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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가을 소나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김경욱의 문화톡톡] 캐릭터의 세계: <가을 소나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 김경욱(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8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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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1978)는 에바(리브 울만)가 엄마 샬롯(잉그리드 버그만)을 집으로 초대하는 편지에서 시작한다. 샬롯의 두 번째 남편인 레오나르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엄마에게 위로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대를 받아들인 샬롯이 에바가 사는 외딴 시골 마을에 차를 끌고 나타나면서, 모녀는 7년 만에 상봉하게 된다. 그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 그들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영화의 절반 지점, 이성의 힘이 약해지는 한밤중에 샬롯은 악몽 때문에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내려오고, 포도주를 마시며 취해가고 있던 에바와 마주하게 된다. 에바가 평생 마음에 담아왔던 엄마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면서, 모녀는 장장 37분 동안 격돌을 벌인다. 여기서 잉마르 베리만의 연인이자 뮤즈 리브 울만과 스웨덴 출신의 최고 스타이자 앨프리드 히치콕의 뮤즈 잉그리드 버그만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숨 막히게 펼쳐진다. 베리만의 연출은 물론이고,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감상할 가치는 충분하다.

 

엄마, 샬롯

샬롯은 유명 피아니스트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샬롯은 7년 만에 만난 딸의 근황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레오나르도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잔뜩 늘어놓음으로써, 이기적인 엄마의 면모를 드러낸다. 에바는 샬롯이 아침에 무엇을 먹는지 등 시시콜콜하게 다 알고 있지만, 샬롯은 에바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에바의 비난에 따르면, 샬롯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이다. 성공적인 피아니스트의 경력을 위해 일 중독 증상을 보이며 가족을 버리다시피 했고, 아픈 둘째 딸 헬레나는 요양원에 보내버렸다. 가족을 다정하게 대할 때도 마음은 딴 데 있었다. 샬롯이 가정에 충실해 보려고 결심했던 시기가 있기는 했다. 그때 그녀는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일하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분노를 14살 에바에게 모조리 쏟아냈다. 에바의 등이 휘었다며 체조를 시켰고, 긴 머리가 거추장스럽다며 짧게 잘랐고, 이가 삐뚤다며 교정을 하도록 했다. 에바는 엄마가 화를 낼까 싶어 온갖 금지와 강요를 묵묵히 견뎌야 했는데, 악몽을 꾸거나 자신을 자해하며 분노를 삼켰다. 에바가 18살에 스테판을 만나 임신하게 되었을 때, 샬롯은 도움을 주겠다면서 낙태를 강요했다.

예상하지 못한 에바의 분노 앞에서 샬롯은 멘붕 상태에 빠진다. 그녀는 예전에도 흔히 난처한 상황일 때 사용하던 일종의 방어기제,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자신도 힘들었다”고 변명한다. 그런데 샬롯의 변명 가운데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샬롯의 부모는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사랑도 주지 않았다. 샬롯은 자라는 동안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인간의 기본 감정을 누릴 수 있는 기초를 알지 못한 채, 음악을 통해 사랑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된 샬롯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무력감을 느꼈고, 오히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딸에게서 받으려고 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샬롯, 자라지 못하고 동결된 샬롯의 내면 아이가 딸 에바에게 돌봐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 역할이 바뀌는 경우가 현실에서도 아주 드물지는 않다.

샬롯의 부인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엄마는 현실도피자이며, 마음도 불구”라면서, “엄마 같은 사람은 위험하니 격리되어야 한다”고 끝내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붓는다. 에바가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증오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샬롯은 충격 속에서 도망치듯 떠나가 버린다.

 

첫째 딸, 에바

그렇다면 에바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샬롯의 문제가 훨씬 크게 보였는데, 한참 후 다시 보았을 때는 에바의 문제도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겉보기에는 에바가 괜찮은 것 같다. 그녀는 그럭저럭 아내 역할을 해내고 있으며, 헬레나를 요양원에서 데려와 돌보고 있고, 남편을 잃고 힘들어할 엄마를 위로하려고 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샬롯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자 아마도 기분 상한 에바는 헬레나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샬롯을 매우 당황하게 만든다. 아마도 헬레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샬롯은 에바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밤중의 격돌 전까지, 에바는 이러한 소극적인 방식으로 엄마에 대한 분노를 계속 표출한다.

