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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숭범의 문화톡톡] 사유하지 않는 사법에 대한 질문
[안숭범의 문화톡톡] 사유하지 않는 사법에 대한 질문
  • 안숭범(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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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론

사유하지 않는 사법에 대한 질문- <소년심판>

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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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은 소년범에 대한 사법 시스템을 보여주면서 법을 다루는 이들의 태도와 입장을 성찰하게 한다. 메인 플롯을 이끌고 가는 심은석 판사의 서사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녀는 소년범에 의해 발생한 불법적 폭력을 국가가 승인한 합법적 강제(법)로 대응하는 최전선에서 더 나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발터 벤야민은 “폭력 비판이라는 과제는, 그 폭력이 법과 정의와 맺는 관계들을 서술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심은석의 실천은 외관상 ‘소년심판’이라는 제목에 부합하지만, 실제로는 ‘폭력비판’이라는 내포를 갖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주관하는 수사와 재판은, 개별 폭력을 적확하게 비판하기 위해 법적 맥락을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심은석의 ‘폭력비판’은 소년법의 한계 안에 판사로서의 역량이 제한됨으로써 위기를 맞는다. 일단 그녀는 합법적 강제력이 행사되는 통로로만 존재하는 삶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다소 비현실적 설정이지만, 그녀는 수사 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사법’ 영역 전반을 종횡무진한다. 그녀는 연화지방법원에 전출온 직후부터 소년범의 배후와 그들의 표면적인 일상 ‘너머’를 보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폭력을 내재한 시스템을 응시하면서 명문화된 법의 구속력과 다투며 정의 실현에 관한 자율적 방안을 찾으려 한다.
 

심은석의 선택과 실천이 ‘폭력비판’으로서 한계를 갖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소년심판>은 현행 소년법이 흉폭한 소년범들에게 과도한 운신의 폭을 허락한다고 본다. <소년심판>에서 반복되는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심은석의 멘트는 소년법의 제약을 초과하여 죄질에 합당한 처벌을 원한다는 말과 같다. 그녀는 중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처벌을 피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음으써,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가는 소년들을 만난다. 실제로 한국의 소년법은 의무교육 과정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고, 교화와 갱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 19세 미만의 범죄자는 소년법에 근거하여 재판을 받는데, 만 10세 미만은 소년법상 처벌 대상조차 아니다. 만 10세부터 만 19세 미만의 소년 범죄는 ‘소년보호사건’으로 분류되어 따로 관리된다.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 소년의 범죄 중 죄질이 매우 나쁜 경우에 한해 성인들의 형사절차보다 훨씬 완화된 소년형사절차를 밟는다.
 

<소년심판>은 위악적인 10대들이 일으킨 사건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정적 질문들을 던진다. 만 10세에서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 기능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옳은가. 엄격한 형사 처벌없이 소년범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소년법의 원래 취지가 달성되고 있는가. 현재 소년범들은 죄의 중함을 따져 1호에서 10호에 해당하는 보호처분만 차등해서 받는다. 소년보호처분은 성인 범죄자들을 향한 잣대보다 훨씬 관대해서 우선 그 범죄가 전과로 기록되진 않는다. 가장 높은 수위의 처분(10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2년 미만의 소년원 송치가 전부다. 그 때문에 소년 범죄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범죄 연령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처벌 가능 연령을 조정하고, 형량은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한 것도 사실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범죄 예방 차원에서라도 실효적인 공론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소년심판>은 이러한 근본적 쟁점을 심은석의 고통스러운 개인사에 기입한 후 수용자로 하여금 특정한 입장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심판> 속 판사들은 사회의 지배 가치를 수호하는 엘리트이자, 미래세대를 규율하는 기성세대의 표상이다. 그들은 명문화된 법의 ‘차가운 적용’을 통해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하려 한다. 물론 <소년심판> 속 판사들이 소년 범죄에 대한 판단과 법의 적용에 있어서 균질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범에 대한 연민과 자애로움을 실천하는 차태주, 정치적 이해관계와 실리를 중시하는 강원중, 감정의 배제에 기반한 기계적 법 적용을 보이는 나근희는, 각기 다른 차원에서 심은석의 태도와 대비된다. 심은석은 소년범들에게 행하는 국가의 느슨한 ‘억압(법적 처벌)’ 안에 기성 사회의 모순된 이데올로기가 착종되어 있음을 직시한다. 그녀는 합법적 강제로서 억압의 수위를 해석·결정하는 과정에서 법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진실을 찾으려 애쓴다. 현실에서 심은석의 행동이 적절한가를 논외로 둔다면, 그녀는 소년범을 둘러싼 왜곡된 환경의 개선, 피해자 회복에 관한 합리적 절차, 폭력 상황에 연루된 자들의 보호, 범죄 예방을 위한 냉정한 처벌의 필요성을 자문하는 인물이다. 이는 긍정적인 전망을 잃어가는 미래세대에게 ‘가능성의 미래’를 되돌려주기 위한 시도다. 그래서 그녀는 법망을 벗어나 계속되는 폭력의 재귀적 운동을 끊임없이 자문한다. <소년심판>에 나타난 각종 소년 범죄들이 한국의 현실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들을 직접 소환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자문’은 한국사회에 대한 반영론적 해석을 포함한다.

