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시아의 문화톡톡] ‘지옥’에 대한 상상: 지워진 역사를 알기 위한 방법론
[김시아의 문화톡톡] ‘지옥’에 대한 상상: 지워진 역사를 알기 위한 방법론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04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 우리는 1944년 여름의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이 무엇이었는지 상상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구실로 내세우지 말자.”

 

프랑스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아우슈비츠에서 온 네 장의 사진』(2004)에서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라고 첫 문장을 썼다. 죄를 저지른 권력이 부끄러운 진실을 흔적 없이 지웠을 때 지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지옥의 실제 상황을 알겠는가?

독일 나치 정부는 유대인들의 모든 재산을 강탈하고 그들을 ‘비인간’이라고 낙인찍으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가스실에서 불태워 죽였다. 게다가 나치 정부는 그 처리를 유대인들이 하도록 만들었다. 동포가 동포를 죽이도록 시스템화하였다.

1947년 3월 1일부터 제주도도 지옥이 되었다. 제28주년 삼일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린 날, 한 어린이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도망가는 경찰을 쫓아 항의하는 군중들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쏜 후, 주민 여섯 명이 죽고 열네 명이 다쳤다. (제주 4·3 사건 진상보고서) 이로 인해 3월 10일부터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이라 규정하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동원해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을 장악하고 나치 정부가 ‘유대인 사냥’을 하듯 ‘빨갱이 사냥’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을 중심으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고 1954년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전투와 진압 과정에서 간난 아기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제주도민이 학살당했다. 이것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이었다.

정인성과 천복주가 함께 그린 그림책 『동백꽃이 툭,』(2022.3.10.)에 글을 쓴 김미희 작가는 제주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주 사람인데 ‘4·3’이 금지된 단어였기에 “스무 살이 될 때까지 4·3이 뭔지 몰랐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어 “아픔만 안고 떠난 3만 영령들 앞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이 책을 바칩니다”라며 헌정사를 쓴다. 페이지마다 동백꽃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지만, 주인공 섭이가 ‘툭’하고 동백꽃을 놓아둘 때마다 아름다운 제주도 풍경과 함께 슬픔이 쌓인다. 유난히 색채가 아름다운 이 그림책은 깨진 장독대 그림과 동백꽃을 좋아하는 섭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백꽃이 비처럼 아름답게 쏟아지며 소년의 슬픔은 극대화된다.

권윤덕 작가의 『나무 도장』(2016)과 정란희가 쓰고 양상용이 그린 『무명천 할머니』(2018)에 이어 제주 4·3에 관한 또 다른 그림책이다. 소설, 서사시, 영화, 그림책으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는 작가들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렇지 않았다. 왜곡했고 침묵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제주 4·3에 대해 제대로 쓰이기 시작한 게 겨우 2020년부터다. 그런데도 고등학교 한국사 수업 시간을 축소하려는 교육부의 시도를 제주역사 교사 모임 교사들이 규탄한 2021년도 기사를 보니 여전히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국어·영어·수학 교육보다 절대적으로 빈약한 실정이 아닌가? 이러니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장 뤽 고다르는 “말살에 대한 망각은 말살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역사』,1998:109) 그의 말에 입각하면 그동안 대한민국의 교육은 검열을 통해 보이지 않는 말살을 자행한 것이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보더라도 혐오와 갈라치기를 조장했던 후보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모 당 대표가 여전히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 하며 부끄러움 없이 발언하는 걸 보면 그도 잘못된 역사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역사교육은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를 생산하듯 ‘악’을 재생산한다. 미디어는 여전히 20세기 방식으로 ‘나’와 ‘타인’을 갈라치기 하며 혐오를 조장하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21세기 교육을 받으며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아이들과 젊은 청년들은 카오스처럼 복잡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의 조각보’를 스스로 꿰매야 할 것이다. 지워지고 왜곡된 역사의 흔적 속에서 작가와 독자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큐멘터리와 ‘역사 픽션’을 보고 읽으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선과 악이 뒤엉킨 오늘날의 복잡한 세계를 읽어내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을 번역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