 

에바와 샬롯은 보색 관계인 초록색과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에바와 샬롯은 보색 관계인 초록색과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모녀가 해후한 날의 저녁 식사 시간, 샬롯은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난다. 샬롯이 외로운 미망인으로 보이게 할 의상을 입을 걸로 예상했던 에바는 살짝 실망한다. 이때 에바는 붉은색의 보색인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식사를 마친 샬롯은 에바에게 피아노를 쳐 보라고 권유한다. 망설이던 에바는 해석이 쉽지 않은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2번을 친다. 딸의 연주를 듣는 샬롯은 실망감을 애써 감추려는 듯 아주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이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을 보이는데, 베리만이 어떤 연기를 주문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샬롯이 “감동했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자, 에바는 솔직하게 평가해달라며 떼를 쓴다. 그러자 샬롯은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2번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며 직접 연주를 한다. 이때, 엄마의 직설적인 평가에 의기소침해진 에바는 (애정을) 갈구하듯 계속 엄마를 쳐다보지만, 어느새 연주에 심취한 샬롯은 딸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모녀는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 훨씬 더 멀다. 여기서 에바는 왜 그냥 지나가지 않는/못하는 것일까? 그녀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도 인정욕구를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또다시 상처를 입는다.

 

에바는 샬롯을 계속 쳐다보지만, 샬롯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에바는 샬롯을 계속 쳐다보지만, 샬롯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샬롯과 에바의 관계를 정확하게 묘사한 이 장면은 에바의 회상 장면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에바는 집에서 엄마가 피아노 연습을 하다 잠시 쉴 때 차를 따라 드린 다음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차를 마시는 엄마를 바라본다. 그러나 차를 다 마신 엄마는 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신문을 읽는다. 그래도 에바가 꼼짝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자, 엄마는 혼자 있고 싶다면서, “날씨도 좋은데 나가 놀아라”라고 말한다. 에바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닫고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렇게 에바는 뛰어난 재능과 외모를 소유한 엄마를 경외하면서 사랑을 갈구했으나, 매번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녀는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아버지를 위로하며 아내 역할을 하면서 동병상련을 나누었다. 자신이 재능도 없고 못생겨서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과 열등감, 무력감 속에서 깊은 자기 비하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감정적으로 동결된 상태에서 어른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지 못한다. 에바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그녀를 계속 피해자이자 희생자의 자리에 머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에바는 엄마의 강요로 낙태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진짜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마음에 들 수 없는 부적격자를 연인으로 선택한 다음, 엄마가 낙태를 강요하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엄마는 더욱 사악한 가해자가 되고 자신은 더욱 피해자가 됨으로써,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에바는 빅토르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나이 많은 남자이기에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에바는 상징적으로 샬롯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킨 다음, 바람직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샬롯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 인간임을 증명하고 열등감과 패배감을 만회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네 살 된 어린 아들 에릭을 익사로 잃고 말았다.

 

엄마가 떠났을 때처럼(사진 위), 에바는 죽은 아이의 방에 앉아 있다(사진 아래)
엄마가 떠났을 때처럼(사진 위), 에바는 죽은 아이의 방에 앉아 있다(사진 아래)

에바는 아이의 방을 살아있을 때처럼 보존해놓고 아이가 가까운 곳에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샬롯에게 “그렇게 슬프지 않다”면서, “조금만 집중하면 아이가 느껴진다. 다른 차원에서 살지만 서로 볼 수 있다. 둘 사이는 어떤 장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려는 듯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의 존재에 대해 덧붙인다. 그녀는 아이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샬롯에게 알림으로써, 자신의 과한 모성애를 과시하고 샬롯의 부족한 모성애를 환기하려 한다. 이러한 시도는 샬롯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으로, 소극적인 공격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샬롯은 딸의 말에 동조하기는커녕 냉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무시의 태도를 보인다. 샬롯은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지만, 에바는 잠들기 직전 죽은 아이의 숨결과 손길을 느낀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므로 샬롯은 이 장면에서 딸에게 낯설고 섬뜩한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에바는 아들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생각한다
에바는 아들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생각한다