 

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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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년심판>의 법정은 부모가 해내지 못한 훈육의 기능을 국가가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심은석의 관점에서 보면, 사유하지 않는 사법 체계 내에서 폭력의 전염성과 순환성은 끊어질 수 없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으로 되돌아오는 소년범으로 인해, 폭력의 재귀적 속성은 오히려 확산·강화된다. <소년심판>의 서사적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는 9화에 삽입된다. 영민한 수용자라면 이미 추측할 수 있었지만, 9화에 이르러서야 판사 이전에 한 아이의 어머니였던 심은석이 사유하지 않는 사법의 최대 피해자였음이 밝혀진다. 자연인으로서 심은석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영양 불균형과 수면 부족의 삶에 내던져진다. 그녀가 워커홀릭(workaholic)으로 살아가는 것도 방어기제의 발현처럼 보인다.


<소년심판> 종반부, 심은석은 황인준과 백도현, 곧 자신의 아들을 죽인 촉법소년을 5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만 10세 이전에 장난삼아 벽돌을 던져 심은석의 아들을 죽인 바 있다. 황인준이 범죄의 사슬을 끊지 못한 이유는, 이혼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보다도 살인을 저지른 이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범행에 대한 반성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데 있다. 백도현 역시 새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어린 나이에 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사의 불행보다도 교화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한 법정의 무능력때문에 더욱 심각한 범죄자가 된 것으로 그려진다. 심은석이 그들을 다시 대면하게 된 건, 연화 집단 성폭행 사건때문인데, 황인준의 경우 이미 과실치사, 특수폭행, 특수절도 등 처분 전력만 일곱 번으로 나온다. 백도현은 촉법소년의 우두머리로 폭력적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극단적인 괴물로 등장한다. 그는 조건만남 사기, 강간,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통, 미성년자 협박 및 성매매 등 폭력이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심은석은 그들에 대한 주심 판사에서 최종적으로는 배제되지만, 사적 피해자(죽은 아이의 어머니)로서 폭력의 재귀적 운동을 막아내야 하는 책임적 주체의 최선을 보여준다. 그 결과 감정없는 판결의 맹점을 깨달은 나근희에 의해 사유하는 사법의 가능성이 실현된다. 이 판결로 인해 헐거운 소년법의 틈새에서 폭력의 재귀적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공론화된다.

 


"저에게는 법관으로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법정은 감정이 없다. 그래야지 어떤 편견도 없이 냉철한 처분을 내릴 테니까요. 그러나 너무 뒤늦게나마 이 소년법정에서 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 많은 분들에게 이 한 마디를 대신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어른으로서."

 


10화 말미에 나근희가 법정에서 읊은 위의 대사는 한마디로 법의 사과다. 과거의 그녀는 법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는 공동체의 윤리 회복을 고려하지 않고 ‘적법성’ 여부만을 기계적으로 따져 왔다. 그러나 심은석이 견뎌온 지난 5년의 절망과 소년범을 대하는 유다른 태도를 통과한 이후, 나근희는 소년법의 불완전한 틈새를 인정한다. 폭력의 재귀적 운동에 휩쓸린 미래세대의 불행은 개인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일부 구성원의 선의로 해결될 수 없다.
 

<소년심판> 엔딩신은 텍스트 바깥의 수용자를 향해 소년범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 <소년심판> 1, 2화에 앳된 얼굴로 등장한 소년범 백성우가 이번에는 온몸에 그로테스크한 문신을 하고 얼굴 전체에 피어싱을 한 채 심은석의 법정에 다시 앉아 있다. 1, 2화에서 백성우는 만 8세 아이 살인사건에 이용당한 어린 소년이었다. 여자친구가 살인범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해 혼자 죄를 뒤집어쓰려고 자수를 택한 소년이었다. 결국 그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소년법의 취지에 따르면) 갱생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교화되지 못했고,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진 긴 시간을 보낸 이후 다시 법정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백성우의 눈빛과 외모에는 사유하지 않는 사법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년심판>의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소년범들의 교화와 갱생을 위한 기성사회의 책임적 공론장이 폭넓게 형성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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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숭범(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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