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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당신 얼굴 앞에서> ― 과거의 무게, 현재의 슬픔, 미래의 부재에 대한 당신의 자화상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당신 얼굴 앞에서> ― 과거의 무게, 현재의 슬픔, 미래의 부재에 대한 당신의 자화상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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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 얼굴 앞에서>: 색다른 매력의 배우 이혜영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감독 홍상수

<당신 얼굴 앞에서>는 미국에 사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상옥(이혜영)이 한국 고층아파트에 사는 여동생 정옥(조윤희), 자신을 캐스팅하려는 영화감독 재원(권해효)을 만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개성파 여배우 이혜영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감독 홍상수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지에 대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성찰과 매순간 끼어드는 독특한 내레이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 끊임없이 끼어드는 과거: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지금 이 순간만이 천국이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전반부는 ‘내 얼굴 앞.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지금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미국에서 온 언니 상옥과 한국에 사는 여동생 정옥이 함께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다소 우울한 내레이션과 ‘말라서 아파 보인다.’는 대사로 여주인공 상옥에 대해서 복선을 암시한다. 정옥은 과거 자신을 남겨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따라서 미국으로 건너가고 답장도 하지 않은 언니 상옥에 대한 원망으로 눈물을 흘린다.

여배우 상옥을 기억하는 여성이 상옥에게 운동 등 관리를 잘해서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하자, 상옥은 술만 마시고 운동하지 않고 막 살고 있다며 시니컬하게 대답하지만, 마지막에 그 여성에게 눈썰미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하고 헤어진다. 상옥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철교 아래에서 담배를 피면서 너무 시원하고 맑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서 경탄하지만 과거의 기타소리가 끼어든다.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를 생각하자고 다짐하는 상옥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원망을 표현하는 여동생, 여배우 시절을 상기시키는 여성, 흘러나오는 기타소리로 인해서 끊임없이 끼어드는 과거로 소환된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전반부 스타일은 움직이는 카메라, 어두운 분위기, 변화하는 사운드로 인물의 모호한 현재와 암울한 과거를 표현한다. 움직이는 카메라는 세 가지 종류로 나타난다. 첫째, 상옥이 소파에서 메모를 할 때 카메라는 물러난다. 둘째, 상옥이 건물을 볼 때 잔디에서 건물로 카메라가 올라간다. 셋째, 상옥이 자고 있는 정옥을 지켜볼 때 카메라가 옆으로 이동한다. 세 가지 종류의 카메라 움직임은 공통적으로 상옥의 시선에서 상옥의 전체 모습으로 이동하면서, 여주인공이 시선의 주체에서 대상으로 변모한다. 홍상수 감독이 직접 촬영을 맡은 이 영화는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영화같은 색조로 어두운 분위기를 표현한다. 인물들의 대화, 시냇물 소리, 기타소리로 변화하는 사운드는 인물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 인물의 내면을 차례대로 담아낸다.

 

3. 무거운/찬란한 과거와 현재의 교감: 마음속의 기억들은 너무 무겁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중반부는 ‘마음속의 기억들은 너무 무겁습니다. 이젠 이렇게 안 살 겁니다. 이제는 제 얼굴 앞을 보게 하소서.’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상옥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조카 승원(신석호)와 그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승원이 선물한 지갑에 감동한다. 상옥은 가족이 살았던 마당 있는 집을 찾아가서 과거의 추억에 잠긴다. 여배우로서의 삶, 갑작스러운 미국행 등 상옥의 무거운 과거에 대해 암시하지만 과거에 대해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재현은 관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상옥에게 계속 캐스팅을 제안한 영화감독 재원도 ‘축복과 같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얼굴, 진실함과 순수함을 느낀 순간’ 등의 찬사로 과거 여배우 상옥을 상기시킨다. 재원은 ‘상옥을 뵙고 싶었고 궁금했다’고 하면서, ‘시나리오 초고에 6개월~1년이 걸리며 상옥의 영혼이 드러나는 좋은 이야기’라며 설득하고자 한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중반부 스타일은 카메라의 움직임, 영상과 사운드의 불일치를 통해서 인물들의 교감과 과거/현재의 교차를 표현하며 무거운 기억을 소환하거나 현재의 교감을 표현한다. 상옥이 조카와 헤어져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물러나는 카메라는 지갑에 대한 클로즈업에서 조카의 선물에 감동하는 상옥의 모습을 담아낸다. 자신의 옛 집에 앉아있는 장면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상옥의 영상, 현재 아래층의 여자와 아이의 대화, 흘러나오는 과거의 기타소리는 영상과 사운드의 불일치로 보여주며, 과거의 추억을 현재에 소환하며 상옥에게 무거운 기억을 일깨워준다. 상옥과 재원의 대화 장면에서, 다가가는 카메라로 조감독을 배제시키면서 상옥과 재원에게 집중하거나, 혹은 옆으로 이동하는 카메라로 상옥의 기타 치는 모습, 기타 소리와 재원의 경청하는 모습, 다시 상옥의 기타 치는 모습을 오고가며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을 표현한다.
 