에바의 남편 빅토르에 따르면, 자신이 청혼했을 때 에바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맞다면, 에바 역시 샬롯처럼 아이를 사랑하는 데 정서적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에바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아이의 죽음을 더욱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엄마가 떠날 때마다 죽음 같은 감정을 느꼈던 에바는 아이가 떠나가자 아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는 어른 에바가 아니라 에바의 내면 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엄마가 떠나갔을 때 에바는 자기 방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앉아, ”다시는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절망한다. 에바가 죽은 아이의 방에서 어린 시절처럼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아이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동일시한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샬롯이 황급히 떠났을 때, 또다시 죽을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 에바는 에릭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유형처럼 앉아 자살을 생각한다.

 

둘째 딸, 헬레나

에바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면, 헬레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몸의 병을 앓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샬롯이 딸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방치한 결과, 두 딸은 각각 마음과 몸의 병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에바와 샬롯이 격돌하는 장면에서, 윗 층의 헬레나는 잠들지 못한 채 계속 엄마를 부르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럼으로써, 샬롯의 죄책감은 더욱 가중된다.

에바는 헬레나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병이 악화된 원인이 샬롯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샬롯이 레오나르도를 집에 초대했을 때, 지적 장애가 있는 헬레나는 그와 엄마의 관계를 알아채지 못한 채 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그것을 눈치챈 샬롯은 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레오나르도를 황급히 떠나보냈고, 그 충격으로 헬레나는 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생겼고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에바는 샬롯을 대신해 아버지의 아내 역할을 했고 헬레나는 엄마의 연인을 사랑함으로써, 샬롯의 두 딸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었다는 것이다. 헬레나가 말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은 죄책감과 엄마의 사랑을 잃어버릴 불안감이 너무 커서 그러한 인식을 할 수 없는 유아 수준으로 퇴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빅토르에게서 엄마가 떠났다는 말을 들은 헬레나는 울부짖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미친 듯이 내뱉으며 발작 증상을 보인다. 에바의 괴로운 마음이 육체의 고통으로 표출된다면, 헬레나의 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에필로그

어린 시절에 동결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에바는 물리적 감옥 같은 외딴곳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죽음을 생각하던 에바는 빅토르의 아내이자 헬레나의 언니라는 의무를 환기하며, 지금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린다. 어쩌면 그녀는 에릭이 곁에 있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기에, 집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것 같다.

 

샬롯은 기차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샬롯은 기차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이때 샬롯은 에이전트와 함께 기차를 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에바의 집에서 헬레나를 만나 너무 힘들었다면서(에바와의 격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왜 빨리 죽지 않지?“라는 잔인한 말까지 내뱉는다. 에바가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집으로 향하는 반면, 샬롯은 고향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집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어디서도 마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불행을 대물림하며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샬롯은 기분 전환을 하려고 이말 저말 늘어놓지만, 기차 안에 갇힌 것 같다. 아울러 그녀의 심적 고통이 점점 더 해지는 듯 기차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한편, 샬롯의 기차 장면에서 정면을 향한 샬롯의 얼굴 클로즈업 쇼트는 그 장면이 에바의 상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에바는 문틀과 문틀이 겹친 미장센을 통해 갇힌 것처럼 보인다
에바는 문틀과 문틀이 겹친 미장센을 통해 갇힌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는 책상에 앉아 있다. 문틀과 문틀이 겹친 미장센을 통해 에바는 여전히 갇힌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다시 착한 딸로 돌아가 엄마를 괴롭혔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며 화해를 청하는 편지를 쓴다. 편지가 샬롯에게 잘 도착했는지, 그녀가 편지를 읽어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한밤중의 기나긴 격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첫 장면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후회한다 해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분노를 엄마에게 표출했으니 에바에게는 치유의 실마리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상처투성이의 내면 아이를 떠나보내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심신이 성숙한 진짜 어른이 되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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