 통해 소년범이 되기까지를 면밀하게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드라마에서 소년범죄를 재현하는 방식은 소년부 법정에 선 소년들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종종 법정드라마에서는 법의 심판에 주목하기보다 자극적 범죄사건 에피소드나 가해자, 피해자의 스토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법정드라마는 추리물과 결합하여 범죄를 추적하거나, 판타지적 요소와 코미디를 활용하여 응징과 처벌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이들 드라마가 정의실현이라는 메시지뿐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대중적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면, <소년심판>은 다소 밋밋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출처: '소년심판'(넷플릭스 홈페이지)
출처: '소년심판'(넷플릭스 홈페이지)

<소년심판>에서 소년범죄를 다루는 방식은, 법정에 선 소년의 진술, 소년범을 심판하는 판사의 조사를 통해서이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일 법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소년심판>은 흥미를 위한 전략적 구성을 최대한 배제한다. 소년들의 진술 장면을 통해 법정에 선 소년범의 거짓을 밝히고, 그들의 행동을 심판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캐릭터의 특성, 숨겨진 스토리 등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있지만, 주요 인물의 개인적 사연은 드라마의 이미지를 크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연결되어있다. <소년심판>은 절제된 방식으로 범죄사건, 가해자를 다루며 소년범을 접근하는 태도나 관점에 대해 고민의 시간을 던져준다. 드라마에서 소년범 사건이 주는 충격, 자극 등으로 흥미 위주가 되지 않아야 함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소년심판>은 소년부 법정에 선 소년에 대한 세세한 개인적 스토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범죄 자체와 진실 여부를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소년범의 진실과 거짓이 구별되고, 소년범이 죄를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태도 등이 법정 진술 및 심판 과정을 통해 제시된다. 범죄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피해자 또는 가해자 어느 한 쪽 스토리를 배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한다면 <소년심판>의 경우, 소년범이 사건의 가해자가 된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소년심판>은 범죄 과정보다 소년이 범죄사건에 연루된 원인을 주목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에 법정에 선 이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보호가 필요한 14세 미만의 소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대상들이다. 아버지의 반복적 폭행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분노를 일탈적 행동으로 풀어갔던 소년부 관찰 대상, 소년은 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도망치는 일 뿐이었다. 가정폭행의 피해자 소년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해야 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 방치된 소년은 무언가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헤매고, 범죄 사건에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공범이 되기도 한다. <소년심판>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인 초등학생 살인 및 사체 유기 사건의 소년은 사건을 주도한 같은 또래 공범의 죄를 뒤집어쓰고 자백을 한다. 살인을 하고 사체 훼손을 한 소년범은 부유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그녀의 부모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소년범의 곁에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만이 자리한다.

 

출처: '소년심판'(넷플릭스 홈페이지)
출처: '소년심판'(넷플릭스 홈페이지)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소년범은 가정에서 제대로 된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소년범들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좋은 환경에서 부모의 지나친 관심 속에서 성장했지만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모의 모습을 학습했다. 이들은 불법도 쉽게 감행하며 어떤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어른들을 닮고 있다. 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은 소년범이 된 자신의 아이를 위해 법망을 피해가는 법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당당하기조차 하다. 그들에게 처벌이 아닌 보호가 목적인 소년법은 악용의 도구가 된다. 부모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소년에게 또래 집단은 위험한 행동이나 선택에 대한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드라마 <소년심판>은 소년이 소년범이 되기까지, 그들을 온전히 보호하지 않은 배경들을 살핀다. <소년심판>에서는 소년범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 못하거나, 법망을 피해 처벌만을 피하려는 어른(부모)의 논리에서 죄책감과 반성의 과정을 갖지 못한 점을 진지하게 추적하고 있다. 이는 소년범의 개인적 배경은 최대한 배제하고 소년부 심판 장면만을 통해 제시된다. 이는 소년부 판사 은석의 바람처럼 가정, 사회에서 책임지지 않았던 소년범에게 법정은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가 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은석이 소년범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녀의 개인적 사연에 의한 직접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생들이 장남삼아 아파트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어린 아들을 잃은 은석에게 소년법은 오로지 촉법소년에게만 유리한 법이다. 은석은 소년부 법정에서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3분 안에 보호판정을 받고 너무도 밝게 자신 앞을 지나치는 가해자 소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소년법은 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이해받지 못한 상처, 피해자로서 적합한 법의 심판을 돌려받지 못한 은석의 과거는, 소년범을 혐오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혐오는 단지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태도만을 의미하는 아니다.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싫어하고 미워할 지언정 소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처분은 냉정함을 유지할 것입니다. 소년에게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또 그 전과 다르게,”

은석의 마지막 대사는 드라마 <소년심판>이 소년범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다. 은석이 혐오하는 것은 소년범이 아니라, 소년범을 만드는 세상일 것이다. 그녀의 혐오는 옳고 그름을 알려주지 않는 사회,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고 죄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으려는 떳떳하지 못한 사회가 만들어낸 소년범에 있다. 소년범의 행위는 미워하지만 판사로서, 성인으로서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은석의 다짐은 소년법이 단순한 처벌이 아닌, 한 아이를 온전히 보호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한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지 부모만이 아닌,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공동체의 관심과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년심판>은 사회적 안전을 위해, 범죄사건 자체의 위험성만으로 판단하기 쉬운 소년범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들이 요구되기를 전달한다.

 

·문선영(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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