4. 씁쓸한 현실과 초연한 일상: 이 얼굴 앞에 천국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얼굴 앞에.

 

<당신 얼굴 앞에서>의 후반부는 ‘이 얼굴 앞에 천국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얼굴 앞에.’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상옥은 과거 자신의 연기에 대한 찬사와 미래 만들어질 영화에 대한 재원의 열의 있는 태도에 감동하며, ‘좋으신 분이지만 오래 못 살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거절한다. 재원은 상옥의 불치병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 ‘인생 좆같네요. 씨발. 지금 분위기 좋은데.’라며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상옥은 재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재원을 위로한다.

재원은 상옥에게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슬프지 않아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상옥은 ‘17살 자살을 꿈꾸던 때 서울역 광장 사람들 얼굴의 아름다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얼굴 앞에 있는 것만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라고 대답한다. 재원은 ‘상옥이 너무 순수하니까 축복을 받은 것’이라며, 당장 내일 강원도 양양으로 가서 상옥의 모습을 담는 단편영화를 찍겠다고 제안한다. 감독은 상옥에게 ‘결혼할래요?’, ‘내일 여행 가면 좋을 듯’, ‘혹시 나랑 자고 싶죠?’라는 제안을 계속 던지고, 상옥은 긍정적인 답변을 되돌려준다. 다음 날 아침 상옥은 ‘술에 취했으며, 원래 이행할 수 없는 약속이었으며, 제게 했던 솔직한 말씀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감독의 음성 메시지를 듣게 된다. 이러한 영화감독 재원의 이중성은 과거에 대한 찬사, 미래에 대한 약속, 현재의 씁쓸함을 모두 느끼게 한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후반부 스타일은 옆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롱테이크, 사운드/침묵의 대비, 물러나는 카메라를 통해 관계에 대한 기대감, 현실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을 표현한다. 상옥이 불치병이라는 비밀을 털어 놓은 후 옆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는 상옥과 감독 사이를 오고가면서 두 사람의 교감과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다. 비 오는 골목길에 서서 우산을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정지된 카메라, 흘러나오는 기타소리, 두 사람의 뒷모습, 감독의 등을 토닥거리는 상옥의 모습 등을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인상적인 미장센으로 그려지면서, 이후 감독의 현실적인 문자 메시지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단편영화 촬영을 취소하는 감독의 음성 메시지를 듣는 장면에서, 감독의 정중하지만 기만적인 대사, 상옥의 헛웃음 뒤의 어색한 침묵과 뒷모습을 대비시키며, 이상/현실의 대비, 죽음을 앞둔 여주인공의 처연한 슬픔을 표현한다. 상옥이 자고 있는 정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처음과 끝에서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지만 무거운 기억, 슬픈 현실을 겪은 관객은 여동생을 바라보는 상옥의 시선에서 죽음을 앞둔 초연함, 혈육에 대한 정을 느끼게 만든다.
 

5. 과거/현재, 이상/현실의 대비와 카메라의 성찰적 시선

 

<당신 얼굴 앞에서>의 내러티브는 고소공포증/고층아파트, 비밀/일상을 대비시키고, 낭만/현실의 대비로 기만적이고 어두운 현실 삶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여주인공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여주인공은 여동생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조카와 재회하고, 자신을 캐스팅하려는 감독을 만난다. 여주인공은 창문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심각한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 여동생의 고층 아파트에 견뎌낸다. 결말 부분에서 촬영할 수 없다는 감독의 음성 메시지를 두 번 반복해서 듣는 상옥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화려한 말과 어두운 진실을 들여다보게 만들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스타일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인물의 성찰과 소통, 외면/내면과 일상/비밀의 대비를 표현한다. 상옥이 정옥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첫 장면은 일상성을 표현하지만, 상옥이 정옥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지막 장면은 처연함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대비를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 움직임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물러나는 카메라는 성찰의 시선을 표현한다. 인물이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 카메라는 보통 인물의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반면, 이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불치병과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해서 말할 때 카메라는 오히려 멀어짐으로써 객관적이고 성찰적 시선으로 처연한 삶을 강조한다. 둘째, 다가가는 카메라는 주목하는 시선을 표현한다. 인물들의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가 다가가면서 두 사람에게 집중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다. 셋째, 옆으로 이동하는 카메라는 소통과 교감을 표현한다. 상옥과 감독을 오고가는 카메라, 상옥이 정옥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은 인물들의 소통과 교감을 강조한다.

영화 후반부의 비 오는 날 우산 쓴 남녀의 뒷모습, 담배를 피우는 모습, 우산을 내리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은 찰나적인 낭만성을 표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여배우 이혜영의 아우라일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및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웹진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편집장,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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